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렸을 때 말이야~’라는 운을 떼는 대화에서는 햇빛이 눈부시게 빛나는 해변에서 맨발로 딛는 고운 모래 같은 느낌이 든다. 아주 작고 가늘지만 수많은 고운 모래들이 응집돼있어서 발을 딛으면 발 모양에 따라 포개지며 부드러운 감촉을 주는 그런 해변의 모래 말이다.
우리에게도 어린이였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 받았던 애정과 교육으로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늘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신뢰 뿐 아니라 불신도 경험했고, 애정 뿐 아니라 상처도 경험했을 뿐더러, 만남의 행복만큼이나 이별의 상처도 경험했다.
나는 벌써 30대의 성인여자가 되었다. 20대에는 내가 사회에 할 수 있는 저항을 했고, 많은 창작을 해보았고, 내가 주는 사랑에 자만하느라 정신 없이 달려왔다. 30대가 되니 추억팔이에 허우적 대고 있다. 왜 그럴까. 지금 하고 있는 일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가르치면서 문득문득 그 시절의 나를 상기하게 된다. 어린이들을 보면서는 나는 초등학교 때 어떤 아이였을까, 피아노 선생님은 내가 피아노를 잘 치니 참 편하셨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들을 보면서는 사춘기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상처에 예민했던 시기들, 또래친구가 전부였던 날들을 생각한다. 내 유년시절이 제3자처럼 기억나지 않음이 아쉽다. 그러다 관람자가 되어 영화처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바로 부모 말이다.
온 나라가 조국의 법무부 장관 임명으로 한창 시끄러웠다. 거기에 자유한국당 김성태의 자녀 청탁, 또 자유한국당 장제원의 아들 음주운전까지. 뉴스를 보다보면 내가 드는 생각은 ‘무자식이 상팔자’. 아버지께 ‘무자식이 상팔자’ 라는 이야기를 하니 아버지가 그러신다. ‘자식이 없으면 마음도 편하고 괴로울 일이 없지. 그런데 그만큼 누릴 수 있는 기쁨도 없다.’ 고.
며칠 전 태풍의 영향이 가장 센 시간, 아이들의 연주회에 일찍부터 꽃다발을 들고 기다리고 계셨던 학부모님들을 떠올려본다.
2019.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