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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강 May 29. 2020

노래하고 싶은 이야기

2020년 작업계획 중 하나는 싱글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노래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묵혀둔지 5~6년은 된 이야기였다. 심장을 파고드는 강렬한 장면이었고, 그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다음날 기록을 해두었었다. 나의 몇 년 간의 습작들에는 연인과의 애정이나 사랑을 다룬 이야기가 정말 드물다. 대중가요의 80% 이상이 연애 이야기라고 해도 될 만큼 다른 사람은 쉽게 만드는 것 같은 사랑 노래가 내겐 왜 이렇게 어려운걸까 하는 고민이 있기도 한데, 이런 오기가 생겨 기필코 사랑을 노래하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그 기록을 노랫말로 옮겨보려 애썼고 선율을 붙이기 위해 부단히 시도했다. 그러나 번번히 마음에 마음에 드는 화성도, 선율도 생기질 않았다.


노래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야기가 또 있었다. 이는 나의 오랜 욕망과 소망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언제나 노랫말에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작업할 때는 그게 억제가 잘 되지 않는다. 많은 문장을 이야기하려니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줄기 같지 않고 마음에 와닿지 않는 민중가요처럼 되어버리는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피아노 수업이라는 생업이 위협 받으면서 하루에 잉여시간이 많이 생겼던 지난 2개월. 전화위복의 의지로 이럴 때 싱글 작업을 해보자는 생각을 했지만 피아노 앞에서 번번히 실패를 해서 기분이 더욱 우울했다. 생업도 위태로운데, 자아실현마저 안된다니 최악의 상황이 아닌가. 그래서 올해는 생업도 좌절스럽지만 작업도 망했구나 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았었다. 


최근 발매된 어떤 포크 뮤지션의 음악을 듣다가 노랫말에 '고양이'가 있었다. 문득 며칠 전 친구가 길고양이를 구조하는 것을 따라나섰을 때가 생각났는데, 어제 친구가 그 때 찍은 흑백필름 사진을 보내줬다.                       

이 고양이를 구조하기 며칠 전부터 초등학생 제자들이 내게 피아노 교습소 근처에 길고양이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가끔 참치캔을 준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착한 마음씨를 칭찬했다. 이 조용한 동네에서 길고양이를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터라 반가운 마음이 들어 '이 근처에 고양이가 있대!' 하며 내게 피아노 수업을 받는 친구 조세핀에게도 알려줬다. 근데 고양이가 아픈 모양이었다. 결국 그녀는 고양이를 구조했다.


조세핀이 구조한 고양이 이야기를 엄마와 깊게 나눴었는데, 우리 엄마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 흘렸고 종교는 없지만 고양이가 제발 살아서 좋은 주인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내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셨다. 우리집 사정 상 직접 고양이를 데려와서 키울 수는 없으니 고양이의 치료비를 조금 보태는 것으로 마음의 짐을 덜기로 했다. 아! 이 고양이의 이름은 '오렌지'다. 누런 줄무늬를 가지고 있는데 동물병원 의사선생님이 임의로 '오렌지'라고 지으셨고 우리는 오렌지라고 부르고 있다. 내 친구가 고양이를 구조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도 이야기해줬고, 몇몇 아이들은 잠깐 연습실 구석에 있는 오렌지를 만나기도 했다. 만났다기 보다는 일방적 면회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흑백사진에 찍혀있는 날짜를 보니 5월 15일이다. 벌써 보름도 더 지난 일이 되어버렸고 임시보호 하고 있는 친구에게 간간히 오렌지의 소식을 묻는 요즘이었는데, 나는 그 포크 음악의 '고양이'라는 3글자에 갑자기 이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귀가길 버스에서 노랫말을 써보았고 피아노 앞에 앉아서 아무 화성이나 뚱땅거리며 어울리는 느낌을 내보았다. 순식간에 1절 정도가 쓰였는데 모든 곳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몇가지 포인트는 썩 마음에 들기도 했다. 노래에는 때가 있는걸까? 노래에는 주인이 있는걸까?


뿌리와 나무밑둥은 어느 정도 생긴 것 같다. 이제 올라가서 가지를 뻗어나가야 잎사귀도 피워볼 수 있겠는데 그렇게까지 이 노래가 만들어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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