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미워하고 있었을까

유한한 시간 앞에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대하여

by 딥핑소스

힘겹게 식사를 마친 외할아버지는 그대로 눈을 감고 누워 계셨다. 힘이 다 빠진 얼굴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눈물이 흘렀다.


그저께는 설날 연휴의 마지막날이었다. 나는 4년 만에 외할아버지를 뵙고 왔다. 오랜만에 만난 외할아버지는 많이 수척해 계셨다. 몇 년 전 내가 기억하던 외할아버지의 총기 있는 눈빛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겨울 다리를 다치신 뒤 발목 수술을 하셨고, 그 이후로 수술했던 병동에서 입원해 계시다가 지금은 거동이 불편하셔서 요양병원에서 한 달째 머물고 계신다. 올해 아흔다섯이 된 외할아버지의 상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모들과 엄마의 대화로 상태를 전해 듣기는 했지만, 나는 한동안 외할아버지를 찾아뵙지 않았다. 사실 그동안 가지 않았던 이유는, 외할아버지를 향한 나의 막연한 미움과 작은 원망 때문이었다.


우리 엄마는 스물일곱에 선을 보고 결혼했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열 살도 되기 전에 병으로 돌아가셨고, 나는 사진으로만 엄마의 엄마를 알고 있다.


외할아버지는 이후 재혼하셨고, 사춘기에 접어들기도 전 겨우 열 살 남짓한 우리 엄마에게는 새엄마가 생겼다. 두 번째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사이에 자식은 없었지만, 엄마와 사 남매를 애지중지 키운 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외할아버지는 재혼 후에도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타지와 해외를 오가며 일하셨다고 했다. 엄마와 형제들은 새엄마와 함께 같은 집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야 했고, 큰 이모는 스물한 살의 젊은 나이에 출가했다고 한다.


내가 자라면서 봐왔던 외할아버지와 두 번째 외할머니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두 분은 사이가 무척 좋았다. 어디를 가든 늘 손을 꼭 맞잡고 다니시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스무 살이 넘어서야 나의 외할머니가 엄마의 새엄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외조부모는 손주들에게는 언제나 애정이 넘치고 다정한 분들이었다. 명절이 아니더라도 집이 가까워 자주 왕래하였고, 만날 때마다 성인이 되어도 볼에 뽀뽀를 하시면서 애정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방과 후에는 외조부모집으로 가서 식사를 하고 학원도 갔다가 자고 올 만큼 제집처럼 드나들었는데, 그만큼 나와 내 동생을 잘 보살펴주시고 아껴주시던 나의 둘도 없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였다.


엄마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집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고 했다. 어린 시절 친엄마를 잃고, 오랜 시간 새엄마와 함께 살아야 했던 엄마의 삶이 얼마나 편안했을지는 나는 알 수 없다. 엄마에게 집은 울타리라기보다,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아빠와 결혼할 당시 너무 어렸고 세상을 잘 몰랐다고 했다. 요즘처럼 상대를 충분히 알아가며 연애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엄마는 아빠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느껴졌다고, 그래서 결혼했다고 엄마가 말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 당시 엄마에게 결혼은, 집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종종 생각했다. 엄마에게도 기댈 수 있는 어른이 있었고, 안정적인 가족의 울타리가 있었다면, 조금 더 자유롭게 세상을 살아보고, 자기와 맞는 사람, 맞지 않는 사람이 어떤 타입인지도 알아가면서, 자신의 미래를 독립적으로 선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물론 현실과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 했던 선택은 결국 엄마가 한 것이지만, 어느 순간 나는 엄마의 젊음이, 그녀의 인생이 참 애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회초년생이었을 무렵 두 번째 외할머니가 돌아가셨고, 그 이후 약 15년 동안 엄마와 형제들은 번갈아가며 외할아버지의 식사를 챙기고 돌봤다.


하지만 나이를 먹는 건 외할아버지만이 아니었다. 엄마와 형제들도 각자 아픈 곳이 생기고 지병이 생겼다. 그 와중에도 외할아버지는 외부인이 집에 오는 것을 꺼렸고, 엄마와 이모들이 매일같이 고기반찬을 준비해 챙기는 일을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엄마의 안쓰러운 어린 시절과 젊음이 떠오를 때마다, 엄마와 이모들이 힘들게 요리해 가져온 반찬을 두고 투정을 하던 외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어느 순간부터 외할아버지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렇게 4년이 지났다.


오늘 본 외할아버지는 내가 미워하고 원망하던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유한한 시간을 약속받고 기다리고 있는, 그저 많이 늙은 한 노인이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외할아버지는 식사를 하고 계셨지만 숟가락을 들 힘이 없어 큰 이모가 한 숟가락씩 떠먹여 드리고 있었고, 눈꺼풀을 치켜뜨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겨우 턱만 움직여 오물대며 식사하시다가, 내가 “할아버지 저 왔어요”라고 말하자 힘겹게 눈을 떠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이내 알아보셨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피멍이 든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때 외할아버지 손에 들어가는 힘이 예전 같지 않아서 눈물이 날 뻔한걸 간신히 참았다.


손등에는 링거 자국이 겹겹이 남아 있었고, 바늘이 몇 번이나 들어갔는지 피멍이 번져 있었다. 보라색 피멍이 꽃처럼 번진 그 손등이 내 손을 꽉 쥐었을 때, 내가 4년 동안 견고하게 쌓아 올린 미움의 성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피멍은 기력이 다 빠진 한 사람의 흔적 같았다.


나는 왜 진작 오지 않았을까.


모든 인간에게는 유한한 시간이 주어진다는 이 극명한 사실이 나에게 이토록 선명하게 다가온 적이 있었던가.


식사를 마친 뒤 힘겹게 병원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계신 외할아버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외할아버지에게 남은 시간과 어느새 지나가버린 4년, 그리고 엄마의 젊은 날까지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러다 내 눈에서는 눈치 없이 눈물이 차오르며 나도 모르게 흘러내렸다. 턱이 당겨졌고,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스스로도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저 나는 외할아버지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을 뿐인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마음이 오래도록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옳다고 믿는 감정 쪽에 서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이렇게 흘러버리고 나면 옳고 그름은 생각보다 오래 남지 않는다. 남는 것은 결국 그날 만났는지, 잠시라도 손을 잡았는지, 마주 앉아 있었는지 같은 일들이다.


어쩌면 나는 외할아버지를 미워했던 게 아니라, 엄마의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대신 미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시절의 우리 엄마에게도, 누군가가 그녀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한 번쯤은 "괜찮니?" 하고 물어봐주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의 어린 시절과 젊음이, 엄마의 인생과 함께 상처 입었다고 느낄 때마다 나는 어딘가에 책임을 묻고 싶었고, 그 대상이 외할아버지였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 마주한 사람은 누군가의 아버지이기 이전에, 이미 생의 에너지를 거의 다 써버린 듯한 한 명의 사람이었다. 그 앞에서 내가 붙들고 있던 작은 원망은 이미 설 자리조차 잃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흐르는 풍경 너머로 엄마의 젊은 날과 할아버지의 야윈 얼굴이 교차했다.


나는 오늘 할아버지를 용서하러 간 것이 아니라, 언젠가 나중에 ‘그때 왜 가지 않았을까’ 하고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외할아버지의 손을 잡으러 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06. 직장인의 뒷담화는 단순한 수다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