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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강 Oct 14. 2022

사랑이 전부인가.

 나는 내가 다정한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더욱 더 다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다정한 성품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인가보다. 3년 전 앨범작업을 할 때에도 사랑 노래를 만드는 것에 쥐약이었는데, 이는 나의 내면에 있는 쑥스러움 때문이라고 스스로 결론 지었다. 사랑은 사적인 영역이라 누군가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기도 하고, 어쩐지 벌거벗겨진 기분이라 나에게 매우 어렵다.


 이런 나도 어쩔 수 없이 사랑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때가 있는데, 바로 피아노 수업 시간이다. 어린이들 기초 수업이 아닌 청소년들의 작품 레슨, 혹은 성인 제자들의 작품 레슨을 할 때는 피할 수가 없는 단어다. 흘러가는 멜로디 속에서 갑자기 여린 터치를 해야할 때 가져야 하는 감정은 애틋한 감정, 소중하고 가녀린 존재를 만지면 부서질까 조심하는 마음으로 건반을 만져야 한다, 나도 모르게 수렁에 빠지는 듯한 애정은 감당할 수 없이 흘러가기 때문에 손가락은 이성적으로 통제하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보고싶은 사람이 저만치 눈에 보이는데 닿을 수 없어 애절하게 애끓는 마음으로 연주해야 한다 등등. 청소년에게 쇼팽 녹턴 Op.48 No.1을 가르칠 때 했던 말들이다. 마음이 커져서 벅차올랐다가 이내 물거품처럼 사그라드는 마음을 내 앞의 10대 청소년 아이가 알까 모르겠지만 작품을 연주할 때 어떤 마음으로 치면 좋을지 선생인 나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너는 어떤 경험이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이 부분을 연주하는지 대화하다 보면 결국 사랑이 전부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꼭 연인간의 사랑이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제자들과 사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랑과 애정에 대해 이야기를 오래 하는 것은 자칫 선을 넘을 수 있는 예민한 문제이기도 하기에 음악 이야기 정도로만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짓는다.


당시 제자가 열심히 필기했던 쇼팽 녹턴 악보.

 앞서 언급했듯이 청소년에게 쇼팽 녹턴을 가르칠 때 이야기라 이 글은 벌써 2년 전에 윗 단락까지 쓰고는 발행하지 않고 블로그에 묵혀둔 글인데, 다시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쩌다보니 쇼팽을 처음 연주하게 된 나의 어린이 제자 때문이다. 지금껏 부르크뮐러, 체르니, 쿨라우, 클레멘티의 곡들만 연주하다가 콩쿨 출전 때문에 하이든을 연주하게 된 제자인데 이번에는 쇼팽에 도전하게 되었다. 쇼팽의 정서는 지금껏 아이가 연주했던 음악들과는 너무나 다른 정서라서 쇼팽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뉘앙스를 어떻게 전달하면 좋을지 굉장히 고민이다. 그저 내가 노래해주고, 아이가 그 노래를 따라하게만 하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인해 요즘 내게 쇼팽 음악이 많이 뜨는데, 내 제자 또래의 어린이가 연주하는 영상에 어떤 사람이 댓글을 달았다. '쇼팽은 처절한 사랑 한 번 해봐야 진정한 연주를 할 수 있을거예요' 라는 댓글이었다. 나도 어릴 때 선생님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러나 철부지가 뭔 처절한 사랑을 알랴. 뜬구름 같은 이야기로 들렸다. 그 당시 내게 처절한 사랑이란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어른들의 멜로드라마가 전부일 뿐. 그리고 이제는 내가 선생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선생으로서 이제 막 10대 초입에 든 아이에게 '처절한 사랑'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적절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지난 수업 시간에 나는 '많은 경험을 해보면 좋겠다, 다양한 이야기의 책을 많이 읽어보는게 좋겠다' 라는 참으로 고루한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몇몇 피아노 교사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새로운 곡들을 공부하는 세미나 모임을 하고 있다. 엊그제 한 선생님으로부터 새로이 알게 된 스페인 작곡가 그라나도스의 <고예스카스>라는 피아노 모음곡을 듣고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서둘러 집에 돌아와 다시 한 번 백건우 선생님의 연주를 듣고 피아노 앞에서 악보를 읽으며 앞페이지를 흉내내 보려는데 쉽지 않았다. 형용할 수 없는 비탄에 젖은 인간의 울부짖음은 너무나 표현하기 어려운 것. 어찌 흉내낼 수 있으랴. 얼만큼 경험을 해야 이런 연주를 할 수 있으려나. 


 사랑이란 반드시 연인간의 사랑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모든 음악적 표현은 사랑이 전부인가 싶다. 인간은 사랑해야만 모든걸 배울 수 있구나. 먼저 나를 사랑하고, 내가 아닌 누군가를 사랑하고, 공동체를 사랑하고, 꽃과 나무를 사랑하고. 사랑이 전부구나. 사랑이 전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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