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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록원 Aug 20. 2019

아트벙커 B39를 소개합니다

공간의 매력을 아는 공간


부천 삼정동엔 쓰레기 소각장이 있었다. 심지어 2010년 가동이 중단된 폐소각장이. 바로 그 소각장이 복합 문화예술공간인 '아트 벙커 B39'로 다시 태어났다. 2018년 6월 1일 재탄생한 구 소각장 현 B39에 대한 소식은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고, 결국 나의 귀로도 들어왔다. 가야지 가야지 미루다가 드디어 몇 개월이 지난 지금 드디어 B39를 방문하였다.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과거의 투박한 공간을 전혀 다른 용도의 "요새 느낌"인 공간으로 바꾸는 시도는 요 근래 몇 년간 꽤나 핫한 아이템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보고 겪었을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폐공장이나 한옥을 리모델링해 만든 카페일 것이다.


왜 하필 카페일까? 그 많고 많은 과거의 공간들을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왜 카페로 만드는 것일까? 답은 우리가 카페를 소비하는 이유에 있다. 카페가 일종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둘째 치고라도, 우리는 카페를 정말 '음료'와 '음식'만을 소비하러 가지 않는다. 카페 투어를 하고, 어디를 놀러 가더라도 이쁜 카페 하나쯤은 찾아서 방문하는 이유는 우리는 카페를 통해 공간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신선한 혹은 멋지고 이쁜 (심지어 음료와 디저트도 즐길 수 있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카페는 공간을 파는 사업이다.


과거의 공간을 새롭게 리모델링하는 과정은 그 공간을 '신선하게' 만든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데서 오는 신선함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공간을 매력적이라고 느끼게 한다. 넘쳐나는 카페와 비슷한 공간과 분위기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섞여있는 일명 '재생 공간'이 주는 신선함은  포화상태의 카페 사업 분야에서 경쟁력이자 매력이 된다. 동시에 이러한 신선한 공간을 팔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친밀한 사업 역시, 그렇다. 카페다. 그렇기에 재생 공간의 용도에 카페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재생 공간의 새로운 용도가 주로 카페라는 점은 바꿔 말하면, 과거의 투박한 공간을 이용해 새로운 공간으로 만드는 방법 자체가 '공간'을 매력적으로 만들고, 사람들을 끄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신선한 공간을 소비하는 가장 친밀한 방법이 '카페'라면, 조금 더 큰 단체가 개입해 과거의 공간을 '카페'가 아닌 '더 포괄적인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은 어떨까. 바로 그걸 실현한 곳이 아트 벙커 B39다.





아트 벙커 B39의 주된 목적은 전시와 예술공간이다. 하지만 단순히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간' 자체를 매력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노력과 디테일을 여기저기서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인상 깊은 점은 위에서 언급한 과거와 현재의 공존이다. (실제로 팸플릿에도 과거와 현재의 공존이라는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는 점을 보았을 때 이 곳을 새롭게 설계할 때도 신경 쓴 부분임이 틀림없다.)


B39에서는 존치 공간과(과거 소각장의 시설을 그대로 둔 공간) 재생공간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데, 과거의 흔적이 거의 그대로 살아있는 존치 공간과 새로운 재생공간의 조화가 인상 깊다. 단순히 소각장의 뼈대만을 남기거나, 여기가 소각장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정말 소각장으로 운영되었던 시설을 그대로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


더 인상 깊은 건 (존치 공간을 포함한) 그런 과거의 흔적이 어느 한 곳에 모아져 있는 것이 아니라, B39 곳곳에 불규칙하게 예상치 못한 곳에 위치해있다는 점이었다. 과거의 것이라는 성격을 강하게 내뿜는 곳과, 아예 새로운 공간, 그리고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으면서도 현재의 것과 어우러지는 공간이 조화롭게 얼키설키 구성되어 B39 공간 전체를 채운다. 이는 과거와 현재가 독자적으로 존재하면서도 또 어우러지는 느낌을 준다.


B39 공간을 도식화하면 이런 식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은 '에어 갤러리'라는 이름의 공간으로, 면적은 짧지만 높이가 상당해 뚫려있는 벽과 천장 사이로 보이는 하늘, 낡은 소각장의 뼈대, 유리창 안으로 보이는 세련된 공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직공간이 주는 구조물의 시각적 존재감이 묵직하고, 동시에 단순한 구조가 주는 미묘한 통일감을 경험할 수 있다. 낡은 건축물 특유의 노출된 콘크리트의 분위기와 색감 역시 통일되어 있어 의외로 사진 찍기 좋은 곳이기도 했다.


이 공간은 과거에 소각조였던 곳을 야외 공간인 '에어 갤러리'로 재생한 곳인데, 위에서 언급했던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으면서도 현재의 것과 어우러지는 공간'이었다. '공간 자체'를 관람할 수 있는 곳이었다는 점에서 '에어 갤러리'란 이름도 센스 있다.






공간에 신경을 많이 쓴 곳인 만큼 B39에서 전시하는 작품들도 공간을 적극 활용한 전시가 많았다. 현재 하고 있는 전시는 이병찬 작가의 <표준모형>, 김수현 작가의 개인전인 <Under the Lights>, 마지막으로 4인조 크리에이티브 그룹인 툰드라의 <Outlines>가 진행 중이다. 3개의 전시 모두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10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앞서 언급한 3 전시 모두 B39의 공간을 적극 활용하였다. 이병찬 작가의 <표준모형>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의 모습을 표현한 '크리쳐'와 '사라진 양말'이라는 두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본의 불규칙성과 불안함을 표현한 만큼 작품의 소리와 이미지 모두 화려하고 거대함과 동시에 불안하고 기괴했다. 작품에서 전달되는 불안감이 벙커 특유의 깊고 큰, 투박하고 낡았으며 차가운 느낌과 만나 시너지를 발휘한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크리쳐와 사라진 양말



김수현 작가의 <Under the Lights>는 공간이 분위기를 극대화시키는 시너지를 발휘하진 않지만, '위치'를 활용했다. 한정된 전시 공간에 전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1층과 2층에 걸쳐 B39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그런 구성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어 더욱 좋았다.


작가는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생태계의 풍경을 자신만의 설치 작품으로 표현한다. -중략- 자연의 조형성을 자연적인 재료와는 대비되는 파라핀 왁스 알갱이를 열전 구로 녹여 방울로 떨어뜨리는 과정을 통해 자라나는 식물, 석순과 닮은 비생물 유기체 조형물을 만들어낸다.


자연이 아닌 것으로 자연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대로 공간 곳곳에 있는 작품들은 전시되는 '대상'이 아니라, 마치 자연처럼 공간에 스며들어있었다. 작품의 제작 과정은 비슷하나, 작품의 표현방식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도 인상 깊다. 화분에서 자라나는 석순처럼 기둥 형태의 작품부터, 마치 그림처럼 볼 수 있는 평면형태의 작품, 그리고 같은 평면 형태지만 정면이 아닌 측면에 집중해 '층'을 볼 수 있는 작품, 완성된 작품이 아닌 작품을 만드는 과정 등 다양한 작품들을 여기저기서 관람할 수 있다.




툰드라의 <Outlines>는 앞의 2 전시보다 압도적이었다. 전시의 순위를 매기는 게 아니라, 이 전시 공간에서는 주도권을 빼았기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멀찍이서 감상을 하는 게 아니라 공간에 아예 압도되는 느낌.


<Outlines>는 다른 전시와 다르게 아예 분리된 공간을 활용했다. 완전히 독립적인 공간에 설치된 레이저와 오디오와 빛은 전혀 다른 공간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 여러 줄의 빨간 레이저만이 오디오에 맞춰서 쏘아지는데, 웅장하고 기계적인 소리와 어두운 공간이 주는 이질감은 새로운 공간과 경험을 창조한다. 소리가 크면 그냥 '소리'가 아니라 '파동' 혹은 '진동'으로 느껴지는 것을 경험해본 적 있을 것이다. 실제로 소리와 함께 몸에 진동이 느껴지는 경험. <Outlines>의 공간에서도 역시 파동으로 느껴지는 오디오가 엄청난 압도감을 준다.






B39는 어떻게 하면 공간을 매력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 제대로 알고 바꾼 곳이다. 그리고 신경 쓴 공간이다. 그만큼 매력적이다. 단순히 공간을 잘 설계한 것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들 역시 매력적이다. 전시공간, 소각장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작은 박물관, 누구나 즐기고 쉴 수 있는 공간, 카페, 스튜디오 이 모든 공간이 B39에 공존한다. 공간 말고도 팸플릿과 전시 포스터 디자인 등과 같은 작은 요소들까지도 신경 쓴 티가 나 B39라는 공간이 주는 이미지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이 매력적인 공간을 직접 경험해보길 바란다.



B39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를 참고하길 바란다.

https://b39.space/






writer 심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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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렉처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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