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얼굴들 : 관계의 유대와 전략의 경계
직장에서 가장 많은 정보가 오가는 곳은 회의실이 아니라 '뒷담화' 자리다.
그곳은 언제나 은밀하고, 빠르고, 솔직하다.
표면적으로는 감정의 언어처럼 들리지만, 그런 말들 이면에는 늘 계산과 방향이 숨어있다.
그리고 나는 그 언어의 두 얼굴이 어떻게 관계를 만들고 무너뜨리는지 수없이 보아왔다.
감정의 언어로 시작된 불만
대리시절의 나는 누구보다 일을 잘하고 싶었고, 성실했다.
하지만, 상사는 업무의 목적성 없는 비효율적 지시를 하였고 클라이언트는 나에게 자신들의 브랜드 마케팅이 지향하는 목적과 방향성도 없는 상태에서 자꾸 추가제안이나 수정 제안을 요청했다.
클라이언트사의 담당 프로젝트 매니저가 자신이 생각해야 할 것들까지도 위탁하면서 지속적으로 당연한 듯 요구하는 명확한 방향성 없는 수정 제안과 요청사항들은 당시 내 속을 가장 끓어오르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지 않아?'
'이 회사, 진짜 너무 비합리적이지 않아?'
'OO 브랜드 담당자... 머리가 꽃밭인가 봐 진짜.. 이전 거는 피드백도 안 주고 또 그냥 갑자기 대뜸 연락 와서 맥락도 없이 다른 거 추가제안 해달래.'
선후배 동료들과의 대화에는 회사의 비효율적인 방향성이나 지시, 소위 전문가 집단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 에이전시 업계의 업무 구조 개선을 향한 열망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때도 지금처럼,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가고 싶었고, 아무리 이해를 해보려고 해도 이상하게 굴러가는 구조를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점심시간에 나와 직장동료들이 하는 대화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게 아니라 서로의 불만을 확인하는 의식이 되어있었다.
공감은 연대가 되었고, 연대는 곧 '편'을 나누는 언어가 되었다. 그때부터는 뒷담화는 감정이 아니라 관계의 기술이 되었다.
감정의 전이를 멈추고 싶었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피로가 쌓였다.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는 대화, 누군가를 비난하고 조롱하며 쏟아내는 말들, 그리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현실.
나는 점심시간이면 헬스장에 운동을 하러 간다고 하거나, 약속이 있다고 하거나 도시락을 싸왔다며 동료들과 함께하는 점심식사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OO대리, 요즘 왜 밥 혼자 드세요?"
"너어~ 요즘 갑자기 운동한다고 우리랑 밥도 안 먹고~"
사람들은 장난스럽게 물었지만, 나는 알았다.
사실 그들은 내가 그들과 함께 할 건지 아닌지, 내가 이제 어떤 행동을 취하고 누구 쪽에 설 것인지를 떠보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그저 누군가의 감정이 필터 없이 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와 사실처럼 굳어지는 게 싫었다. 그건 어느새 내 생각의 방식과 사고까지 흐리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감정은 전염됐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그 감정의 순환 고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감정과 사고 모두가 피로했다.
리더가 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
나는 태생부터 "왜?"를 질문하는 사람이었다. 납득이 되지 않으면 이해될 때까지 파고드는 성향. 그런 성향은 사원과 대리시절엔 직속상사에게 불편함을, 리더가 된 지금은 분석력을 만들어줬다.
리더들끼리의 뒷담화는 때로는 정보의 교환이자, 각자 자신이 원하는 판을 짜기 위한 전략적 대화가 된다. 누군가는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리고, 누군가는 그 흐름의 맥락을 조정한다.
그건 이미 감정이 아닌 지략의 세계였다.
그리고 나는 그 세계의 냉정함 속에서, 감정보다 더 무서운 건 '의도'라는 것을 배웠다.
하지만 그 경계는 언제나 위험했다. 의도가 투명하지 않으면 전략은 금세 음해로 변하고, 판단 없는 공감은 또 다른 피로를 만든다.
감정과 전략의 경계선
그래서 나는 점점 말을 아끼게 되었다. 말의 목적이 명확하지 않다면, 그건 결국 누군가를 향한 무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시작된 대화가 누군가를 해하기 위한 언어로 변질되는 걸 나는 여러 번 봤다. 리더가 된다는 건 결국 말을 다루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뒷담화로 관계를 유지하고,
누군가는 뒷담화로 권력을 만든다.
그 차이는 의도와 책임에 있다.
말의 목적을 이해하는 사람
회사에서 가장 많은 정보는 회의록이 아니라 '뒷담화'에서 나온다. 그 말들은 누군가의 불만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언어다.
누군가를 해하려는 의도라면 그것은 음해이지만,
상황을 읽고 구조를 조정하기 위한 대화라면 전략이다. 결국 말을 어떻게 쓰느냐가 그 사람의 리더십을 결정한다.
직장인의 뒷담화는 언제나 목적이 있는 전략적 대화다.
그리고, 이제 그 뒷담화를 '진짜 전략적 대화'로 사용하는 또 다른 직장인의 얼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