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딥마고 Mar 01. 2021

우리가 날씨다

무력한 우리가 채식주의 선언을 하지 않고도 지구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글을 쓰려고 거실에 앉았더니 창밖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창문을 여니 봄비를 머금은 신선한 공기가 거실을 채운다. 조금 서늘하지만 좋다. 이 느낌을 재현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향수를 만들고, 카메라의 색감을 만진다.


 남편은 밖에 나가자고 했지만,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우리는 마스크 없이 나갈 수가 없다.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봄비를 느끼기에 집 안에 더 좋은 셈이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집안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날이 과연 얼마나 남은 걸까?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우리가 날씨다>라는 책에서 공장식 축산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증명한 자료들과 유려한 문학적 언어를 섞어 연결된 인류의 감각을 고취시킨다. 우리는 카이사르가 죽기 직전 내뱉은 숨 안에 섞여 있던 분자구조를 들이마시고 내뱉으면서 산다. 우리가 공장식 축산이 지속될 만큼 육류를 소비한다면, 우리 후대의 인류는 집 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생활해야 할지 모른다.



 대규모 산불, 이례적인 폭설과 강추위, 비정상적인 강우량, 이 모든 것을 경험하면서 인류는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조금씩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금에 치맥, 소고기 특수부위의 감칠맛을 생각할 때 이 작은 결정이 인류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저자도 늘 육류 소비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있지만 햄버거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고 고백하듯, 우리는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너무나 무력하다. 우리는 새벽 배송의 편리함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우리는 디자인이 조금 다를 뿐인 똑같은 옷을 그만 살 생각이 없다. 우리는, 마트에 가서, 이 딸기는 왜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는 거냐고, 여기 내 재활용 바구니에 넣어달라고 말하는 유난한 사람이 될 생각이 별로 없다.


 무력감을 공유한다는 지점에서 이 책은 어느 정도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와 닮아 있다. 현 상태를 바라보는 불편함을 지니고 살아가지만, 삶의 절반은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하며 살아가는 무력한 인간. 하지만 어쩌면 오히려 그런 인간의 모습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은 현실적일 수 있다. 나도 너만큼 고기를 좋아해. 햄버거도. 그러니까 우리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되려고 하지는 말자. 채식주의자 선언을 하고 다음 날 그 선언을 철회하는 것보다, 그냥 하루에 한 끼만 고기를 스스로에게 허용하는 편이 낫잖아.


 저자의 이런 현실적인 제안은 미래에 대한 학술적인 예측과 더해져 설득력을 획득하고, 책의 후반부에서는 아들들에게 쓴 편지를 통해 낭만적인 형태로 승화되어 독자들의 마음을 울린다. 보내지지 않은 편지, 일어날 수 있었지만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 유서. 인간은 유서로, 우주를 떠도는 타임캡슐로, 내가 존재하지 않을 시절에 직접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런 활동을 하는 존재가 어째서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미래의 신선한 공기를 끌어다가 쓰고 있는 걸까? 2030년에 두 번째 지구가 필요한 시점이 정말로 도래한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유서를 남길 수나 있을까? 2030년, 14살이 된 내 딸이 나에게 질문을 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엄마! 그때 뭐했어? 뭐하고 지구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어?”


우리는 공간과 시간을 넘어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어. 그래서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의무는 여전히 살아 있는 거란다.
P.268


함께 읽을거리

김연수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 현대문학 791호 (2020년 11월호)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2050 거주불능 지구>

매거진의 이전글 깊이에의 욕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