<파리의 딜릴리> 아름다운 색체와 묵직한 메시지
*브런치 무비패스로 관람한 영화입니다. 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파리의 딜릴리>를 시사회에서 직접 보기 전에 나는 지난 2017년에 개봉했었던 <러빙 빈센트>가 떠올랐다. 풍요로운 예술의 전성기였던 벨 에포크 시대를 배경으로 당대 유명한 아티스트들이 캐릭터로 대거 출현한다는 것이, 유명한 과거 예술의 흔적에 스토리를 넣어 보여주는 느낌의 영화인 줄 알았다. 나의 예상은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영화는 벨 에포크 시대의 풍요로움과 화려함이 가득한 아름다운 파리의 모습과 문화를 보여줌과 동시에 당시 시대상의 어두운 면모도 여과 없이 보여준다. 특히 인종차별 문제와 성차별 문제에 대해선 상당히 과감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는데, 이 영화가 한국에서 '전체관람가'인 가족 애니메이션으로 분류된다는 걸 감안했을 때, 충격적인 설정이 꽤 등장한다. (어린아이들과 보러 가기에는 조금 당황스러울 수 있으니 주의 바란다.)
생각보다 묵직했던 이 영화는 보고 나서 꽤 많은 생각을 들게 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작품이 어떻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좋았다고 말하겠다. 그리고 굳이 추천하자면 어른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어린이들만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감독의 색깔이 많이 묻어난다. 영화를 보기 전엔 몰랐는데, 아주 어렸을 적에 봤는데도 기억에 남는 <프린스 앤 프린세스>라는 실루엣 애니메이션(그림자극 형식)을 만든 미셸 오슬로 감독이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그는 아프리카 서부 해안지방인 기니(Guinea)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다문화권적 성격을 띤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 캐릭터들은 유색인종들이 많다. 실루엣만으로 이루어진 <프린스 앤 프린세스>에선 피부색이 안 나오지만 '키리쿠'시리즈와 <아주르와 아스마르> 등에서도 유색인종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번 <파리의 딜릴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주인공인 딜릴리 역시 프랑스인과 카나키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여자아이이다. 이런 캐릭터 설정은 뒤에서 얘기할 '다름'에서 오는 차별과 혐오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을 나타낸다.
감독의 특징이라 할만한 또 다른 점은 아프리카 문화권을 직접 겪어본 경험 때문인지 그의 작품 속 색감이 풍부하고 화려하다는 점이다. 그림자극 형식의 애니메이션에서는 색체의 화려함보다 빛의 반짝임을 잘 표현하였고, 그림자극 형식이 아닌 <키리쿠> 시리즈와 <아주르와 아스마르>에서는 다채로운 색과 빛을 다루는 그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원색을 자유롭게 쓰면서도 과하다는 느낌보다 아름답다는 느낌을 준다. 색체 말고도 소품이나 의상에서도 이국적인 요소들을 (유럽 기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미셸 오슬로(Michel Ocelot)는 프랑스 최고의 애니메이터로, 그의 작품은 애니메이션 시장을 지배하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 못지않은 실력을 보여준다. 실루엣 애니메이션의 장인으로 불리며, 아프리카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키리쿠(Kirikou)’ 시리즈, 정교한 종이 조각을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움직이게 해서 만든 <프린스 앤 프린세스(Princes Et Princesses, 1999)>는 미셸 오슬로를 아티스트로 인정하게 하는 근거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파리의 딜 릴리>에서도 그가 표현해낸 아름다운 색과 빛이 담긴 장면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게다가 벨 에포크 시대의 화려한 아름다움이 가득한 파리의 모습은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리고 <파리의 딜릴리>에서는 포스터와 소개 문구에서도 나와있듯이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과 유명 인물들이 등장한다. (피카소, 로댕, 모네, 드뷔시, 르누아르, 퀴리부인 등) 그들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한 명 한 명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모른다 하더라도 흥미로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토록 화려한 벨에포크 시대를 잘 담아낸 영화지만, 감독은 그 시대의 아름다운 모습만을 담지 않는다. 사실 영화의 시작부터 인간 전시장이 등장한다. 아프리카 카나키에서 온 딜릴리와 몇몇 유색인종들이 원주민 생활 모습을 연기하고 그걸 도시의 사람들이 동물 보듯이 '구경'한다. 화려하고 부유한 파리 중심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외곽 쪽에 있는 하층민의 삶을 보여주고, 딜릴리에게 원숭이라며 비하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가장 크게 묘사되고 있는 성차별 문제에 대해서는 여성은 까만 천으로 온몸을 가리고 네발로 기며 남성의 의자나 가구의 역할을 해야 하고, 다 큰 어른 여자는 길들이기 어려우니 어린 여자아이를 납치해 네발로 기는 훈련을 시켜야 한다는 미친 마스터 맨을 등장시켜 상당히 충격적이다. (심지어 '여자'라고 부르는 것도 과하다며 '네발'이라고 부르며 인간 취급을 안 한다.) 딜릴리와 친구들이 이 미친 범죄 집단인 '마스터맨 조직'의 추악한 범죄의 실마리를 찾아 해결하는 게 이번 영화의 중심 스토리라 이 충격적인 범죄가 대놓고 묘사된다.
사실 프랑스의 벨에포크 시대는 문화적으로 부흥한 시기였지만 제국주의를 토대로 식민지를 착취하던 시대이기도 했다. 동시에 여성 참정권도 없던 시대였다. 감독은 문화와 예술이 번영했던 프랑스의 아름다운 모습과, 편견과 차별로 얼룩진 시대적 배경을 동시에 묘사한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범죄의 설정이 다소 충격적이고 강하지만, 전체적으로 차별과 혐오 그리고 편견이 담긴 지나가는 대사들은 꽤 사실적이다. 감독은 그런 대사들을 영화 곳곳에 아무렇지 않게 툭 던져놓는다. 인상 깊은 점은 편견-차별-혐오가 담긴 대사들에 대한 딜릴리의 반응이다.
딜릴리의 반응은 단편적으로 '그들이 나쁘다'라고 하거나 차별을 하는 주체들을 특정짓기보단, 그저 초연하게 그들의 말에 대응한다.
"카나키에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하얗다고 프랑스인이라고 하더니, 프랑스에서는 나보고 까맣다고 카나키인이라고 하네요"라고 말하는 혼혈아이인 딜릴리의 말에서는 '같음'보다 '다름'을 보며 그 다름을 문제 삼는 현실을 보여준다. 여기서 주의 깊게 봐야 할 점은 현실의 편견을 보여주지만 편견의 주체와 대상을 특정 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사회나, 어느 문화에서나 '다름'은 쉽게 차별받는다. 그 '다름'은 너무나 상대적이어서, 카나키에서 '보통'인 까만 피부색이 프랑스에서는 '다른 것'이 되고, 프랑스에서 '보통'인 하얀 피부색이 카나키에서는 '다른 것'이 된다. 감독은 딜릴리의 입을 빌려, 현실에 스며있는 차별과 편견 그리고 혐오를 보여줌과 동시에, '다름'에서 오는 그 차별이 얼마나 상대적인지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같이 보여준다.
가장 좋았던 점은 감독이 '다름'에서 비롯된 차별-편견-혐오에서 쉽게 파생되는 '편 가르기'를 해결책으로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는 영화 마지막에 구출된 아이들과 딜릴리 그리고 친구들이 다 같이 부르는 노래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노래 가사는 이러했다.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 인종과 성별을 포함한 모든 '다름'을 넘어서 그저 모두 '우리'이기에 차별과 혐오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얘기하며, 동시에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어떤 특정 누군가가 아닌 '우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영화의 엔딩이 급하게 끝나는 느낌이 들어 그 점이 아쉽다. 엔딩크레딧에서 마스터맨이 잡혔다고 간략하게 설명해주긴 하지만, 영화는 딱 아이들을 구출하고 끝나버린다. 엔딩이 아쉽긴 하지만 영화 내내 펼쳐지는 아름다운 파리의 모습과, 영화에 담겨있는 생각해볼 만한 사회적인 메시지만으로 충분한 영화였다.
차별과 혐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만 이상만을 이야기하지 않는 영화, 편견이 가득한 현실을 보여주며 그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저 우리 모두는 다 같은 '우리'일 뿐이라고 말하는 영화.
얼마 전 읽은 '남미 히피 로드'라는 책 속 한 구절로 리뷰를 마치려 한다.
"우린 단지 지구인이고, 모두 우주에서 왔을 뿐이야."
writer 이맑음
개인적인 견해를 담은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