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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직 스물아홉 살인데요

나도 내 20대가 영원할 줄로만 알았지

by 이구름

Episode 1.


유독 나이에 집착적인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한 명의 청년으로서, 나는 내 나이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할 생각은 없었다. 좀 더 오버해 보자면, 우리네 청년들 사이에는 스물다섯 살만 되어도 '벌써 반 오십이야'하고 자조하며 스스로의 야성성을 절단하는 일종의 암묵적인 의식 같은 게 있는 것만 같다.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밥값은 해내야만 한다는 책무감에서 기인한 것으로, 다들 철이 일찍 든 건지도 모르겠다. 내 젊음이 영원할 것처럼 굴어왔던 철부지 나는 그런 흐름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서른이라는 나이를 거창한 인생의 변곡점처럼 대하는 짓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다가오는 봄 서른을 앞둔 나는, 위선적이게도 아직 만 나이로는 스물아홉이라고 아득바득 1개월, 1개월 알뜰살뜰 챙기고 있는 꼴이 매우 우습다. 아무튼 간에 아무도 나한테 뭐라고 한 적은 없지만, 서른 살을 맞이하며 여전히 나는 어리다고 열심히 자기변호를 해보는 중이다. 솔직히 말해, 나도 내가 이렇게 금방 30대가 될 줄 몰랐다. 또 그렇게 어느새 눈 깜짝할 새에 40살이 되겠지. 오, 시간이여!



그런데 가만, 서른 살을 앞두니 왜 이렇게 나도 모르게 구태의연하게 '나는 아직은 이십 대야'라며 20대라는 꼬리표에 최대한 오래 매달려 있어 보려 애쓰나 생각해 보니, 이런 것 같다. 업을 일찍이부터 시작하는 업종을 제외하고는, 스물아홉, 서른이라고 해봐야 대개 여전히 사회 초년생이긴 하다만, 이제 아주 살짝 짬이 차서 후임도 들어오고 직장 생활에 조금은 적응해야할 나이가 되어버렸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이제 조금씩 실수가 용인되지 않는 나이가 된 것이다.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기대치가 조금은 높아진 것만 같다. 인턴과 신입사원에게는 그래도 눈 감아줄 수 있던 작은 실수들이, 경력직 30대로서는 범하면 안 되는 일이 된 거다. 세상 물정을 좀 몰라도 귀여운 나이는 조금 지난 것 같다.


어느새 주변의 누군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려가는 것이 놀랍지 않게 되었다. 아직 그 어떤 것도 내겐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앞으로 점점 삶의 책임이 커지게 된다면 그만큼 인생에서 더더욱 실수를 하면 안 될 것만 같다. 근데 내가 체감하기에 난 여전히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애송이다. 열심히 뭐라도 아는 체하며 거친 세상 속에 서 있을 뿐이다. 때로는 세상 물정을 너무 잘 알고, 너무나 미래를 잘 준비해 가고 있는 동년배들에게 기죽고 치이기도 하지만, 죽어도 겉으로 티는 안 내면서 말이다. 그런데 나는 앞으로도 인생에서 이런 저런 실수를 더 많이 할 것만 같다. 솔직히 말해 실수 좀 하면서 살고 싶다. 결국 아직 나는 어리다고 말하는 자기 변호는 결국 '나 실수해도 봐주세요'와 같은 비겁한 속내같기도 하다. 어차피 사회에 내던져진 순간부터는 실수해도 누가 봐주는 일 따위는 없지만, 계속 처음 겪는 새로움에 도전하면서 실수도 하면서, 또 새롭게 배우고, 그러면서 계속 살고 싶다. 실수를 안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익숙한 곳에서 숙련된 일들만 하며 사는 것이지 않을까? 물론 꾸준한 성실함의 힘을 알기에, 나는 깊은 숙련을 언제나 존경하고 동경한다. 세월의 풍파를 지나 숙련된 장인들을 보며 느끼는 깊은 경외감과 별개로, 실수가 두려워 익숙함에 갇혀 살고 싶지는 않다. 물론 했던 걸 계속 반복하는 실수 같은 건 하지 않으려 애쓰겠지만은, 어떤 식으로든 왠지 30대라는 숫자는 이제 실수가 많이 용인되지는 않는 나이처럼 느껴져 조금은 두렵고 서글픈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그래도 언제나 그랬듯 기죽지 않고, 30의 문턱을 넘으며 그 마음들 털어내고 좀 가벼워져보련다.


아무쪼록 아주 오래 전, 어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모범적인 어린이였던 나는 어느덧 이런저런 현실적인 문제들에 직면하는 나이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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