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봉봉투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봉리 Jun 09. 2018

당신이 지금 도쿄에 가야 하는 이유

2018년 10월 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야만 합니다.

도쿄에는 자주 가는 편이다. 출장으로도 가고, 친구들을 보러 가기도 하고, 오로지 먹기 위해 가기도 한다. 그렇게 많이 갔는데도 계속 방문하지 못한 곳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츠키지 수산시장의 참치 경매장이다. 늦잠 자서 못 가고, 숙소가 멀어 못 가고, 아침에 가도 이미 늦어버려 주전부리만 먹고 오고. 간절하지 않았던 거다. 그러나 시장의 이전(移轉) 날짜가 점점 가까워져 오면서 간절함이 생겼다. 아예 참치 경매를 보기로 마음을 먹고 먹방특공대를 꾸려 도쿄로 날아갔다.

츠키지 시장은 1935년부터 지금까지 8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어시장이다. 하루 무려 2천여 톤의 수산물이 거래되며, 생선뿐만 아니라 채소와 과일, 반찬, 주방기기를 파는 상점들도 모여 있어 '도쿄의 부엌'이라 불린다. 올해 10월 11일이면 신설되는 도요스(豊洲)로 이전하기 때문에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질 츠키지에서 참치 경매를 보는 건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참치 경매는 보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맘껏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본래 츠키지 시장은 관광지가 아닌 시장 상인들이 일하는 곳이기도 하고, 안전상의 이유도 있어 일반인은 입장할 수 없다. 하지만 하루 120명에 한해 장내에서 이루어지는 참치 경매를 관람할 수 있다. 사전 예약이 불가능하고 새벽 5시까지 선착순으로 접수를 받는지라 최대한 일찍 가야 하는데, 나와 친구들은 4시 30분에 도착했는데도 하마터면 들어가지 못할 뻔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를 마지막으로 접수가 마감되었다. 10월이면 없어지는 츠키지 시장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온 듯했다. 생각보다 일본인들도 꽤 보였다. 이들에겐 서울로 치면, 마치 광장시장이 사라지는 기분이겠지.

타레의 질주

츠키지 시장의 새벽은 그야말로 활기가 넘친다. 장내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는데, 바로 '타레의 질주'다. 타레(Turret)는 좁은 골목과 교차로 사이를 쉽게 지날 수 있도록 고안된 소형 운반차로, 이 타레와 지게차들이 놀라우리만큼 빠른 속도로 시장을 활보한다. 까딱하다간 사고 나기 십상이기에 인솔자의 안내를 잘 따라야만 한다. 120명의 관람객들은 모두 형광색 조끼를 입어야 했는데, 이는 도로 위를 질주하는 타레 운전자들이 '츠키지 시장에 처음 온 초짜'들을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리라.

씽씽 달리는 타레들로부터 안전하기 위해선 반드시 인솔자의 안내를 따라야 한다.

먼저 온 60명이 선발대로 5시 25분부터 50분까지 관람하고, 나머지 60명이 후발대로 5시 50분부터 6시 15분까지 관람한다. 우리는 후발대 중에서도 맨 끄트머리에서 졸졸 따라갔다. 나는 멍청하게도 어시장에 가면서 새하얀 캔버스화를 신고 갔는데, 역시나 금세 더러워졌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신기한 타레 세상을 뒤로하고, 드디어 경매장 안으로 들어선다. 남아공, 호주, 발리, 뉴질랜드 등 세계 곳곳에서 잡힌 참치들이 이곳에 한데 모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츠키지를 '참치의 무덤'이라고도 부른다. 온전한 참치의 모습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내 키보다도 큰 수많은 참치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셰프의 테이블 Chef's Table]을 연출한 데이비드 겔브(David Gelb)의 또 다른 수작이 하나 있다. 바로 올해 92세가 된 스시 장인 지로 오노(Jiro Ono)의 요리 철학을 그린 다큐멘터리 [스시 장인: 지로의 꿈 Jiro Dreams of Sushi]이다. 지로의 장남이자 제자인 요시카즈 오노(Yoshikazu Ono)는 매일 아침 츠키지를 방문해 질 좋은 재료들을 하나하나 공수한다. 그가 참치 거래는 단연 최고라고 일컫는 참치 중개인 후지타 씨가 나오는데, 최상급 상품만을 취급한다는 그가 경매장에서 질 좋은 참치를 고르는 모습이 꽤 자세히 나온다. 손으로 참치의 질감을 확인하면 맛이 어떨지 감이 온다는 후지타의 말. 그것이 생선 고르기의 기본이라 한다.

David Gelb의 다큐멘터리 [스시 장인: 지로의 꿈]

그렇게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후지타가 그랬던 것처럼 경매장 안의 상인들은 경매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참치의 상태를 살핀다. 참치는 유질(油質), 빛깔, 기생충의 흔적 등을 통해 그 품질을 확인할 수 있다. 참치의 꼬리 부분을 보기만 하는 상인도 있고, 살점을 조금 도려내어 손전등으로 요리조리 비춰 보기도 한다. 살점을 손으로 짓이기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 이는 손의 체온으로 살점을 녹이며 지방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라 한다.

경매인의 구령과 입찰인의 손짓눈짓이 오고 가는 참치 경매의 현장

종이 울리며 경매의 시작을 알리자, 입찰인들이 경매사 주위로 모인다. 장내엔 사뭇 엄숙한 분위기가 맴돈다. 경매인의 주술 같은 뜻 모를 구령에 맞춰 입찰인들이 현란한 손짓과 매서운 눈빛으로 호가를 주고받는다. 이때 입찰에 방해가 될 수 있으므로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것은 금물이다. 최고가를 부른 입찰인이 참치를 얻게 되고, 거래는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넋을 잃고 경매 현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떠날 시간이란다.

경매장 밖을 나오니 어마어마한 양의 스티로폼 상자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아침 6시를 넘긴 장내시장은 더 많은 사람들로 더욱 활기가 넘쳤다. 조끼를 반납한 후 장외시장을 둘러보았다. 다이와스시(大和寿司), 스시다이(寿司大) 같은 유명한 스시야(すしや) 앞에는 이미 줄이 어마어마하게 늘어서 있었다. 새벽 5시에 여는데도 스시를 먹기 위해 두 세 시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츠키지 시장에서 먹는 스시는 우선 해산물의 질이 워낙 좋은 데다가, 오마카세의 가격도 4,000엔 안으로 저렴한 편이기에 새벽부터 사람들로 붐빈다. 사실 츠키지 시장 안에 있는 스시야라면 어딜 가도 기본 이상은 하기에 굳이 두 시간 가량 기다려서 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간 이와사스시(岩佐寿司)는 개업한 지 20여 년밖에 되지 않은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스시야였지만, 매우 훌륭한 오마카세를 맛볼 수 있었다. 스시를 배불리 먹은 후 시장에서 그릇 구경, 반찬 구경하며 소화를 시킨 다음 일본식 계란말이인 다마고야키를 먹는 것도 필수 코스다.

Iwasa Sushi
그릇과 젓가락 삼매경인 이주사랑
황금빛 향연의 계란말이. 입으로 넣기 전 코로 먼저 들이마시는 중

영국의 푸드칼럼니스트 마이클 부스(Michael Booth)가 쓴 [오로지 일본의 맛 Sushi and Beyond]을 책장이 넘어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일본의 식문화에 대해 유쾌하고 신랄하게 써 내려간 견문록이다. 그가 책에서 찬양해 마지않은 곳이 있는데, 바로 츠키지 시장이다. 그는 시장이 도요스로 이전하기 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방문하라 말한다. 대출을 받든, 적금을 깨든, 차를 팔든, 아니면 이웃의 콩팥이라도 팔아서라도 가라 할 정도다.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이 인간 비약이 너무 심한 게 아닌가 싶었으나, 그 표현엔 전혀 과함이 없었다. 유럽 사람들이야 일본이 먼 나라이니 빚을 내서라도 다녀오라 하겠지만, 한국은 가까운 나라 아닌가. 마음만 먹으면 무박 2일로도 갈 수 있다. 올해 10월 전에 꼭 방문하시라! (날 데려가면 더 좋고)

마이클 부스의 저서 [오로지 일본의 맛] 표지와 KBS 다큐멘터리 [슈퍼피쉬] 스틸이미지

덧, 참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KBS가 5대륙 24개국을 방문해 2년에 걸쳐 제작한 다큐멘터리 [슈퍼피쉬]를 보시길 추천한다. 물고기가 인간의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탐구한 내용인데, '마탄자(Matanza)'라 불리는 이탈리아의 참치잡이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산란을 위해 대서양을 건너는 참치들을 잡기 위해 지중해의 좁은 해협에 그물을 치고 기다린다. 그렇게 '죽음의 방'에 들어온 참치 떼를 어부들이 작살로 한 마리 한 마리 죽여 푸른 바다를 핏빛으로 물들이는 살육의 축제를 벌이게 되는데, 영상미가 압권이다. 좀 잔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지중해의 어부들은 3천여 년 전부터 마탄자 축제를 통해 부족한 먹거리를 해결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말미엔 츠키지 시장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온 참치의 경매 장면부터 긴자의 한 식당에서 펼쳐지는 참치 해체쇼까지.

츠키지 어시장을 그린 원작 만화와 영화 [츠키지 어시장 3대손]

덧 2. [어시장 삼대째 築地魚河岸三代目]라는 만화책이 있다. 브런치 글을 쓰기 위해 동네 책방에서 한 권 빌려봤는데, 명작의 스멜이 난다. 은행원이던 주인공이 장인어른의 뒤를 이어 츠키지 어시장의 도매점 어진(漁眞)의 3대 주인을 맡아가는 이야기인데, 생선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했던 주인공은 끝없는 노력과 뛰어난 미각을 통해 전문 도매상인으로 성장해간다. 도요스로 이전하는 문제로 불안해하는 츠키지 상인들의 모습을 그리기도 하고,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타격을 입은 수산업의 모습 등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 만화다. 2008년, 오오사와 타카오(Osawa Takao)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했으나, 어디서 볼 수 있는지 도통 못 찾겠다. 영화 [츠키지 어시장 3대손] 볼 수 있는 방법을 아시는 분은 좀 알려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Tokyo Sweets 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