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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딥마고 Mar 29. 2017

1초 안에 일어날 수 있는 일 (2)

두려움으로 생명을 돌보다

 내 임신 증세는 다른 케이스들에 비하면 매우 양호한 편이었다. 그 흔한 변비도 없었고, 숨이 찬 것도 견딜만 했으며 무거운 몸으로 종일 촬영을 하거나 막달에는 3시간씩 운동으로 건사할 만큼 활기차게 열 달을 났다. 가장 힘들었던 건 초기에 '차라리 머리를 드릴로 뚫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무시무시한 두통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내가 하는 행동 하나가 아기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거란 사실이었다. 이를테면 두통을 낫게 해 줄 타이레놀 한 알을 먹는 것. 약사인 남편은 두통으로 몸부림치는 나에게 타이레놀을 먹이기 위해 논문을 읽어주고 과학도 못 믿는 바보 취급도 해보고 갖은 노력을 다 해야 했다. 약 한 알 먹는 것에 대해 내가 끝도 없는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전문가인 남편의 설득도, 신뢰할 만한 기관에서 내놓은 연구결과도 몇 번이나 확인한 뒤에 겨우 납득했다. 평소 나름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는 이성적인 면모도, 생명을 품고 있다는 이 어마어마한 사실 앞에서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배 안에 고양이 한 마리가 들었대도 무서울 건데, 하물며 우리 아기를.


 나를 이해 못하겠다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한 생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고, 아프게 하거나 어디 하나 잘못되게 할 수도 있다는 그 느낌이란, 불 보듯이 환한 의학적 증명들에도 선뜻 행동하기를 저어하게 하는 것이었다. 잘한 것도 하나 없는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이 막강한 힘에 나는 무서워 벌벌 떨었다. 악몽도 많이 꿨다. 주로 임신한 것을 잊고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고서는 울면서 병원으로 달려가는 꿈이었다. 이런 꿈을 꾸고 일어난 다음 날에는 우리 집 약통 근처에도 가지를 못했다. 영양제와 철분제를 먹는답시고 약을 집어들었는데, 어두운 곳이라서 다른 약을 잘못 먹었다는 시나리오, 그 약은 임신부와 태아에게 치명적이며, 병원에서는 다시 돌이킬 수 없다고 선고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머리 속에 펼쳐졌다.


자꾸만, 1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내가 한 생명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 평화를 낳은지 한 달이 지난 지금, 강도는 많이 줄었지만 비슷한 종류의 두려움은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 만지면 부서질 것 같아 기저귀도 못 갈고 속싸개도 못 싸주던 시기를 지나, 잘 때 쌔근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큰 일이나 난 듯이 하던 일을 멈추고 평화에게로 달려간다. 가까이에 가도 숨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코 근처에 귀를 대고 몸에 손을 댄다. 몸이 들썩거리고 희미하게 숨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면, 가만 흔들어본다. 평화가 잠에 취해 귀찮다는 듯이 꼬물거린다. 나는 그제야 마음을 놓고 원래 하던 일로 돌아간다. 한 번은 아무리 만져도 평화가 움직이지 않아 식겁을 한 적이 있다. 몇 번 더 흔들자 금세 칭얼댔다. 잘 자는 평화를 괜히 깨워서 안아주고 달래느라고 일을 한 번 벌었다. 그래도, 그렇게 해야 했다. 꼭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아기를 낳으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질 거고 프로그램에 접근하는 방식마저 달라질거라는 대선배의 말이 나에게는 이런 방식으로 구현되나 싶다. 처음에는 신기하다가, 다음에는 내가 지금 쉬는 숨이 감사했다. 예전보다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어느 때보다도 모든 사람의 삶이 온전하고 평화롭기를 바라게 되었다. 또, 엄마가 아기인 나를 돌보던 시절로부터 평화가 내 나이가 될 미래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사람이 하는 많은 것이 용서가 되고, 사람들이 모여서 한다는 많은 것이 용서되지 않는다.


 과연 그러하다, 1초 안에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이 힘을 가진 나는 예전과는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세상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가 우리를 지켜보던 그 1초가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고, 우리가 지금의 1초들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너무도 많은 것을 결정할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평화의 숨을 확인하는 나의 이 은밀하고 강렬한 두려움은,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는 에너지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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