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탄이 코에 박힌 날

왜 안되는거야? 하는 질문은 내 콧속에서 태어났다

by 딥핑소스

어릴 적 나는 늘 바깥에서 친구들과 놀았다.
비비탄 총, 방구탄, 구슬치기.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나는 동네의 소란한 꼬마였는데, 그때의 나는 그걸 ‘탐험’이라 불렀다.

그날도 유치원 사총사 친구들과 어둑해진 시간에 동네 골목에서 비비탄 총을 가지고 놀았다. 그 중 한 명이 비비탄 총을 쏘았고, 총알이 벽에 맞고 어디론가 튀었는데 갑자기 내 코 언저리가 찌릿했다.


“아얏!”

순식간이었다.


내 얼굴에 비비탄 총알이 날아와서 맞은 것 같은데, 근데 날아온 총알은 어디갔지? 하기도 전에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가뜩이나 날이 어둑어둑해져서 하얀색 비비탄 총알은 바닥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친구를 향해 “야아…. 아프잖아~ 근데 괜찮아... 봐봐~ 나 코피도 안나지? 히히-”하면서 눈물이 쏙 나올만큼 찌릿하게 따갑고 아프긴 했지만 비비탄 총을 쏜 친구가 너무 미안해해서 아픈걸 꾹 참았다.


그보다 친구들이 놀란 얼굴로 “야, 괜찮냐?” 하고 둘러싸는 게 재밌었다.

그때 뭔가 엄청난 사건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는걸 생각해보면 나는 소심한 관심종자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비비탄이 바닥 어딘가에 떨어져있겠거니 하면서 바닥을 보며 튕겨나간 비비탄을 찾고 있었는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장면처럼 엄마나 오빠들이 번갈아가며 ‘OO야 밥먹어~’ 외치는 소리에 ‘나 밥먹으러 가야겠다. 나 간다~’ 하며 우리는 모두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손을 씻고 밥을 먹고 있는데 아까 맞은 코 주변이 어딘가 불편했다. 내 코 속에 뭔가 있는 것 같았다.


밥을 다 먹고 나니 엄마가 세수하고 씻고 오라길래, 화장실로 향했다.


여전히 내 코 속에 뭔가 있는 것 같아서 코를 후볐는데 뭔가는 있는 것 같았지만 코를 후비니 잘 나오지 않았다. 왠지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 엄마한테 솔직하게 말했다.


“엄마…실은 아까 애들이랑 비비탄 총으로 놀았는데, 총알이 내 코에 들어간 것 같아”


엄마가 설거지를 마치고 내 말을 듣더니 화들짝 놀라 세숫대야 앞에서 내 코를 한쪽씩 누르고 “크게 숨쉬고, 코 흥! 해!” 하라길래 흥! 했다.


‘또르르~’


흥! 하고 풀었던 내 왼쪽 코에서 비비탄 반쪽이 세숫대야에 굴러 떨어졌다.


엄마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놀람, 분노, 공포의 순으로.

엄마는 나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너.. 이제 비비탄은 이제 끝이야. 다시는 그런 거 가지고 놀지 마.”


나는 엄마가 하는 말을 바로 이해했다.

위험할 수 있으니까, 다치면 안 되니까.

그 말의 논리는 너무 완벽했다.

하지만, 납득은 안 됐다.


나는 다치지 않았고, 오히려 그날 너무 재밌었다.


내 콧속의 비비탄 사건은 나에게 ‘위험’이 아니라 ‘경험’이었다. 그런데 어른들은 경험을 위험으로 바꾸는 데 참 빠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비비탄 총은 정말 위험한 물건이었다. 그때는 잘 몰랐겠지만)


언제나 “하지 마”라는 말은 언제나 내가 제일 신나 있을 때 들려왔다.


그날 이후로 세상이 조금 낯설어졌다. 나에게는 그저 궁금해서 한 일이, 어른들에게는 금지의 이유가 되는 일이 많았다.


‘위험하니까 하지 마’, ‘여자아이는 그러면 안 돼’,
‘이건 네가 몰라서 그래’.

어쩌면 그때부터 나는 세상을 의심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세상이 금지할수록,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왜 안 되는 거야?”
이 질문은 그때 내 콧속에서 태어났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렸을때부터 어떤 일도 이해되지 않으면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이었던것 같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의 비비탄은 그냥 장난감이 아니었다.


그건 내 안에 ‘이해의 본능’을 박아놓은 첫 작은 조각이었다.


지금도 가끔 무언가 이해되지 않으면 콧속이 근질거리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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