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또 라 코스트와 함께 한 남프랑스 건축 여행
모나코 몬테카를로(Monte-Carlo)에서 시작해 프랑스 니스(Nice),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 아비뇽(Avignon), 아를(Arles), 몽펠리에(Montpellier), 툴루즈(Toulouse), 피레네 산맥(Pyrénées)과 안도라공국(Andorra), 그리고 보르도(Bordeaux)까지. 2주 동안 프랑스 남부 지역을 횡단 여행하며 먹었던 음식에는 늘 훌륭한 와인이 있었다. 음식과 술, 그리고 건축과 예술은 내가 여행을 할 때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들인데, 그런 의미에서 남부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의 북쪽에 자리한 샤또 라 코스트(Château La Coste)는 모든 요소를 다 충족한 곳이 아니었나 싶다.
프랑스에서는 일정 면적 이상의 자체 포도밭을 가진 와이너리 이름에 샤또(Château)라는 명칭이 붙는다. 샤또는 프랑스어로 '성(Castle)'을 뜻한다. 샤또는 보통 오랜 전통을 자랑하며 대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샤또 라 코스트는 역사가 그리 길진 않다. 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신의 기업가 패트릭 맥킬렌(Patrick McKillen)이 엑상프로방스의 풍광에 반해 1682년부터 역사가 이어져 오고 있는 지금의 와이너리 부지를 2002년에 매입했고, 유명 건축가와 예술가들을 동원해 이곳이 와이너리인지 미술관인지 헷갈릴 정도로 그 경계가 모호한 대규모 예술 공원으로 조성했다.
샤또 라 코스트는 포도를 재배하는 130 헥타르(약 39만 평)의 포도밭을 포함해 총 200헥타르(약 60만 평)의 방대한 면적을 자랑한다.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 편백나무, 참나무 숲이 프로방스 수평선까지 끝없이 펼쳐진다. 이 드넓은 부지 곳곳에 장 누벨(Jean Nouvel)과 안도 타다오(Ando Tadao), 프랭크 게리(Frank Gehry), 렌조 피아노(Renzo Piano) 등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의 건축물과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이우환 등 유명 아티스트들의 예술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박서보,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앤디 워홀(Andy Warhol), 티아 투이 응우옌(Tia-Thuy Nguyen) 등 유명 아티스트들의 특별전도 종종 열리기도 한다.
‘예술&건축 산책로(Promenade Art & Architecture)’를 탐방하며 샤또 곳곳에 있는 건축물과 예술 작품들을 감상하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투어에 참여했다. 투어가 무려 2시간 가까이 진행된다는 점만 보더라도 이 부지가 얼마나 큰 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가이드 투어는 매일 프랑스어와 영어 두 가지 언어로 제공되며, 샤또 라 코스트의 홈페이지(https://chateau-la-coste.com)에 가면 직접 예약할 수 있다.
투어는 안도 타다오 고유의 건축 언어가 돋보이는 아트센터(Centre d'Art)에서 시작한다. 조화로운 선형의 노출 콘크리트 건축물, 그리고 드넓고 잔잔한 호수를 형상화한 것만 같은 야외 공간이 아름다웠다. 야외 공간의 물 위엔 루이스 브루주아(Louise Bourgeois)의 거대한 거미 조각상인 <Crouching Spider 6695, 2003>와 알렉산더 칼더의 너무나도 유명한 <Small Crinkly, 1976>, 그리고 히로시 스기모토(Hiroshi Sugimoto)의 <Mathematical Model 012, 2010>가 설치되어 있다.
안도 타다오의 작품들은 이후에도 잊을만하면 계속 나오는데, 샤또 라 코스트에서 가장 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가 아닐까 싶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바로 포도밭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배기 위 콤포스텔라 성지 순례길에 자리한 예배당. 그만의 특징인 노출 콘크리트 벽을 따라 올라가면 설치미술가 장-미셸 오토니엘(Jean Michel Othoniel)이 무라노 유리로 붉은 와인을 상징하며 만든 빨간 십자가 <La Grande Croix Rouge, 2007-2008>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옆엔 안도 타다오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 채플이 자리하고 있다. 방치된 옛 건물을 그대로 살린 후 유리로 외벽 패널을 만들었는데, 오랜 세월을 견뎌온 기존의 돌과 모던한 유리 소재가 어우러져 과거와 현재의 공존이 돋보인다. 지붕을 덮을 때엔 약간의 틈을 두어 밖에서 스며들어오는 빛이 기도실 내부에서 은은하게 나타날 수 있도록 설계한 것 또한 경건한 마음을 들게 했다.
마치 미래의 우주선 같은 UFO 모양의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톰 섀넌(Tom Shannon)의 4미터짜리 작품 <Drop, 2009>을 지나면 안도 타다오의 또 다른 건축물, 파빌리온이 나타난다. 파빌리온 안에는 4개의 큐브가 있는데, 환경오염과 기후 변화에 대한 생각을 표현한 설치 작품이라 한다. 아트센터도 만들고, 예배당도 짓고, 파빌리온에 설치 미술까지. 안도 타다오는 이곳 샤또 라 코스트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맘껏 다 펼쳐보지 않았나 싶다.
렌조 피아노의 전시 공간 <Exhibition Pavilion, 2017>도 인상적이다. 6미터 깊이로 땅을 파서 건축물이 포도밭과 같은 시선에 놓일 수 있게 한 조화로움이 돋보인다. 이 공간은 본래 전시와 함께 와인을 보관하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내가 갔을 때만 하더라도 20세기 프랑스 실용주의 디자인의 선구자로 불리는 장 프루베(Jean Prouve)의 가구 디자인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장 프루베의 가구와 건축 자재 등 작품 60점을 만날 수 있었다.
건축 투어의 마지막은 역시 프랑스 출신의 건축 거장, 장 누벨(Jean Nouvel)이 설계한 양조장이 대미를 장식하며 끝이 난다. 그 많고 많은 작품들 중 샤또 라 코스트 부지에 가장 먼저 설계된 건축물이라고 한다. 원통형의 건물을 반으로 자른듯한 형태로, 금속판이 지붕을 덮고 있다. 상당히 미래적인 소재의 이 와인 저장고를 보면서 마치 우주정거장의 도킹스테이션 같단 생각이 들었다.
산책로를 다 둘러봤으니, 이젠 먹고 마실 차례다. 샤또 라 코스트에는 무려 프랜시스 말만(Francis Mallmann)의 레스토랑이 있다. 파타고니아의 외딴섬에서부터 프랑스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까지, 자연식 오픈파이어 스타일 요리를 선보이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스타 쉐프 프랜시스 말만. 나에게는 넷플릭스 시리즈 쉐프의 테이블(Chef's Table) 시즌 1에서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요리사였고, 샤또 라 코스트를 가기 전 홈페이지에서 프랜시스 말만의 레스토랑이 있는 걸 알곤 미리 예약을 했다.
샤또 라 코스트에서 생산한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들이 줄줄이 이어져 나온다. 오픈파이어 그릴을 자랑하는 프랜시스 말만의 식당답게 숯불에 구운 채소 요리가 일품이었고, 특히 생선 그릴 요리는 샤또 라 코스트의 화이트 와인 레 빵뜨 두스(Les Pentes Douces Blanc)와 페어링이 훌륭했다. 최고의 떼루아를 자랑하는 프로방스의 샤또답게 와인의 질감은 부드러웠고, 촘촘한 탄닌과 향긋한 아로마가 돋보였다. 밸런스가 매우 좋은 우아한 부케의 유기농 와인들을 레드부터 화이트, 로제까지 모두 잔술로 다 맛볼 수 있어 더욱 좋았다. 병째 주문하지 않아도 되어 부담 없다.
샤또 라 코스트는 그 자체로 여행의 목적지가 되는 곳이다. 프로방스의 드넓은 자연 속을 걸으며 유유히 흩어져 있는 예술 작품들을 만나는 호사를 언젠가 또 누릴 수 있길 바라며. 다음에 방문할 땐 샤또 안에 있는 숙소 빌라 라 코스트(Villa La Coste)에도 머물러 보리!
Château La Coste
Add. 2750 Route De La Cride, 13610 Le Puy-Sainte-Réparade, France
Tel. +33 442618998
Web. https://chateau-la-coste.com
Open Hours. 매일 10:00-19:00
*영어 가이드 투어는 매일 10:00 14:30 16:30 세 차례 제공된다. (2-3시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