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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딥마고 Apr 24. 2017

조연출의 죽음이 말하는 것

후배 피디의 죽음에 부쳐

 한 청년이 서른도 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은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기사로 작성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6개월 남짓 시간이 흘렀을 때 고인의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기자회견을 열었고, 그제서야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알게 되었다. 비극이지만 이렇게 뒤늦게나마 알려지게 되어 다행이었다. 죽은 청년의 이름은 이한빛, CJ E&M에 입사한지 1년이 안 된 소위 '0년차' 조연출이었다.


http://m.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60569


 주위가 술렁이는 것을 느꼈다. 많은 동료들에게 메시지가 왔고, 단체 채팅방에서 그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또 업계 선후배 SNS에 간간이 글들이 올라왔다. 나는 그의 이름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던 당일과 그 다음 날까지 관련 기사를 미친 듯이 읽었다. 그를 둘러쌌던 업무환경, 그가 뛰어다닌 제작현장은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기에 사진으로 찍은 듯 머리 속에서 재현되었다. 하지만 타자의 언어로 그것이 객관화되고 나니 낯설었다. 얼음을 옷 속에 넣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어떤 곳에서 일을 해 왔는가. '아프니까 청춘'이라면서 혹독한 환경을 이겨내고, 이겨내는 자들 사이에 남아 비뚤어진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툴툴대고, 징징대고, 한숨을 쉬고, 문제라고 말하면서 나는 무엇을 했던가. '어차피 아무도 바꿀 수 없다'는 패배의식 속에 안주했던 것은 아닌가.


혹시, 내가 그를 죽인 것은 아닌가.


 이 죄책감이 날카롭게 나를 찔렀다. 모처럼만에 미세먼지가 걷힌 서울 날씨를 출산 60일만에 만끽하면서도 때때로 깜짝 놀라며 짐짓 우울해졌던 것은, '우리가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다'라던 후배의 말이 머리를 웽웽 울렸기 때문이다.


 즐겁게 일하고자 했다. 밤샘을 피할 수 없다면, 남들 놀 때 퀘퀘한 편집실에 박혀 있을 수밖에 없는 숙명을 피할 수 없다면, 스스로 택한 것이니 노는 기분으로 하자고 했다. 어렸을 때 친구들이랑 뭐 하나 만든답시고 모여서 밤샜을 때 설렌 것처럼 그렇게 일하자 했다. 막내 시절 모두가 지나다니는 로비에서 동기가 선배에게 온갖 쌍욕과 모욕적 언사를 들어가면서 훈계 당하는 것을 본 뒤, 내가 선배 자리에 올라가면 답습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래서 내가 선배가 됐을 때 소위 말하는 '똥군기'나 할 일이 없는데 '짬밥' 안 찼다고 괜히 집에 못 가는 사람은 없게 하려고 했다.


 물론 과감한 개혁은 이상일 뿐이었고, 점진적인 개혁은 현실적이었으나 확산의 속도가 아주 늦었다. 어느 부분에서는 선배들의 말을 되풀이하는 나를 발견했다. 막내의 '태도'를 지적할 때 그랬다. 제작비를 줄이고자 할 때 그랬다. 누군가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올 때 그랬다. 나 같은 피해자는 더 나오지 않기를 바랬으면서 열악한 제작환경을 체념하는 것 자체가 가해자이기를 택한 셈이었다. 이 바닥은 원래 이런 것이라고 수용 - 사실은 체념 - 한 후에 나누는 '꾼'들의 대화가 이한빛 피디를 죽였다. 후배들이 무서워하는 피디를 조직에서 '후배 잘 잡는다'며 영웅처럼 떠받들 때, 수많은 신입 피디들과 똑같이 이한빛 피디도 느꼈을 그 위화감이 그를 죽였다.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마음으로 조연출 0년차일 때 썼던 일기를 찾아 읽었다. 참담했다. 문장들에 피고름 비린내가 번져 있었다. '내장', '좀비', '눈보라' 등의 단어들이 그 때의 감정상태를 전달하고 있었다. 내가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그 감정의 폐찌꺼기를 제때 배설하지 않았더라면, 가족이나 남자친구에게 감정을 털어내지 않았더라면, 서너 달 동안 하루에 겨우 서너 시간 자면서 휴일은 단 하루도 갖지 못한 그 때를 견딜 수 있었을까? 내가, 이한빛 피디처럼 누구에게 힘든 내색하지 않고 대나무처럼 부러져버리는 강직한 성격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디에 있을까?


 그를 기리는 마음으로 조연출 때의 일기를 발췌해서 SNS에 올렸다. 같은 직업을 가진 동료들의 댓글이 두어개 달리고 무거운 대화가 오갔다. "가장 무서운 것은 오늘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저 분주하게 돌아가는 방송국"이라고, 후배가 썼다. 그리고 얼마 후, 가슴이 철렁해지는 댓글이 달렸다. 내 SNS를 지켜보면서 꿈을 키우던 피디 지망생들의 댓글이었다. 내가 올리는 사진과 글을 보면서 피디의 꿈을 키우고 유지했다고, 그런데 내 과거의 절망을 맞닥뜨리고는 허무해졌다고 했다. SNS는 꼭 포토샵으로 보정한 몸매 같은 거라서, 현실에 바탕을 두지만 숨기고 지우고 가리는 부분이 있다. 놀면서 일하는 내 발랄한 업무 스타일이 그들에겐 모델의 사진같은 환상적인 꿈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정신차려, 하면서 보정하지 않은 민낯을 눈 앞에 들이민 꼴이 되고 말았다.


 그들에게 말을 건네야 했다. 이 일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더욱 이 일의 명암을 골고루 알아야 했다. 다 알고 접근했을 때 우왕좌왕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잘못된지 알아야 답습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못 이루었던 변화를 그들은 이루어낼지 모른다.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고맙고 미안하다고, 너무 좌절하지는 말아달라고. 답장에는 이번 사건에 대한 당혹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회할 수는 없는 꿈에 대한 간절함, 그리고 의문이 녹아 있었다. 종종 피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서 으레 볼 수 있는 의문. 이 직업을 갖게 되면 정확히 무슨 일을 하게 되는 건가. 도대체 밤은 왜 새는 건가. 무슨 할 일이 그렇게 많은가. 그, 사람은, 왜, 55일간, 이틀밖에 쉬지 못했나, 그, 사람은, 왜, 선배들에게, 폭언과, 비웃음을, 들어야했나, 그, 사람은, 왜, 죽어야만, 했나.


 우리는 특정 직업을 가진 타인이 실질적으로 어떤 일을 처리하면서 하루를 보내는지 알지 못한다. 불을 끄는 소방관, 나쁜 놈 잡는 경찰관처럼 유아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만을 그려볼 따름이다. 특히 어릴 때부터 어떤 것을 '하다 보니' 무엇이 '되는' 순서가 아니라 무엇이 '되기' 위해 입시공부를 하고 일단 그것이 되고 나야 비로소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교육환경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나에게 종종 메시지를 보내거나 만나서 '피디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지망생들은 실제로 피디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른다. 나도 그랬다. 해볼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카메라를 갖고 놀다가 놀이 삼아 편집도 해보고 음악도 깔아보고 작은 차이 하나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직접 관찰하면서 연출의 개념을 알게 되고, 우연한 기회에 작은 방송국의 프로그램 연출을 맡게 되어 점차 커간다는 스토리는 우리나라에 별로 없다. 우리나라에서 피디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카메라 갖고 놀 시간 따위 없이 입시공부에 매달려야 하며, 신문방송학과를 다니더라도 내로라 할 방송국에 이력서를 넣기 위한 스펙 쌓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러니까, 토익 점수가, 어학 연수가, 봉사 활동이,


 한 번 혹은 여러 번의 (밤샘)촬영 - 48시간 밤샘 편집 - 종합 편집 (색 잡고 자막 넣고 CG 넣기 - 수많은 마리텔 시청자들이여, CG는 작가가 넣는 것이 아니라 피디가 넣는 것이다. 작가는 작가이기 때문에 활자에 관여하지 비주얼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 파일링 후 음악 감독에게 보내기 - 음악 감독이 보내 준 BGM 검토하고 수정하기 - 믹싱실에서 믹싱하기 - 사이 사이 껴 있는 촬영 구성안 회의, 카메라 종류와 대수 결정, 앵글 결정, 연출 방향 결정, 마케팅 회의, 그래픽 팀과 회의, 섭외 전화 돌리기, 보도자료 회의 등등등등과 또 사이 사이 급습하는 크고 작은 결정의 순간들과, 결정했기에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마음들과


무슨 상관이 있냐는 말이다.

 

 이렇게 실질적인 업무와는 전혀 관계 없는 몇 년을 보내야 피디가 될 수 있고 그 후에야 연출, 제작 업무를 비로소 맛 보고 일의 재미를 알아간다는 아이러니가 이 비극의 출발선에 놓여 있다. 왜냐하면, 피디가 되기 위해 몸이 아닌 머리로만 공부하는 '언시생(언론고시생)'들은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언론인의 사명 같은 것을 품고 입사하기 때문이다. 그게 왜 잘못이냐고? 그런 숭고한 정신은 거친 방송 현장에서 비웃음을 사거나 최소한 무관심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피디는 당장 코 앞에 닥친 무의미해 보이는 밤샘 작업들과 나아가서는 시청률과 실적이라는 명분 앞에 거추장스러워진 자신의 '스피릿'을 자조하게 된다. 오늘 내가 배터리를 사오는 데에, 스탭들에게 단체 문자를 돌리는 데에, 출연자의 매니저에게 촬영 장소를 알려주고 주차할만한 공간을 찾아보는 데에, 출연자가 과거에 성형을 했다고 말하는 영상이 어느 방송 몇 회차였는지 찾아보는 데에, 피디가 되기 위해 수년 간 준비했던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과거의 자신을 서서히 지워나가면서 적응해나가거나 끝까지 자신을 주장하면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다닌다. 어느 쪽이든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요즘 신입들은 좋은 대학만 나왔지 게으르고 거만하다'는 평가들 뿐이다.



 나는 이한빛 피디가 단지 잠을 못 자서, 몸이 고단해서, 집에 들어가지 못해서 자살을 결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업무량에 비하면 턱없기는 하지만, 금전적 보상이 모자란 것이 주된 이유도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나 자신의 경우에 비추어 감히 그의 마음을 짐작해본다. 자기 자신을 불태워 사회에 바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고운 마음이 샌님의 나이브함으로 치부되어 낙인을 찍고, 실은 나쁘지 않은 사람들과 나쁜 관계가 쌓인다. 자기 자신도 도구화되는 걸 보면서, 다른 사람도 도구로 대해야 했을 때 밀려들었을 회의감. 마치 복제인간을 만드는 역할을 맡은 복제인간처럼. 아픈 현실을 직시하면서 인정하지도 변화시키지도 못했을 괴로움, 거기에 더해진 정신적, 신체적 건강의 한계.


 넷플릭스 시리즈 <루머의 루머의 루머(13 reasons why)>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창의적인 표현의 목적은 세상에 거울을 비추는 거야. 엉망진창인 사람들이 그 거울을 보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거지.' 우리는 스스로를 아티스트로 취급할 수 없는 크리에이터들이다. 우리가 자신의 열망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피디란 제작(create)을 할 뿐이지, 반드시 창의적인(creative)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대중을 상대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표현의 끝은 대중문화와 대척점에 있다. 대중의 문법은 돌고 돈다. 너무 새로운 것은 대중이 소화하지 못한다. 아주 독창적인 표현은 세상에 거울을 비출 수 있을 망정, 미술관이나 영화관이나 공연장에서 찾아야지 TV를 통하려 하면 안 된다.


 가끔 TV에도 세상에 거울을 비추는 표현이 등장하기 때문에,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변화시키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예술과 닮은 지점을 발견해내고 피디를 꿈꾼다. 나도, 이한빛 피디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러나 피디가 하는 일이 100이라면, 그 중 예술과 닮은 지점은 10을 넘지 않는다. TV가 세상의 진실로부터 도피하는 '바보상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는 입장에 서야 하는 피디도 있다. 고된 현실을 담아내는 - 그러니까 많은 청년들이 꿈꾸듯 예술에 가까운 - 좋은 드라마에서 일하게 된 피디가, 드라마 속 주인공보다 갑절은 힘든 환경에서 스러진 아이러니는 내 직업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어쩌면 방송국 피디는, 영화 감독과 마찬가지로 영상 컨텐츠를 제작해낸다는 유사함 때문에 나를 포함한 너무 많은 사람에게 과대평가되어 왔는지 모른다. 그 과대평가는, 많은 청년으로 하여금 현장에서의 모욕감과 한계에 다다르는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견디게 하기 때문에 아주 잘못되었다. 거품을 들어내고 실질적인 업무만을 직시한다면 출연자와 제작스탭의 급료가 그렇게 차이나지도 않을 것이고, 아무리 월급이 적어도, 인간으로 취급 못 당해도, '내 꿈을 위해' 이 악물고 참을 거라는 '열정적인' 청년들, 부당한 대우를 감내해내는 청년들도 없어질 것이다. 이한빛 피디의 죽음이, 현직 피디들과 피디를 꿈꾸는 많은 지망생들에게 이러한 현실을 일깨워주기를, 오늘도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잘가, 내 후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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