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에서 바라본 어느 2월의 아침

나의 방공호, 그리고 침대를 옮기다

by 희야


오늘은 2월의 마지막 날이다.

어느덧 2월 안에 들어왔구나- 라고 쓰려고 보니, 벌써 2월이 끝날 참인 거다.

시간이라는 건 뭘까. 현재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지금, 이 순간도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이미 지나가 버린 것 아닌가. 어쩌면 나에게는, 연속적으로 지나가는 과거들만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


2월, 한 달 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다들 무탈하게 지내셨나요, 저는 아주 평온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꽤 많은 일이 있었다. 작은 수술을 하고, 반백수의 일상을 거닐며, 한 달간의 칩거 생활을 시작했다.

나에게 있어 이 칩거 생활은 아주 귀중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오롯이 나의 호흡, 나의 향기, 나의 사유로 가득 찬 나만의 방공호 안에서 나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이 공간. 그 무엇도 이 세계를 침격할 수 없다. 나 자신의 손으로 무너뜨리지 않는 한에는 말이다.


그래서 칩거 생활 중 뭘 하였느냐. 뭐, 별거 없다. 눈을 뜨면 품에 잠들어 있는 고양이들을 어루만지고 세안을 하러 간다. 집 밖에 나가지 않아도 꼭 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기상 후 양치와 세안하기, 나를 위한 음식 잘 차려 먹기, 아침·저녁으로 거의 팔 년째 행하고 있는 나만의 스트레칭 모음으로 몸을 풀어주기. 이것들은 온전히 나를 위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 특별한 일은, 아주 간간이 해왔던 글쓰기를 빈번히 행하는 일로 바꿨다는 것, 블로그를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나의 심연을 깊숙이 탐구하고 있다는 것 정도랄까. 어떠한 겉치레도 하지 않은 나 자신을 만나는 건 왜 이리 어려운 걸까. 그 속을 가리기 위한 겹겹이 쌓인 거죽이 어찌나 두터운지. 이 정도 나이를 먹으면 벗어던질 수 있을 줄 알았다. 얇은 살갗 한 겹으로도 잘 살아가고 있을 거라 생각했었지. 웬걸, 체감상 백 겹의 거죽 중 겨우 두 겹을 벗겨낸 느낌이랄까. 그때나 지금이나, 이렇게 방공호 속에서 한 번씩 나를 들여다보야 한다. 보채지 않고 가만히 숨죽인 채로, 아주 천천히. 평소 내가 다른 것들을 들여다보려는 그 마음으로 말이다. 성장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어렵다. 성숙해지는 것은 말이다.


아, 특별한 일이 하나 더 있다. 방의 구조를 조금 바꿔보았다. 원래 침대가 창문 바로 앞에 붙어있었는데, 창문 맞은편 벽으로 옮겨간 것이다. 그리고 작년 3월, 일본 여행을 갔던 때에 소중한 사람이 내게 선물해 준 귀여운 고양이 원단을 커튼 옆에 달았다. 침대의 위치가 바뀌니 온 방 안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찌 됐건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의 위치는 같지만, 더 넓어졌다. 나의 방공호를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의 넓이는 말이다.


그렇게 나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다만 밤낮이 꽤 심각하게 바뀐 건 좀 바로잡아야겠지. 역시 나는 밤에 어울리는 인간이다. 어떠한 조직 밖으로 벗어나면 항상 어둠이 짙은 밤에 눈이 말똥말똥해져, 누구보다 맑은 정신으로 깨어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에게 '방 안에서 바라본 어느 날의 아침'도 사실 밤을 새우고 맞이한 아침인 셈이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늦은 밤에서 새벽, 그 시간대가 나의 사색이 가장 짙어지는 지점이다. 그래서 굳이 맞지도 않는 아침형 인간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고, 일어나는 시간을 조금은 앞당겨봐야겠다.


2월의 마지막 날, 오늘도 나의 방 안에는 방대한 양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이고 있다. 그리고 방공호 안 슬기로운 탐구 생활도 계속되어 간다. 언젠가 지금보다 더 많은 과거가 쌓이고 나면, 그때는 나도 얇은 살갗 한 겹으로 살아가고 있으려나. 얇지만 질기고 탄성이 좋아, 웬만해선 찢어질 수 없는 강인한 살갗을 가지게 되어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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