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딥마고 Jun 28. 2016

방송국 옆 산부인과_Prologue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기록의 시작


"니도 결국 달라질거야."


 5년 만에 입사동기 A를 만났다. 다부진 체격에 막 바닷가에서 그을린 듯한 피부, 왜 숨기려 하는지 모르겠지만 숨기려 해도 드러나는 경상도 억양. 어이 우리 피디님. 하고 부를 때 웃음 머금은 눈매, 해병대원 같은 짧은 헤어스타일까지. 그대로였다. 그런데 본인 말로는 다르다는 거였다.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사고체계가 달라진다, 가치관의 재배치가 시작된다, 이 녀석도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부모가 된다는 것에 관해 말이다.


"나랑 와이프. 원래 애기들 되게 싫어했거든. 길에서 애기들 봐도 시끄럽고 정신 사납고. 같이 있는 엄마 아빠도 피곤해 보이고 별로 좋아 보이지가 않아서. 근데 내 애기는 다르더라. 이게 어떻게 말로 설명이 안 된다. 와이프 원래 승무원이었는데. 임신하고 바로 관두데. 별로 일할 필요성을 못 느끼더라. 다 필요없고 이게 너무 행복하단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 중에도 여자애들은 임신하면 고민하다가 거의 퇴사하더라. 난 몰랐는데 그게 그렇대. 디자인하던 친구도 관두고..."


- 소영이?

내가 물었다. 동그란 눈과 토끼 같던 입꼬리가 단번에 떠올랐다.


"맞다, 소영이 니도 알제. 우리 같이 연수 받았잖아. 걔 쌍둥이 낳았다. 원래 복직하려다가 연락해보니 별로 생각이 없어졌다 카더라. 니는 뭐 소식 없나?"


 사실 소식이 있다. 얼마 전 결혼 3주년을 맞이했고,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임테기(임신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확인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뭐 그러게 아직. 이라 얼버무린다. 임신이 안정기에 들어서는 3개월까지는 가족 외 다른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을 인터넷 여기 저기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주변 사람들이 아기에 대해 묻는 것이 큰 스트레스와 상처로 남는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아직 회사 직속 상사에게도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내가 일하는 방송국의 특수한 역사와 그 안에서 내가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회사에서 최초로 임신한 PD다.


 크리에이티브다 뭐다 하지만 PD도 결국 직장인인데 뭐 그렇게 대단한 직업이고, 남들 다 하는 임신과 출산을 내가 한다고 뭐가 그렇게 특별하랴. 다만 내가 이 글을 쓰고 싶었던 건, 임신을 함과 동시에 나의 성별이 내가 아무렇지 않게 해 왔던 일의 '한계'로 작용한다는 것을 피부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과 육아라는 보편적인 두 이야기의 공존은 곧 '한계극복기'로 직결된다. 결혼한 선배들 중 남자 선배는 거의 모두가 아이를 낳았다. '배우자가 임신한(했던)' PD는 넘쳐나는 셈이다. 하지만 PD 스스로가 임신한 경우는 이 방송국 역사를 통틀어 내가 처음이다. 결혼한 여자 PD는 나를 포함해 3명인데 나머지 두 선배는 아직 계획이 없으신 것 같고, 내가 입사하기 전에 계셨던 선배들은 일 잘하다가 결혼을 하고 임신 계획이 서면 이 회사 안에서 타 부서로 이동을 하거나, 직종을 바꾸어 이직했다고 들었다. 물론 어떤 직종이어도 한국에서 워킹맘으로 산다는 건 눈물이 마르도록 힘겹고 버거운 일이겠지만, 아마 '덜 불가능한' 방향을 택했을 거라 생각한다. 기획 기간에는 회의한다고 아침 다 돼서야 퇴근, 제작 들어가면 이틀 밤 새서 편집하다가도 촬영 가서 몽롱한 몸 상태로 현장을 지휘해야 하는 3D 직업인으로서, 체력과 창의력이 아닌 생뚱맞은 성별이 한계로 작용할 줄이야. 이 어리둥절함은 최근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을 전후로 폭발한 페미니즘에 대한 개인적 관심과 - 나는 마치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처럼 페미니즘 관련 서적을 한꺼번에 7권 구매해서 쌓아놓고 하나씩 읽고 있다 - 임신은 둘이 같이 했는데 막상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겪는 것은 나 뿐인 것 같다는 알 수 없는 외로움, 또 온 세계의 중심에 오로지 나를, 나만을 두던 이 자아중심적 철부지가 '엄마'가 된다는 낯선 감정이 뒤섞여 강박적인 기록의 욕구를 낳았다. A의 말처럼, 나도 결국 달라지게 될까? 나도 남들처럼, '그렇게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진부하고 익숙한 이야기를 들려주게 될까?


 스테퍼니 스탈은 <빨래하는 페미니즘>에서 딴 나라 얘기 같던 임신과 육아로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망가지는 것을 좌시할 수 없어 모교로 돌아가 페미니즘 고전 서적을 읽는 수업을 청강한다. 이 책은 수업의 내용과 자신의 육아생활을 성공적으로 교차시키면서 '생활밀착형' 페미니즘 서적이라는 수식어를 획득한다. 다음의 내용은 나 뿐 아닌 현 시대 수많은 여성들의 깊은 공감을 살 게 분명하다.


(...) 파티광 아가씨들은 방탕했던 삶의 방식을 반성하고 정착하기 위한 길을 모색한다. 한때 이브를 사과로 이끌어 한입 베어 물게 만든 이기심, 야망, 호기심에 물들어 살던 그들은 결혼해 아이를 낳아 기르며 이제는 순종과 안주가 최고라고 말한다. 이는 유명한 신화들이 전개되는 방식이다.
(...) 나는 여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그런 통속적인 이야기 전개에 건강한 회의를 품었다. (...) 여자라고 해서 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리라는 법이 없다는 기대 속에 양육된 첫 번째 세대인 나는 어머니가 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일에만 집중하며 이십 대를 보냈다.
 누군가 아이는 언제 낳을 생각이냐고 물어보면 낳고 싶지만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사실 '준비된다'는 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 출산과 양육이라는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려 할 때마다 결국에는 아이를 낳은 후 일을 버리고 가정을 선택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막연한 불안을 느끼는 게 전부였다.


 사실 미혼과 기혼을 막론하고 아이를 언제 낳을거냐는 질문에 현실적인 대답을 꺼내는 사람은 드물다. 임신이 코 앞에 닥치지 않고서는 몸 상태가 이러하니 우리 직장은 이렇게 해야겠다는 둥 임신 몇 주에 배가 나오니까 언제쯤 임부복을 사야겠고 출산 방법에는 이러한 게 있으니 이걸 택해야겠다는 둥 디테일하게 정보를 찾아보고 나노 단위로 계획을 세우는 부부는 잘 없다. 나 역시 스테퍼니 스탈처럼 파티광이자 예술가 행세하는 유치한 이십대였고, 출산이 아니라 심지어 결혼에 관해서도 누가 언제 할 거냐고 물어보면 나랑은 상관 없다는 표정으로 글쎄... 라고 말 돌리던 여자였기 때문에,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입덧'이라는 증상은 꼭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임신과 육아의 과정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회사의 전례가 전무하기 때문에 나의 가장 큰 스승은 인터넷에 굴러다니는 정보 조각이다. 임신 사실을 확인한지 겨우 일주일이 지났는데 나는 구글과 네이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선배맘' - 내 글에서 '맘'이라는 단어를 쓰다니 믿을 수가 없다. 왜 '맘'이라는 단어의 통속성에서는 유쾌함을 느낄 수가 없을까 - 들의 경험담과 조언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읽은 것 같다. 애묘인으로서 고양이 똥에서 태아의 기형을 유발할 수 있는 톡소플라즈마라는 균이 나온다는 말에 반박글을 매우 꼼꼼하게 읽었고,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배웠던 임신의 과정 - 배란, 수정, 착상 등을 다시 학습했다. 기획 중인 프로그램에 몰입하는 시간은 고백컨대 조금 줄어든 것 같다. 이런 걸까, 모든 것이 달라질거라는 예언이 말하는 게? 변화의 시작을 직감하고, 여행을 갔을 때 새로운 경험을 강박적으로 기록하던 내 평소의 습관처럼, 이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을 기록하기로 마음 먹은 건가 나는?


퇴근하는 길에 소영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화한지가 3~4년이다.

"언니."

어제 통화한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받는다.


- 너 쌍둥이 낳았다며. 축하해. A에게 얘기 들었어.

"흐흐."

- A가 애기 낳으면 그렇게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세계가 달라진다고 해서. 궁금해서 전화했어.

"언니 솔직히 나는 그렇게까지 세계가 달라지지는 않았어."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건 여성이라면 모름지기 모성애를 타고난다는 모성신화 같은 허울이야. 라고 들렸다.


"그냥 현실적으로 쌍둥이 키우면서 회사생활을 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겠더라고. 나도 디자인 일 하면서 밤도 많이 새고 엄청 빡세잖아. 근데 언니 그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야. 정말 너무 너무 힘들어."

- 그래? 그럼 영원히 회사로 안 돌아가는 거야?

"영원히? ......그...렇지 않을까?"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냐는 말이 목구멍에 걸렸지만 내뱉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이 시끄러워진 경험이 몇 번 있기 때문에.


- 바빠서 전화 못 받을 줄 알았더니.

"아. 마침 둘 다 자서. 이런 경우가 흔치 않은데, 타이밍 좋다."


그 말을 하자 수화기 뒤편에서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렸다.


- 깼나보다.

"어 언니 카톡해!"


 이런 대화들로 육아에 대한 단서를 얻기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난 아직도 내가 아기를 가졌다는 게 믿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아기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소엔 그냥 지나쳤을 사건과 감정들을 지나치지 않고 기록하기로 한 이상, 내가 얻을 단서의 개수가 점점 늘어날 것은 의심하지 않는다. 내 손목에 있는 타투처럼, 이 이야기에 이미 나는 cue사인을 보냈다. 롱테이크, OS, 원테이크, 플래시백, 교차편집, 인서트, 엉뚱한 BG 깔기... 의미 전달을 위해 내가 사용하지 못할 기술은 없다. 나를 웃기고 울렸던 스테퍼니 스탈의 글처럼, 내 글이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닿아 웃기고 울리기를 희망한다.


"애송이가 처음 임신해서 설렜나보네." - 귀엽게 봐 줄 '선배맘'들.

"헬조선에서 무슨 결혼이고 출산이야!" - 결혼 생각도 출산 생각도 전혀 없는 남녀.

"결혼은 구려. 누구에게도 종속되고 싶지 않다고. 출산? 우웩.(토한다)" - 비혼주의자들. 역시 구린 건 구린 거였다고 확신하고 싶지 않은가?

"임신이 벼슬이냐! 여자들은 군대 안 가냐!" - '어떤' 남자들.

"이래서 여자들은 뽑기가 싫어." - 기업 인사 담당자들.

"PD가 되면 존나 멋진 삶을 영위할 수 있겠지?" - PD 지망생들.

"......" -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


그렇다, 나는 우리 회사에서 최초로 임신한 PD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끝에 나는 우리 회사에서 최초로 육아와 방송제작을 병행하는 PD가 될 수 있을까?

나도 그게 궁금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