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주는 어떤 확신
*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시사회에서 영화를 관람한 뒤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초기 증상 : 가까운 마트로 장을 보러 간다. 아직 숨결이 느껴지는 작물을 산다. 흐르는 물에 부셔 썰고 다지고 데치거나 굽는다. 향과 식감을 음미하면서 먹는다.
중기 증상 : 도시에서 소규모로 화초를 기른다. 때에 맞추어 물을 주고 말라 죽지 않도록 애정을 쏟고 말을 걸어준다. 민트, 상추, 토마토를 작은 나무에서 따내 요리할 때 쓴다. 타인이 아닌 스스로의 노동력을 맛 본다. 직접 기르고 직접 요리한, 내 땀의 맛.
말기 증상 : 농부가 된다.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이 영화의 인상을 뇌리에서 지울 수 없다면, 당신은 분명 병에 걸린 것이다. 그 병의 증상은 위에 기술한 바와 같다.
하지만 당신이 이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심지어 아직까지 도시 생활을 사랑해 마지 않으며 농촌 생활에 전혀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해도 <리틀 포레스트>라는 흙에서 수확할 수 있는 열매는 꽤 달고 단단하다. '배고파서 시골에 내려왔다'는 혜원(김태리 분)이가 밑도 끝도 없이 밥 지어 먹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영화는 내내 아삭아삭 지글지글 요리하는 장면으로 채워진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즐겁지만, 그 이면에는 다정한 메시지와 풍성한 은유가 숨어 있다. 게다가 초고도 근시 도시인도 시력을 회복할 것 같은 시원한 영상미에, 연기는 또 왜 이렇게 리얼한지. 다큐인 줄.
서울에서 실패를 경험한 혜원에게 찾아온 끝 없는 배고픔은, 혜원이 사계절이 한 번 지나도록 시골에 눌러 앉아 철에 따라 작물을 일구고 그 열매로 배를 채울 만큼 크고 서늘한 것이었다. 일찍이 귀농해서 농부로 살고 있는 친구 재하(류준열 분), 반대로 도시 생활을 꿈꾸는 은숙(진기주 분)과 혜원이 나누는 대화에서 우리는 혜원의 배고픔에 대한 단서를 잡아낼 수 있다. 혜원의 엄마는 아빠와 사별하고 혜원이라는 씨앗을 이 시골 땅에 심고 길러냈다. 혜원이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서울로 떠나려고 준비하던 때, 엄마는 떠났다. 혜원의 말을 빌면 엄마의 편지에는 '이해할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었다'. 그때 혜원은 배고프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로 가겠다는 혜원에게 혜원의 엄마(문소리 분)가 얼굴에 느긋한 미소를 띠며 '서울에서 무엇하려느냐'고 물을 때, 혜원의 근원적인 배고픔이 언젠가는 혜원을 이 곳에 다시 부르리라는 것을 엄마는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엄마의 예감대로 시골에 돌아온 혜원은 그러나 이 곳에서 남은 삶을 정착시키고자 하지는 않는다. 이 곳에서의 사계절은, 재하의 말대로 혜원에게 '아주심기'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아주심기의 사전적 정의는 '식물이나 작물을 이전에 자라던 곳에서 수확할 때까지 재배할 곳에 옮겨 심는 것'이다. 본인이 꿈꾸는 성취인 교사로서의 삶을 이룰 수 있도록 터전을 완전히 옮기기 전까지 모종으로서의 자신을 다시 한 번 다지는 기간을 우리는 함께 목격한다. 딱딱해져 버린 편의점 도시락으로 상징되던 '죽어 있는 삶'에서 생명을 직접 대면하고 다루는 '살아 있는 삶'으로, 취업도 연애도 내가 마음 먹은대로 할 수 없던 무력한 삶에서 일구고 가꾸면 보상으로서 열매를 얻는 효능감 있는 삶으로 스스로를 전이시킨 혜원의 모습은 관객 안에서 저마다의 울림을 줄 것이다. 아주심기를 준비하면서 스스로를 다잡는 그 기분을 거쳐왔거나 꿈꾸고 있을 사람들을 기분 좋은 상념에 젖어들게 할 만한 이야기이다.
엄마의 부재는 오히려 엄마를 이해하게 한다. 혜원은 엄마에게 배운 레시피를 직접 행하면서 떠오르는 엄마의 말과 행동을 애써 쳐내지 않는다. '엄마는 나를 떠나서 답을 찾았을까' 궁금해 하는 혜원의 질문은 이미 엄마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의 바탕을 드러낸다. 사계절이 모두 지나서야 혜원은 엄마의 편지를 다시 읽어내려 간다. 어떤 직접적인 설명도 없지만, 우리는 혜원이 엄마를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엄마는 엄마 자신에게도, 딸인 혜원에게도 언제든 자신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할 때 돌아올 수 있는 장소로서의 자연을 혜원에게 이해시키고자 했다. 혜원은 이렇게 자신만의 ‘작은 숲’을 가질 수 있었다.
"하늘이 하는 일을 인간이 어쩌겠누."
예상보다 일찍 큰 비가 내려 농사에 차질이 생겼을 때, 혜원의 고모가 뱉는 말에서는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마더!>의 메시지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 영화는 초반에 아담과 이브, 카인과 아벨로 기억되는 성경 구약의 플롯을 따라가면서 기독교적 신을 여성을 통해 상징하고자 하는가 싶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광의의 신에 도전하는 인류의 오만을 황당할 만큼 극단적인 방식을 통해 묘사한다. 더럽히고, 거스르고, 침탈하는 인간의 문명은 하늘이 하는 일을 조절하고 정복할 수 있을 것처럼 간주한다. 우리는 이대로 편리하고 빠르게 눈부시게 살아갈 수 있지만, <마더!>의 결말이 미래의 지구에 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이렇게 무엇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불안함, '노오력'해도 나에게는 돌아오는 게 없는 이 고단함이 아마도 현세의 적잖은 인류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고 자연과 가까이 지내며 지속가능한 삶을 꿈꾸는 이유일 것이다.
올 겨울은 유독 추웠다. 북극의 공기가 차단되지 못해 벌어진 현상으로, 역설적이지만 지구 온난화의 결과라고 한다. 인간의 행동으로 인해 인간 삶의 조건은 이미 변화했고,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친구들과 가끔 '인간의 뇌는 너무 진화했다, 그것이 우리에게 고통을 준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복잡하고 추상적인 정신노동에 지치고 차곡차곡 빨래를 가지런하게 개는 단순노동이 주는 쾌감이 그리워질 때쯤, 제철의 작물을 키워다가 최소한의 가공을 거쳐 직접 밥을 지어 먹고 싶다. <리틀 포레스트>는 그런 삶이 훨씬 더 인간적이라는 확신을 주는 영화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 의해 이 땅에 심겨지고 길러진 작물이므로, 작물을 벗삼아 하늘의 섭리를 어쩔 수 없어 하면서 살아야 말라죽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