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잠시 일시 정지
공교롭게 이런저런 현실적인 문제들에 직면하는 나이에 도달하자마자, 나는 하고 있던 모든 일로부터 일시정지를 택하게 되었다. 그렇게 일을 쉬고 있는 기간이 작년 8월, 9월, 10월, 11월, 12월을 지나 어느덧 2025년의 1월도 20일을 지나고 있으니, 곧 6개월을 향해간다. 무식하게 갈아 넣으며 일하느라 망가졌던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고 체력을 강화하겠다는 명목으로 첫 3~4개월을 지나 보냈다. 나 자신을 지키지 못했던 관계들, 지겨웠던 배달 음식과의 작별을 고하고,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5시간씩을 미친 사람처럼 운동만 했다. 사실 그 외에 무얼 해야 할지도 잘 몰랐다. 그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몸을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그런 단순하고 확실한 행동 강령이 당시 내게 필요했다. 소란한 머리를 잠재울 일종의 도피처이기도 했다. 각종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생활로 1년 새 무섭게 불어났던 몸을 회복하는데 집중했다. 3개월 동안 불어났던 20kg를 모두 감량했다. 그렇게 혼자서 땀 흘리는 감각에 재미를 붙인 뒤로는, 체지방을 조금씩 더 걷어내고 근육량을 올렸다. 이제 내 몸 상태는 나의 20대 그 어느 때보다도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가벼워졌다. 5분을 뛰는 것도 버거웠던 수준에서 이제는 한 시간을 쉼 없이 뛸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올라왔다. 초점 없이 흐릿했던 눈빛도 다시금 생기를 되찾았다. 그간의 몇 년은 정말 지난한 시간이었다. 나의 삶에서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여기까지 다시 돌아온 것만으로도 청춘의 한가운데서 적절한 일시정지였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과 내 삶이 바닥을 쳤다고 생각했던 작년 이맘때의 기록을 다시 들춰보니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하고, 아등바등 홀로 버티던 그때의 나를 안아주고 싶었다. 놀랍게도 그때 이미 바닥인 줄 알았던 내 삶은 그 이후로 더 깊은 곳으로 곤두박질쳤지만 말이다. 감사하게도 깊게 파인 내 삶의 그 한 단계를, 육체적 단련과 함께 잘 넘어섰다.
그간의 짤막 짤막한 내 20대의 경험들을 돌아보니, 사업을 한다는 것은, 그리고 일을 잘한다는 것은, 내게 주어진 목표가 명확한 그 일을 확실하게 내 통제권 안으로 가져와 계획하고, 예측하고, 관리하는 것에 근간을 두는 것 같다. 그것이 일의 세계에서 유능함의 첫걸음인 것 같다. 난 유능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한 유능함이 곧 인생 전반의 유능함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어려운 이유는 세상만사라는 게 그렇게 언제나 딱딱 떨어지고 쉬이 통제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겠지.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가 지나온 일련의 시간들은 내가 그걸 받아들이게 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세상은 사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차 있으며, 나 자신이 그렇게 뭐 특별한 놈이 아니라 딱히 거창한 이유 없이도 실패할 수 있고, 전력을 다해도 고꾸라지는 게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걸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의 유능함인 것 같기도 하다. 똑똑하고 유능한 척 해왔지만, 나는 내 삶을 온전히 책임진다는 것을 아직도 잘 모르고 있으며, 나도 누군가에게 실수하고 상처 주고, 또 상처받고, 무너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배웠다.
20대에 걸쳐 내가 겪은 것들은 숱한 거절과 실패, 실수와 쪽팔림, 다양한 종류의 상처와 회복, 그리고 대부분은 거창하게 실패라고 할 것도 없을 정도로 별다른 큰 영향도 파장도 관심도 없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무미(無味)의 것들이었다. 물론 딴에는 대개 모든 것에 열심히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여기까지 생각이 정리되자, 고난이라고 느꼈던 나의 시간들이 지나치게 슬프고 힘들 일도 아닌 것 같았다. 그냥 지극히 평범한 한 인간의 장면들이구나 싶어서 말이다. 동시에 지난 몇 달간 매일 꾸준히 운동을 하며 스스로를 단련하고, 내 일상을 통제했던 것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그 어떤 일보다 운동을 통해 나 스스로의 육체를 통제하는 일만큼 외부의 영향이 적고, 결과가 분명하고, 마침내 도달 가능한 일도 없는 것 같다. 물론 죽음과 관련해서는 그 또한 내 통제와 예측을 언제나 벗어나는 일이 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죽음에 관한 부분을 제외하고서, 내 삶의 모든 일은, 바로 내 육체에서 출발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금 몸에 익은, 매일 땀 흘리는 기쁨을 즐기는 이 습관은 끝까지 유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작년, 내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내 삶과 일상에 대한 통제를 잃고 나서부터였다. 육체가 무너지니, 정신이 무너지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사실 운동을 하다가 숨이 가빠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나의 지난 몇 년을 떠올리면 지금의 이런 고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1분만 더, 1개만 더, 1세트만 더,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는 매일 시나브로 강해졌다. 으레 20대에 반복했던 일시적인 미용 목적의 다이어트가 아니라, 잃어버렸던 나를 되찾기 위한 일종의 처절한 발악이었다. 내 몸 구석구석의 컨디션을 느껴가며 운동의 강도를 조금씩 높였고, 몸이 점점 더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문득, 내 몸과 이제야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30년 동안 바로 옆 집에 살던 이웃과 드디어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묘했다. 다른 누구도 알 수 없는 오로지 나만이 감각할 수 있는, 평생 나와 함께 하는 몸인데, 이렇게 관절 하나 하나 근육 하나 하나 느껴가며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젊음을 믿고 혹사 시켜오기만 했던 내 몸에게 미안해졌다.
그냥 그렇게 꾸준히 똑같은 매일을 쌓다 보니, 20kg이 빠져있었다. 매일의 성실함으로 성취를 해낸 감각을 몸으로 기억한다는 것은, 내가 잊고 있던 생각보다 중요한 경험이었다. 내게 각인된 그 감각으로, 다른 일들도 그렇게 성실하게 조금씩, 매일 쌓아가다 보면 어느샌가 어느 지점에 도달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