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무엇이든, 너이기에
*스포가 있습니다
*시사회 관람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감정을 표현한 영화는 많다. '감정'은 비슷한 듯 다르면서 다르면서 비슷하다. 뭉뚱그려 보면 이렇게나 간단한데 세세하게 들여다볼수록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고 다양한 게 감정이다. 그리고 우리는 매번 이런 감정들을 영화에서 보고 같이 울고 웃고 설레 한다. 영화 <조>는 그런 영화다. 화려한 볼거리나, 액션이나, 긴장감과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로 관객에게 "어디 한 번 잘 만들어진 상품인 이 영화를 보아라!" 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의 감정에 공감하게 하고 그 감정이 범람하여 관객에 마음까지 흘러들어 가는 영화. 그리고 이렇게 감정을 건드리는 영화는 유독 여운이 오래 남는다. 아, 미리 말하자면 <조>에서 보여주는 감정은 한결같이 '사랑'이다.
스토리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자신이 로봇인 줄 몰랐던 '조'와, 그녀를 만든 '콜'의 사랑이야기. 자신이 인간인 줄 알고 있던 '조'가 자신이 로봇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둘은 서로를 향한 감정을 확인한다. 그렇게 사랑을 확인하고, 사랑을 하다, 로봇과 인간이라는 사실에 위기를 겪고, 결국 돌고 돌아 그들은 다시 사랑한다.
이 영화는 확실하게 로맨스 영화다. 게다가 어딘가 한 번쯤 봤을 스토리를 가진 로맨스 영화다. 하지만 영화 <조>는 식상하게 느끼기 쉬운 스토리를 가졌음에도 너무나 매력적이다. 이 영화의 매력포인트는 로봇과 인간과의 로맨스라는 나름 신선한 설정도 한몫했지만 아무래도 가장 좋았던 점은 곁다리로 감정선을 끼워 넣거나 균형을 맞추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서 집중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표현해내는 데에 있어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고, 영상미와 음악은 완벽했다.
영화 <조>는 로봇과 인간 간의 사랑이라는 배경에 걸맞게 계속해서 '진짜'와 '가짜'라는 개념을 대비-강조한다. 영화에는 커플들 간의 연애 예측률을 수치화해서 보여주는 서비스라든가, 진짜 사랑의 감정을 단 몇 시간 동안만 느끼게 해주는 약등이 등장한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계산된 것들이 계산될 수 없는 것이라 여겨지는 감정 특히 '사랑'과 연결되어 등장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과연 저게 진짜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마음속에 살며시 떠오르긴 하지만, 그것들은 '진짜'라고 조와 콜 모두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질문이 로봇인 조와 인간인 콜의 사랑으로 연결되자 그들 역시 선뜻 답을 하지 못한다. 그들은 계속해서 서로에게 질문한다. 우리의 사랑이 진짜인가요?
"수치화되고 만들어진 사랑이 진짜인가?"라는 질문은 "만들어진 로봇과 인간 사이의 사랑이 진짜인가?"라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그들의 사랑이 진짜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질문이 무색하게도 영화 내내 그들의 모습은 '사랑'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콜의 망설임과 고민 때문에 결국 둘이 헤어졌을 때, 콜이 위에서 말한 '몇 시간 동안 진짜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약'을 먹고 낯선 사람과 계속해서 만나며 외로움을 달래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진짜 사랑의 감정을 준다던 약으로 얻을 수 있는 사랑은 그저 '가짜'일 뿐이었고, 그 가짜 속에서 그가 찾는 '진짜'는 처음부터 '조'였다. 그는 감정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조'를 그리워했던 것이다.
결국 영화는 아주 단순하고 명확한 사랑의 정의에 대한 답이자, 그들이 계속해서 고민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 연애 예측률이 0%이든, 조가 로봇이든, 서로가 서로이기에 사랑한다는 아주 간단한 진실. 진짜냐 가짜냐라는 질문 자체가 무의미했다. 근거를 대고 이유를 분석하기 이전에 사랑이란 감정이 있고, 그리고 그 사랑은 서로의 존재가 이유이자 결과가 된다. 감정은 많은 순간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조와 콜의 사랑에는 조가 로봇이라는 특이 사항이 존재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언제나 '진짜'였다.
보통 로봇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보여주는 영화들은 '로봇의 정의' 혹은 '인간의 정의'에 대해 (아니면 둘을 나누는 기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비교적 최근 영화이자 AI 로봇이 등장하는 <엑스 마키나>에서도 이런 명제를 제기한다. <HER>이라는 영화 역시 AI(인공지능)와 인간 사이의 사랑이란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조>와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결국 AI와 인간 간의 선을 넘을 수 없다는 것으로 끝난다. 인간과 로봇 사이의 관계가 사랑이든 우정이든, 그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든 아니든, 로봇과 인간 사이의 다름을 넘을 수 있든 아니든, 로봇-AI가 등장하는 영화들은 보통 이런 식이다. 로봇의 정의가 무엇인지 인간의 정의가 무엇인지에서 그친다.
하지만 영화 <조>는 로봇과 인간을 다룬 여타 영화들과 다르다. 로봇의 정의나 인간의 정의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사랑의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 사랑의 정의를 표현하기 위한 설정으로 AI 로봇을 이용했을 뿐이다. 그래서 오히려 <조>가 상대가 '무엇'이든, 서로를 향한 사랑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크리쳐와 인간의 사랑으로 끝이 나는 <shape of water : 사랑의 모양>이란 영화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는 "이 로봇이 진짜일까?"라는 질문보다 "이 사랑이 진짜일까?"라는 질문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질문은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할 때 한 번쯤 해보았던 질문들과 닮아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메인 캐릭터가 로봇임에도 관객들로 하여금 캐릭터의 감정선에 공감하기 쉽게 만들어준다. 영화 <조>의 매력포인트 중 하나이다.
리뷰를 시작하며 비슷한 듯 다르면서 다르면서 비슷한 게 감정이란 글을 적었다. 그만큼 '사랑'이란 감정은 간단해 보이면서도 복잡하다. 당연히 완벽하게 표현하는 것 역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감정'은 때론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전달이 된다. 영화 <조>는 아주 단순하고 간단하지만 강력한 사랑의 정의를 보여준다. 결국 다름보단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사이의 감정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조가 로봇인 게 뭔 상관인가.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누가 봐도 정말 한결같이 확실한 '사랑'인데. 재단하고 수치화하고 분석하는 걸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자신만큼은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어떤 이유가 없어도 그저 마음이 먼저 움직여 알게 되는 것. 감정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
네가 무엇이든,
너이기에
writer 이맑음
시사회 직접 관람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