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것 막지 말고, 가는 것 잡지 말라

<다가오는 것들>의 나탈리

by 딥마고

‘인류 최초의 여성’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성경 속 이브를 떠올린다. 그리스 신화에도 ‘최초의 여성’이 등장한다. 그 이름은 판도라. 그렇다, 제우스가 절대 열지 말라던 그 상자를 부주의하게 열어 세상에 온갖 나쁜 것을 퍼뜨린 그 여자 말이다. 뒤늦게 닫은 그 상자 안에 희망이 남아 있어, 인간은 온갖 나쁜 일을 겪으면서도 희망만은 잃지 않고 살게 되었다는 유명한 이야기의 주인공.


여기에, ‘최초의 여성’이라는 상징적 지위는 커녕 남편 하나 자식 둘 평범한 가정생활과 고등학교 철학 교사로서의 사회 생활을 병행하는 프랑스 여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나탈리. 미아 한센-러브 감독의 영화 <다가오는 것들>의 주인공이다.

그녀가 삶에서 잃지 않는 것이라고는 없어 보인다. 자식들은 성인이 되어 품을 떠났고, 남편은 결혼생활 25년 끝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별거를 선언했으며, 신경쇠약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병고 끝에 세상을 떠난다. 그뿐이랴, 집필진으로 참여했던 철학 책이 개정을 거치면서 저자에서 제외되고 만다. 하루가 지날수록 멀어지는 젊음처럼, 세상은 그녀에게 자꾸만 작별을 고한다.

반면 그녀는 상실을 자유로 맞는다. 남편이 외도를 고백했을 때 나탈리는 애제자에게 별 일 아니라고, 삶이 끝난 것도 아니니 동정할 필요 없다고 말한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그녀는 오히려 홀가분해 보이는데, 남편도 자식도 철학 책도 이제 더 이상 책임질 것이 남아 있지 않으니 태어나서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온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라며 웃는다.


멀어지는 모든 것을 성공적으로 애도하고, 그 빈 자리에 ‘다가오는 것들’을 의연하게 맞이하는 그 자세. 이것이 ‘쿨함’의 정의라고 생각한다. 나탈리는 그녀의 엄마처럼 탱탱하고 너끈했던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자기연민에 빠져 있지도 않고, 그저 현재와 미래를 온 몸으로 긍정하고 수용한다. 젊음만을 아름다움의 동의어로 사용하는 이 미디어 지옥을 살아가는 여성들이 참고할 법한 진짜 ‘쿨한 여자’다.

사실 그녀가 홀가분한 순간에도 책임질 것이 하나 남아 있었는데, 엄마가 10년 동안 함께 지내다가 남긴 고양이 ‘판도라’다. 잠깐 한 눈을 판 사이에 판도라는 숲 속으로 도망친다. 판도라는 집고양이라 본능이 죽어 생존하지 못할 거라는 나탈리의 예상을 깨고 남아 있는 본능을 증명하듯 쥐를 사냥해 물고 돌아온다. 이런 판도라의 행동은 나탈리의 훌륭한 은유처럼 보인다. 갑작스레 얻은 자유, 그 안에서 방황하지 않고 아직 상자 안에 남은 희망을 바라보며 사냥하듯 의연하게 본능을 누리는 것이 ‘쿨한 여자’ 나탈리의 선택이다. 그녀는 희망 자체가 주는 행복을 알고 있다. 영화의 결말에 나탈리가 인용하여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장 자크 루소의 <신엘로이즈>의 구절이 그녀의 태도를 대변한다.

“우리는 행복을 기대한다. 만일 행복이 안 온다면 희망은 지속되며, 환영의 매력은 그것을 준 열정만큼 지속된다. 이 상태는 자체로서 충족되며, 그 근심에서 나온 일종의 쾌락은 현실을 보완하고 더 낫게 만들기도 한다. 원할 게 없는 자에게 화 있으라. 그는 가진 것을 모두 잃는다. 원하는 것을 얻고 나면 덜 기쁜 법, 행복해지기 전까지만 행복할 뿐.”






- 이 글은 얼루어 7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당신만의 작은 숲, 갖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