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원시인이었다가 세일즈맨이었다가 로봇이 된 남자』리뷰
이 책을 읽고 나서 놀란 것은 첫 번째로는 읽기 쉬웠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정말 재미있었다는 것이었다.
책에 담겨 있는 내용이 '흥미롭다'는 것이 항상 '재미'를 의미하진 않는다. 특히 책의 성질이 지식이나 상식을 전달하는 경우엔 이 성질이 두드러진다. 흥미롭고 유익한 정보들이 가득하지만, 책 자체가 재미있기 힘들거나 때론 책을 다 읽기 위해서 꽤 많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번에 필자가 읽은 <원시인이었다가 세일즈맨이었다가 로봇이 된 남자>(줄여서 '원세로')라는 책 역시 인류의 역사를 전달하는 것이 책의 주된 목적이었기에 재미를 기대하지 않았다. 첫 장을 피는 순간 내 예상이 빗나갔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재미있다. 게다가 흥미로웠다.
<원세로>는 제목 그대로 원시인, 세일즈맨, 로봇이라는 단어대로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인류사가 담긴 책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인류의 시초부터 아직 우리가 겪지 않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까지 담겨있다. 그럼 이쯤에서 이런 생각이 들것이다. "인류사를 전달하는 책인데 재밌다니, 그럼 어렵지 않게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책이겠구나."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인류사 책에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유는 책의 처음 작가의 말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나는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 사람이 되어 보는 것만큼이나 강력한 해법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중략) 사실 이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모든 인간의 하루가 궁금했고, 가능하다면 몸소 체험해 보고 싶었다. 과거뿐 아니라 현재, 그리고 머나먼 미래까지고.
인류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인간을 이해해야 가능하고, 그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사람이 되어보아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작가는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역사의 흐름에 따라 같이 흘러지나갔을 다양한 사람들의 하루를 이야기로 풀어낸다. 보통 소설을 읽을 때 독자들은 책 속 주인공들에 스스로를 대입해 그들의 상황이나 삶에 공감하곤 한다. 바로 그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 책은 다양한 사람들의 하루가 담긴 - 인류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작가의 상상이 가미된 - 짧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점이 이 책을 단순히 이해하기 쉬운 책, 혹은 흥미로운 정보들이 담겨있는 책이 아닌 '재미있는 책'으로 만들어주었다.
작가의 말은 적중했다. 그 사람의 삶을 아주 가까이에서 체험해보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데 아주 강력한 방법이 확실했고, 더군다나 개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은 재미있기까지 했다. 역사시간에나 단어로 접하던 검투사, 수행자, 용병의 삶과, 나의 삶과 거리가 먼 패션 디자이너, 바텐더 등의 하루를 이야기로 체험해보는 것이 어찌 흥미롭지 않을 수가 있을까. 게다가 접해보지 못한 미래의 기억 세탁사, 꿈 메이커의 하루까지. 한 편의 아주 짧은 소설을 여러 개 보는 기분으로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피곤함을 느끼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책의 구성 자체도 흥미로운데, 이 책은 위에서 말한 (짧은 소설 같은) 다양한 사람들의 '하루 이야기'와 그 하루와 연관된 인류사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파트가 한 세트가 되어 반복된다. 누군가의 하루가 나오고, 그 시대를 설명하는 식이다.
'하루 이야기'가 마치 소설처럼 재미있다면, 설명 부분은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간단하게 다양한 정보들을 전달한다. 이 세트는 합쳐도 2장에서 3장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글이라 읽는데 전혀 에너지가 들지 않는다. 그리고 이 구성이 유익한 정보와 재미의 균형을 맞추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또 다른 인상 깊은 점은 위에서 말한 한 세트의 마지막, 그러니깐 정보를 전달하는 파트의 끝을 다음에 소개할 '사람'과 연결시킨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다음의 인용구는 수행자 목차에 있던 글이다.
그들은 인류가 더 나은 생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고, 자신만의 완성된 철학을 전파하기도 했다. 그들은 수행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철학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목차는 바로 '철학자'이다. 이런 식으로 성격이 다른 짧은 파트가 나뉘어 반복됨에도 모든 이야기가 연결되는 느낌을 주어 책의 통일성을 높였다. 이런 식의 세심한 디테일이 책을 더 "술술" 읽히게 했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사람은 '대장장이'와 '행성 중개인'이었는데, 대장장이는 그냥 그의 입장에서 하루를 표현한 것뿐만 아니라 대장장이 특유의 거칠고 쿨한 성격이 이야기에 드러나 있어 재미있었고, 행성 중개인은 담겨있는 미래의 삶이 너무나도 흥미로워 기억에 오래 남았다.
“우주를 향한 동경이 다시 타오르고 있다. ‘우주에서 지구 바라보기’를 시작으로 우주로의 여름휴가, 달 위에 발자국 남기기, 우주 호텔에서 하룻밤 패키지가 현실로 다가온다. 엘론 머스크의 스페이스 X, 제프 베조스의 블루 오리진, 리처드 브랜슨의 버진 갤럭틱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스페이스 X는 2015년 팰컨 9를 시작으로 재사용 로켓 실험을 수십 차례 성공적으로 이뤄냈고, 블루 오리진은 2016년 비상 탈출용 우주 발사체 시험 발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그리고 2018년 12월 13일 오전 7시, 버진 갤럭틱은 최초로 일반인을 태운 우주 비행 실험에 성공했다. 그들은 우주관광·우주여행은 물론 행성 간 운송 시스템, 달 거주 프로젝트, 우주 식민지까지 꿈꾸고 있다.” - ‘행성 중개인’ 중에서
정말 재밌게 본 책이다. 술술 읽히고 재밌고 유익하다. 인류사라는 '사실'을 상상이 가미된 '이야기'로 전달하다니. 인류의 역사에 전혀 관심이 없더라도, 나와 전혀 연관이 없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다양한 사람의 하루 이야기는 누구라고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이다. 이 리뷰를 읽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writer 심록원
문화예술플랫폼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