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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딥웰 Nov 19. 2022

#2. 충분히 맑은 줄 알았습니다.

날씨 탓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종로구 내일 날씨'


사진 강사 생활을 시작한 후 매일 날씨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올해 여름은 유독 비를 많이 싣고 왔다. 덕분에 나는 걱정이 많은 밤을 보냈다. 빗방울 머금은 먹구름은 봐주는 법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세차게 쏟아지는 비는 다 피했다는 것. 그래도 마음처럼 되지 않은 날씨였다. 실내 수업은 지장이 없지만 야외 촬영 실습이 문제다. 수강생분들과 상의 후 각자의 우산에 의지해 발걸음을 떼기로 결정했다. 떨어지는 빗방울은 우리의 맘은 모른 채 우산을 두드린다.


흐린 날과 맑은 날에 찍은 사진의 색감 비교 @출처 : 직접 촬영


 어찌하였든 사진은 찍어야 한다. 이날은 우리가 색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했다. 빛은 색을 가져다주는데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좋다. 여과 없이 내리쬐는 햇살은 색을 잘 드러내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색도 그렇고 우리의 감정도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마음만으로 될 수 없는 일들에 붙잡혀 있는 탓일까. 축 늘어진 기분은 선택한 적도 없는데, 태도가 되어 망설임을 주고 있었다.  

"통제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짧은 말과 함께 시작된 촬영은 짧지 않았다. 기분도 날씨도 무엇 하나 선택할 수 없지만, 행동은 선택할 수 있다. 그 어떤 날씨 속에서도 사진은 찍을 수 있다. 빗방울이 셔터를 누르지 못하도록 막지는 않는다. 놓친 건 날씨뿐이었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촬영을 이어나갔다. 어깨가 축축해지는 줄도 모르는 채 말이다. 무심코 내디딘 발이 고인 물에 빠졌다. 발아래에서 첨벙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흠칫 놀라며, 그제야 찍은 사진들이 생각났다. 건물 지붕 아래로 들어갔다. 비를 피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마주하기로 했다. 다행히도 표정들이 나쁘지 않았다. 


 적막을 깨는 목소리가 들렸다. '비만 안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모두들 최악이 아닌 최선으로 보고 있었다. 멋쩍은 미소의 입꼬리는 금세 내려왔고 이제는 아쉬움이 찾아왔다. 나는 못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들에게 말을 건넸다. 여러분 저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세요.

"날씨 탓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 


 나는 시간대를 달리하여 한 공간을 다양하게 담는 걸 좋아한다. 장마가 끝나고, 오랜만에 찾아온 파란 하늘.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사진을 찍고 돌아가던 길이었다. 일몰의 햇빛이 나를 붙잡으며, 이곳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무안해지게 만들었다. 아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이 공간을 충분히 다 담았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서둘러 다시 담기로 했다. 하지만 다급해진 마음은 아쉬움만 더 크게 만들 뿐이었다. 결국 나를 여기로 다시 오게끔 만들었다. 여유를 가지고 다시 담고 있을 때, 그제야 마음의 짐을 덜어냈다. 덕분에 또 다른 시선으로 보는 법을 배웠다.


같은 공간을 이른 아침과 일몰에 나눠서 찍은 사진 비교 @출처 : 직접 촬영


 생각해 보면 정말 아쉬운 때는 따로 있었다. 다 안다고 생각했을 때, 이쯤이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다음이 없다는 것만큼 아프게 와닿는 사실은 없을지도 모른다. 다음이 오려면 아쉬움이 왔다 가야 한다. 충분히 맑은 날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던 나도 밝은 모습은 뒤늦게 찾아냈다.

 우리 각자의 진짜 맑은 날은 아직 오지 않은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못 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아쉬움을 남기며, 다음을 계속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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