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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리 Oct 27. 2023

인도의 아침식사

뉴델리 에어비앤비에서 만난 자야 아주머니의 아침 밥상

인도라는 나라는 애초에 나의 선택지에 없던 여행지다. 일부 단편적인 사건들을 확대 생산하는 수많은 미디어로부터 주입된 편견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인지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위험하고 더러울 것이란 생각에 나는 살면서 갈 일 없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반면 나의 모친은 2006년에 출장으로 인도를 방문한 적 있는데, 우리 남매에게 '인생을 알려면 인도를 가야 한다'라고 종종 말씀하시곤 했다. 분명 그녀도 더러운 거라면 딱 질색해하는 스타일인데, 시인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처럼 인도 사람들은 다들 인생 철학자라도 되는 것인가.. 한편으론 궁금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지의 나라, 인도였다.

로디가든(Lodhi Garden)을 걷던 중 찍은 사진. 델리는 올드 앤 뉴가 멋지게 공존하는 도시다. [사진 ©봉봉리]

명절마다 여행을 가곤 하는 우리 가족의 2023년 추석 여행지는 코로나 이후로 가격이 미친 듯이 오른 항공편에 좌우되었는데, 뉴델리의 직항 항공편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그렇게 우리 남매의 계획에 없던 인도로 향하게 되었다. 여행을 가기 전부터 인도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뉴스들을 나에게 퍼다 나르던 동생도 어느 순간부터는 체념했는지 더 이상 보내지 않았다. 대신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는데, 길가에 소똥이 널려 있어 캐리어를 가져가면 낭패를 본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주워듣고는 일주일치 짐을 모두 백팩에 넣어왔다. 어차피 우리는 뉴델리에 머무는 동안 한 에어비앤비에서만 지낼 거라 굳이 무겁게 들고 가지 않아도 되었는데 말이다.

골목마다 복잡하긴 하지만 생각보다 깨끗했던(!?) 델리의 거리 [사진 ©봉봉리]

뉴델리 인디라간디국제공항에 도착해 에어비앤비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본 도시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깨끗한데?'였다. 우리가 가기 3주 전 뉴델리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렸는데, 이를 앞두고 대규모의 빈민가를 강제로 철거해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앉았단 소식을 들은 적 있다. 쓰레기가 나뒹구는 곳도 여전히 많았지만, 관광지 주변 큰 도로는 환경미화에 깨나 신경 쓴 게 티가 났다. 국제적인 행사를 앞두고 정비한 게 틀림없는 도시의 모습이었다. 17년 만에 뉴델리를 방문한 모친은 택시 창밖을 바라보며 천지가 개벽했다며 계속해서 혀를 내두르셨다. 더 이상 소똥으로 캐리어를 끌지 못할 정도의 길거리가 아니었다.

물론 이렇게 길거리에 원숭이와 소가.. 지나다니는 풍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사진 ©봉봉리]

내가 오랜 시간 고심해서 찾고 예약한 뉴델리의 에어비앤비는 라즈팟 나가르(Lajpat Nagar)라는 동네에 위치해 있었다. 나름 중심부에 있어 뉴델리 어디를 가든 접근성이 좋고, 주변에 큰 규모의 시장(Lajpat Nagar Market)도 있는 곳이다. 이 동네엔 각 구역마다 게이트가 따로 있는데, 낮엔 개방되어 있지만 늦은 밤이면 폐쇄되어 주민들만 드나들 수 있게끔 나름 보안이 되어 있었다. 우리의 숙소는 공원이 바로 앞에 있는 30여 평의 3베드룸 빌라였다. 각 방마다 욕실이 딸려 있고, 부엌과 발코니, 그리고 큰 거실이 있었다. 우리 세 가족이 싸우지 않고 여행하는 방법은 각방이다. 하루종일 붙어서 같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집에 돌아와선 각자 쉴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식물들이 반겨주는 발코니와 공용공간이 널찍한 에어비앤비 [사진 ©봉봉리]

로컬 하우스에 머무는 가장 큰 묘미는 그 나라의 생활양식을 엿보는 재미가 아닐까. 공간에서 문화의 다름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이 바로 부엌과 욕실인 것 같다. 인도의 샤워실은 헤드가 위에 고정되어 있고 아래 양동이와 물바가지가 있었는데, 이건 모든 욕실에 똑같이 있었다. 처음에는 손빨래를 하기 위한 도구인가 싶었지만, 나중에 찾아보니 인도는 양동이에 물을 담아 씻는 버킷 샤워(Bucket Shower)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호텔에서도 이 양동이와 바가지를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세계에서 인구수가 가장 많은 나라이니 물 절약을 위해 자연스레 생긴 생활양식인 듯싶다. 인도의 부엌도 꽤 신기했는데, 서랍이란 서랍을 다 열어보니 향이 꽤 강한 인도의 여러 향신료들부터 어디에 쓰는 것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주방기구들이 보였다. 이 기구들이 어떻게 쓰이는지는 나중에 이 에어비앤비의 요리사 자야 아주머니(Mrs. Jaya)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늘 정갈하게 정돈된 집이 우릴 반겨주었다. 매일 청소를 해주는 메이드는 놀랍게도 코끼리상에 걸려 있는 꽃도 매일 바꾸어주었다. [사진 ©봉봉리]

저렴한 인건비 때문인지 인도의 에어비앤비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이제까지 정말 많은 에어비앤비를 경험해 봤지만, 포터와 요리사, 메이드까지 있는 에어비앤비는 처음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3층까지 짐을 올려줄 일꾼을 요청할 수도 있고, 가정부가 매일 들러 하우스키핑을 해주기도 했다. 외출 후 집에 들어오면 가지런히 정리된 침대와 가정부가 미리 켜둔 인센스의 은은한 향이 기분 좋게 반겨주었다. 그리고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아침식사 출장서비스가 아닐까 싶은데, 하루 500루피(한화 8,000원 정도)만 내면 요리사가 직접 와 우리 세 식구를 위한 아침식사를 만들어주었다. 첫날 아침밥을 맛본 후 우린 에어비앤비에 머무는 내내 요리사인 자야 아주머니를 부르게 되었다.

매일 아침 인도의 밥상을 차려주신 자야 아주머니 [사진 ©봉봉리]

자야 아주머니는 매일 아침 8시에 땡 하고 초인종을 누르셨다. 그러면 집 대문과 가장 가까운 방에 머무는 동생이 문을 열어주곤 했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여전히 이불속에 있지만 곧이어 부엌에서 들려오는 달그락달그락 요리 소리와 맛있는 음식 냄새가 가장 먼 내 방까지 들어오며 눈이 절로 떠졌다. 인도에 도착한 후 자야 아주머니가 첫 아침식사로 선보인 음식은 바로 난(Naan)의 일종인 알루 파라타(Aloo Paratha)와 요거트로 만든 라이타(Raita)였다. 아침에 직접 장 봐온 재료로 밀가루 반죽부터 시작해 꽤 오랜 시간 요리를 한 것 같은데 생각보다 소박한 밥상이었다. 하지만 맛을 본 순간 우리 모두 눈이 번쩍 뜨이며 쉴 새 없이 손으로 난을 찢어가며 먹기 시작했다.

저 밥통같이 생긴 것의 정체는 바로 난 보온통. 감자를 넣은 난의 일종인 알루 파라타와 요거트로 만든 라이타를 맛본 후 이 아침밥을 매일 먹고 싶어졌다. [사진 ©봉봉리]

이제까지 우리가 먹어오던 인도의 난은 보통 얇은 반죽의 기름 좔좔 흐르는 버터난이나 갈릭난 정도였는데, 알루 파라타는 으깬 감자가 들어가 좀 더 두껍고 통통했다. 오히려 우리의 감자전 같은 식감이랄까. 맛도 엄청 고소하고 풍미도 좋았다. 라이타는 요거트로 만든 곁들임 소스 같은 건데, 인도 레스토랑을 가면 사람들이 라이타를 밥에 부어 비벼 먹는 모습이나 디쉬 딥으로 찍어 먹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나는 미리 찢어 놓은 알루 파라타 위에 라이타를 숟가락으로 퍼서 얹어 먹었는데, 정말 최고의 궁합이었다. 잘 먹는 우리 모습을 보며 아주머니는 끊임없이 반죽을 구워냈다. 첫날 부엌을 구경할 때 우리나라의 옛 전기밥솥같이 생긴 걸 봤었는데, 이것의 쓰임새를 드디어 알 수 있었다. 바로 난을 보관하는 보온통. 자야 아주머니는 알루 파라타를 구워내는 족족 이 보온통에 넣어 주셨는데 마치 화수분과도 같았다. 우리가 배를 드럼처럼 통통 치며 배불러 죽겠단 제스처를 하고 나서야 그녀는 굽기를 멈추었다.

자야 아주머니가 손수 밀대로 반죽해서 만든 알루 파라타는 화수분처럼 구워지고 있었다. 아침마다 탐이 났던 난 전용 후라이팬 [사진 ©봉봉리]

사례비를 전한 뒤 다음 아침도 해주십사 요청드렸다. 알 수 없는 힌디어로 말씀하셨지만, 어떤 음식을 원하는지 물어보는 것 같아서 "Whatever you cook!"이라고 대답했다. 다음날 그녀는 어김없이 아침 8시에 나타났다. 이번엔 어떤 요리를 해주실까 기대하며 이번엔 일찍 일어나 부엌을 기웃거렸다. 이번에도 뭔가 밀가루 반죽처럼 생긴 걸로 만든 요리 하나와 하얀색 디핑 소스 하나인 것 같은데, 정확히 무언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자야 아주머니는 영어를 잘하지 못하셨지만, 당신이 남인도 출신이고 이건 당신의 고향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라고 얘기해 주셨다. 바로 도사(Dosa)와 코코넛 처트니(Coconut Chutney). 도사는 쌀과 렌틸콩이 들어간 반죽을 얇게 팬케이크 혹은 크레페처럼 구워낸 것으로, 주로 처트니와 함께 남인도의 아침밥상에 올라온다고 한다. 굉장히 고소하면서도 담백해서 속에 부담이 없는 훌륭한 아침식사였다.

자야 아주머니 고향인 남인도에서 아침식사로 주로 먹는 도사와 처트니 [사진 ©봉봉리]

인도를 떠나는 마지막날엔 자야 아주머니도 뭔가 더 푸짐하게 먹이고 싶으셨는지 기존에 해주셨던 보통의 메뉴에서 세 가지나 더 추가되었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강황으로 만든 포슬포슬한 밥과 향신료 향이 은은하게 나는 콜리플라워 볶음이 맛있었다. 무엇보다 첫날 우리가 너무 맛있게 먹었던 알루 파라타와 라이타를 마지막으로 원 없이 맛보고 갈 수 있어 더 좋았다. 한국에서 가져온 작은 선물과 사례비를 드리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작별은 늘 찡하지만,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며 아주머니와 진한 포옹을 나누었다. 로컬의 정성 가득한 아침식사로 매일의 하루를 시작한 건 큰 행운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 인도 델리라는 도시는 나에게 있어 자야 아주머니의 아침밥상으로 기억되리.

한국으로 떠나는 날, 마지막 밥상. 우리 가족이 너무 좋아했던 알루 파라타를 원없이 먹을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사진 ©봉봉리]




인도를 여행하며 내가 갖고 있던 인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선입견들이 와장창 깨졌다. 자야 아주머니와 하우스키핑을 해준 어린 메이드, 드라이버, 가이드, 식당 직원들, 그리고 에어비앤비 호스트 가족까지 우리가 만난 인도 사람들은 모두들 친절하고 다정했다. 물론 기분 나쁠 정도로 빤히 쳐다보거나, 타지마할에 가선 가운데 손가락 욕을 날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이상한 사람들은 어디든 있기 마련이니까.. 17년만에 델리를 다시 방문한 모친이 인도의 눈부신 성장에 놀랐던 것처럼 나도 십수년 뒤에 이곳을 다시 방문하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겠지?

모친이 쓴 에어비앤비 게스트북 [사진 ©봉봉리]
비행시간이 늦어 짐을 맡기러 간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대궐같은 집. 호스트의 장모가 우릴 누구보다 환하게 반겨주었다. [사진 ©봉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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