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晩秋)
배선옥
나는 그냥 내 방식대로 널 사랑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애
초에 함께 했던 약속 따윈 콘크리트 벽을 향해 힘껏 날려
벌릴 수 있었다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심장 어딘가엔 흉
터처럼 사라지지 않을 생채기가 생겼을 테지만 쓰라린 가
슴을 부둥켜안고도 한 번도 되돌아보지 않았다
나 스스로 사랑법을 익혔 듯
너 또한 그리하였다고
그렇게 믿었다
마음은 아직도 자주자주 횡당보도에 서서 신호가 바뀌
길 기다리며 망연해했지만 오랜 가슴앓이 끝 더욱 견고
해진 사랑을 믿었으므로 너 또한 그리하였다고 그렇게
믿었다
이 시는 나의 두 번째 시집 [오래전의 전화번호를 기억해내다]에 수록된 것이다. 짬을 내서 두 번째 시집을 다시 보고있다. 몇 개의 시는 노랫말이 되도록 좀 손보기도 하고 더러더러는 쓸 데 없이 들어가있는 단어들을 쳐내는 작업도 한다. 이 시들을 읽으며 오래 전의 마음을 되짚어보는 것은 아릿하면서도 달달하다. 그러나 무엇이든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는 강박증을 가진-여자라는 소리가 여전히 귓전을 맴돌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 내 시들을 되짚어보면서 비로서 내 시에 대해 어떤 시인께서 강박증 운운했던 그 부분들이 보이는 것이니 나는 이제서야 뒤늦은 가슴을 치며 내 새끼같은 내 시들을 좀 더 보듬고 다독여주지 못 한 부족함을 미안해하고 부끄러워 하는 것이다. 그러니...나는 여전히 똑부러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어도 좋은 것인지 마음 속으로 자꾸 쭈볏거리는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