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본 동창생들 앞에서 내던진 출사표
지난 12월, 고등학교 동창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졸업한 지 10년 만이었다. 갑자기 동창회라니. 내 인생 첫 동창회였다. 동창회 소식을 듣고 솔직히 너무 궁금했다. 누가 올 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모습의 어른이 되어있을지 궁금했다. 다들 생이 바빠, 그간 실제로 연락하고 지내는 고등학교 친구들은 이제 얼마 없었다. 나의 수많은 일들이 겹겹이 쌓인 지난 20대가 스쳐 지나가며, 각자의 삶에서 그런 시간들을 보내왔을 그리운 학창 시절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기꺼이 나서서 수고해 준 몇몇의 고마운 친구들 덕분에, 이렇게 저렇게 연결된 고등학교 시절 연줄들이 한 곳에 모였다. 고등학교라는 작고도 안전한 울타리 안에 옹기종기 모여 10년 뒤 자신 앞에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한 치 앞을 몰랐던 푸릇한 학생들이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사회 곳곳에서 자신의 몫을 해내고 있는 많은 동창생들과 재회하는 감회가 무척이나 새로웠다. 가기 전에는 어색하고 재미없으면 어떡하나 걱정도 되었는데, 대부분 고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 다시 만나게 되어 너무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결혼하고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도 있었다. 고등학생 때 스쳐가며 보았지만 말은 섞어보지 못했던 친구들, 인스타그램으로만 소식을 간간히 엿보던 친구들, 고등학교 때는 존재를 잘 몰랐던 친구들,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 등 다양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술 잔을 기울이다보니, 걱정이 무색하게 너무도 즐거웠다. 어딘가 익숙하고 반가운 아주 오래된 기억 속의 얼굴들을 마주하고 있자니, 빛바랜 나의 학창 시절을 다시 마주하는 것 같았다. 김포라는 작은 촌 동네를 벗어나 다들 각자의 세상 속에서 10년을 전투하다 돌연, 돌아보니 너무도 순수했던 교복 입은 학창 시절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사실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게 엄밀히 말해 아는 사이도 아니고, 모르는 사이도 아닌 것이, 되게 독특한 관계성을 지닌다는 걸 깨달았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교실에서, 똑같은 수업을 듣고, 똑같은 급식을 먹고, 똑같이 대입을 준비하던 우리들이 이제는 지난 10년 동안 각기 전혀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며, 각자의 뚜렷한 정체성을 지닌 하나의 인격체들이 되었다. 이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닌 사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우리는 약간의 수치심을 견디며 돌아가면서 일어서서 자기소개를 하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누구이고요. 나이는 몇 살이고요(웃음). 지금 어디서 무슨 무슨 일을 하고 있어요. 오늘 즐겁게 잘 보내다 가면 좋겠습니다. "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들 존댓말로 자기소개를 했다. 어떤 이들은 돌연 자신이 빠른 년생임을 밝히며 한 살 어려 이십 대임을 강조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몫을 해내고 있는 동창들을 보자니 괜스레 대견스러웠다. 그들의 모습 속에서 나의 오래된 한 조각을 발견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 짧은 자기소개를 할 수 있기까지 10년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고군분투를 해왔을 생각을 하니 왠지 기특하고 눈물겨웠다. 이 각박한 사회 속에서 1인분 해내기가 얼마나 힘든 세상인데 말이야 하며. '반갑다 친구야. 그리고 그동안 고생했어'하는 마음을 담아 한 사람씩 힘차게 한바탕 박수세례를 보냈다. 그렇게 돌고 돌아,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직업이 없는 백수였다. 하하.
다들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다고 자기소개를 하는데, 나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무방비한 상태로 일어나 운을 뗐다. 동창회에 오기 전에 어렴풋이 내 근황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살짝 고민했던 순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사실 별다른 깊은 걱정은 없었다. 그보다 호기심이 앞섰으므로.. 다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일어나서 자기소개를 할 줄은 몰랐다.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보니, 수십 명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들이 반짝거리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 중 몇몇의 친구들은 모르긴 몰라도 내심 내가 지금 몇 년간 꽤나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걸 인스타그램 소식을 통해 어깨너머로 보았던 지라 더 궁금해했을 것 같다. 내 이름은 누구고, 지난 몇 년간 사업하다가 그만두고 지금은 사실 쉬고 있다고, 그리고 무슨 생각에서인지 나도 모르게 '그리고 지금은 세계 여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응원 많이 해주세요~'하고 덧붙였다. 그러자 '우와아아아~~~~~'하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이고... 나 자신아. 안 그런 척했지만, 속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런 뚜렷한 계획도 없으면서, 아무런 여행 준비도 안 하고 있으면서, 고작 며칠 전에 친구에게 떠나겠다고 내뱉은 게 전부인데, 그냥 그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대차게 발설해 버린 것이다. 아마 그렇게라도 조금이나마 내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던 것 같다. 나 그렇게 재미없는 사람 아니야 하고 말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도, 그 덕분에 너무나 많은 응원을 받았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나로 그 자리에 있었는데, 오래된 학창 시절 나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내게 나눠준 친구들 덕분에 너무나 많은 힘을 얻었다.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 사회 곳곳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을 보며 왜인지 더 큰 용기와 힘을 얻었다. 다시 또 언제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또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나갈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백수로 정의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자존심 한 줌에서 시작된 내 폭탄 발언은, 더 넓은 세상으로 꼭 떠나겠다는 일종의 선언이자 출사표 같은 것이 되었다.
그렇게 혈기 가득한 출사표를 가슴 한편에 품고 새해가 밝았다. 다가올 내 새로운 여정에 프로젝트 힛 더로드라는 거창한 이름도 붙였다. 그리고 벌써 약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다가오는 3월 11일, 내 서른 번째 생일은 처음으로 타지에서 홀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그런데 큰일이다. 여행 계획에 진전이 없다. 떠나겠다느니, 세계 여행을 가겠다느니, 여기저기 말은 내뱉어왔는데 비행기 티켓조차 아직 끊지도 않았다. 솔직히 어디를 가야 할지 정하는 것부터가 곤혹스러웠다. 그리고 나에게 이 여행은 그저 관광이나 휴양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에서 말한 것처럼 여행을 하는 행위의 본질은 여행자의 의식이 바뀌게끔 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여행으로 계획하고 실행해야 내 의식이 바뀔 수 있을지 나는 깊은 고민의 수렁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지금 이 여행이라는 것은 나에게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정 같은 환상으로 점철되어 있는데, 내가 한 번도 여행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연애를 한 번도 해보지 않고, 진정하고도 완전한 사랑에 대해 꿈꾸는 상황 같았다. 이전에 친구들과 여행을 몇 번 해본 적은 있지만, 벌써 최소 5년이나 지났다. 그때 내가 도대체 여행을 어떻게 준비했었고, 여행을 어떻게 했었는지조차 기억이 희미했다. 그게 하루키가 말한 여행의 본질에 충분히 닿아있는 여행이었는지도 조금은 고민스럽다. 게다가 혼자서 해외여행을 길게 떠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동창회에서 몇 십 명 앞에서 선언을 해버리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근황을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세계여행을 곧 떠날 거라고 허풍을 떨어대는 게 무척이나 쉬워졌다. 거리낄 게 없어졌달까. 수화물을 줄여줄 따뜻한 봄을 기다리고 있다는 명목과, 아직 계획 중이라는 말 뒤에 숨어 어쩌면 나는 이 설명하기 어려운 내 점점 길어지는 공백기로부터 피난 중인 건 아닐까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첫 시작은 모든 짐을 가벼이 한 상태에서, 30일간의 산티아고 순례길 트레킹으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또 이놈의 입이 방정이지, 검색이나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30일간 홀로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갈 거라고 또 주변에 잔뜩 허풍을 떨어댔다. 그런데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지금 당장 떠나는 것이 과연 옳은가 고민되는 이유만 늘어가는 것이다. 성지순례 길은 왜 이리 종류가 많고 복잡하며, 3월이면 따뜻할 줄 알았는데 4월까지도 눈이 올 수 있다네? 산티아고 순례길은 3월까지는 겨울철 비수기로 분류되고 있었다. 어떤 경로는 겨울철에는 위험해서 4월 1일까지는 폐쇄된다고 한다. 언제든 비바람이 몰아칠 수 있어 판초나 우의도 필수, 침낭도 필수, 따뜻한 경량 패딩도 필수, 전기 매트를 챙기면 요긴할 수 있다는 말까지. 그렇다고 4~5월은 성수기라 사람들이 너무 많아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인 알베르게를 미리미리 예약해야 한다네? 한 편으로는 이제 일종의 관광상품이 되어버린 산티아고 순례길이 이전의 정겹고 차분한 감성을 느끼기 어려워졌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추위와 열악한 숙소의 빈대, 순례길 위에서 마주치는 무서운 들개들 때문에 다시 가고 싶지는 않다는 말들도 눈에 띄었다. 추위와 빈대, 들개, 지나치게 관광화되어 순수성을 잃어버린 분위기? 알아볼수록 왠지 슬금슬금 마음이 나약해진다. 다른 무엇보다 추위가 가장 걱정이 되었는데, 지난 겨울부터 한랭 알레르기가 생겨 조금만 추운 곳에 가도 얼굴에 시뻘겋게 울긋불긋 두드러기가 나고 있었다. 저녁 8시면 난방이 꺼져 오들 오들 떨며 밤새 추위와 싸워가며 버텼던, 지난해 사무실에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배경으로 한 예능이 나온 이후로, 순례길을 가는 한국인이 엄청 많다는 사실도 내 흥미를 살짝 떨어뜨렸다. 2023년 산티아고 순례길의 한국인 순례자 비율은 9위에 이르렀다. 산티아고 순례길, 이거 3월에 가는 거, 아니 애초에 가는 거 옳은 선택일까? 오, 이런. 아주 상세하게도 서술해 놓은 얄궂은 내 핑곗거리들을 다시 주욱 훑어보고 있노라니 나 자신이 너무 싫어진다.
출사표는 던져졌는데, 3월은 다가오고, 딱히 하는 일 없이 잔고는 야금야금 줄어가고, 계획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더 넓은 세상에 가뿐한 마음으로 뛰어들기로 마음먹어 놓고서는 이렇게 사소한 요소들 앞에서 한심한 자신과의 지루한 싸움이 이어졌다. 웬만한 시련은 내게 이제 아무것도 아니라고, 젊어서 고생도 해봐야지,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고, 그래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내 몸은 편안함과 익숙함을 향해 있고, 나는 너무나 게을렀다. 요즘 대부분의 일상은 매일 집-체육관-집 앞 카페를 오가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쩌다 한 번씩 서울에 나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온 날, 녹초가 된 나 자신을 보며 이래 가지고 여행을 어떻게 가나 통탄스러울 지경이었다.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과는 별개의 일이었다. 나의 이 놀라운 수준의 평범성과 형편없음, 그리고 이중성을 견디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마침내 어떤 계기를 통해, 이 벽을 넘어설 때를 기다리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미국에 먼저 가고 싶었다. 자본주의의 끝에 한 번 가보고 싶었다. LA, 뉴욕, 시카고, 워싱턴 D.C와 같은 대중적인 대도시와 예산이 허락한다면 몇몇 친구들이 살고 있는 그 외 지역에도 가보고 싶었다. 여행을 계획하기 위해 이런저런 여행 블로그와 유튜브들을 꽤 찾아봤다. 요즘엔 여행 유튜버들이 많아서 방구석에 앉아서 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미국 곳곳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짧고, 알차게, 핵심 하이트라이트만. 근데 또 알아볼수록 왜 이렇게 위험해 보이는지. 주변에서도 그렇고 다들 여행을 잘만 다니는데, 인터넷 너머로 보기에, 곳곳이 슬럼화되어 마약에 취한 사람들과 홈리스들로 가득한 LA를 뚜벅이로 여행한다는 건 꽤 도전적인 일처럼 보였다. 그러던 와중 LA에서 정말 비극적인 산불이 나면서, LA는 애도의 마음과 함께 여행지 리스트에서 빠지게 되었다.
여기저기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한국을 뺀 거의 모든 나라가 위험해 보였다. 지하철 타는 것도 위험하다는데, 어떤 곳은 길거리를 혼자 걷는 것만으로도 위험하다고 하고, 대체 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거지 싶었다. 내가 이렇게 안전에 대해 걱정도 많고, 민감한 사람이라는 것도 새삼 느꼈다. 어디서 어디로 이동할 때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교통수단, 주의해야 할 사항, 꼭 피해야 할 숙박 시설, 뭐 여행을 위한 놓치면 안 되는 정보, 꿀팁... 파면 팔수록 끝도 없었다. 여행과 관련된 앱이란 앱은 다 깔아 두었다. 문제는 여행을 계획하고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이상하게 여행지에 대한 흥미와 기대감이 점점 낮아지는 것이었다. 정말 이러다가는 아무 데도 못 갈 것 같았다. 여행 계획을 도대체 어느 수준까지 어떻게 세우고 준비해야 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여행지와 여행 일정이 딱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너무도 큰 자유도 앞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만 것 같았다. 그냥 놀러 가는 정도의 평범한 관광이어서는 안 된다는 부담감도 한몫했다. 무엇보다 이런 저런 정보들에 갈대처럼 휘둘리는 내 자신을 마주하고 견디는 일이 제일 고역이다. 넉넉한 시간과 어느 정도의 여비를 염두에 두고, 떠나겠다는 결심도 한 마당에, 정작 아무것도 계획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 미련하고 멍청하게 느껴졌다. 생각이 너무 많은 게 문제다. 아니, 정보가 너무 많은 게 문제다. 아니, 그냥 내가 문제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여행을 어떻게 다녔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Atomic Habit>에서 읽었던 한 문장이 떠올랐다. 습관을 바꾸기 어렵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우리의 시스템이다. 나쁜 습관은 그 자체로 계속 반복되는데, 이는 우리가 변화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변화할 수 없는 나쁜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저자는 목표를 높이는 대신, 시스템의 수준을 어렵지 않게 낮추라고 조언한다. 나는 지금 제대로 된 여행을 계획한다는 명목으로 실질적인 여행을 할 준비를 미루는 나쁜 습관에 빠져버린 것 같다. 시스템의 수준을 어렵지 않게 낮추라. 시스템의 수준을 어렵지 않게 낮추라... 되뇌어본다. 이 여행을 준비하는 접근을 달리해봐야겠다고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