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일, 매일 2시간. 복싱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출국 3주 전, 여행을 앞두고 요즘도 운동을 계속 꾸준히 열심히 하고 있다. 사실 머릿속이 시끄러워 체육관에서 쉼 없이 내 자신을 혹사시키고 있다. 한국 밖을 나가서도 계속 다양한 방식으로 운동을 이어가려 한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어쩌다 보니, 어쩌면 내 삶에 생각보다 의미 있는 한 부분으로 스며든 복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누군가 내게 복싱의 매력이 무엇이냐, 왜 하필 복싱이냐 묻거든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대부분의 복싱장에 가면 벽면에 작은 공이 매달려 있는 걸 볼 수 있다. 스피드볼이다. 스피드볼은 동체시력과 마인드 컨트롤, 반사 신경, 리듬감을 기르기 위해 벽에 매달린 작은 공을 일정한 리듬으로 때리는 훈련을 하는 용도다. 두 눈을 볼에 고정하고, 주먹으로 비스듬히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듯 팡하고 친다. 처음엔 한 손으로, 조금 익숙해지면 양손으로 번갈아가며 톡톡, 혹은 팡팡 내리치며 감각을 익혀 나간다. 주먹을 쥐고 볼을 세게 내리치면 일순간 재빠르게 스피드볼이 앞 뒤로 움직이며, 나의 정면 1cm도 안 되는 코 앞으로 다가왔다 멀어졌다를 반복한다. 순식간에 눈앞에 불쑥 다가온 이 스피드볼이 누군가의 주먹이라고 상상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이 설사 바로 내 눈앞에 주먹이 내리 꽂히는 상황이더라도, 침착하고 의연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주먹이 내리 꽂히는 상황은 다소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어떠한 외부의 상황에도 나의 내면의 파도가 거칠어지지 않는, 고요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앞 뒤로 빠르게 멀어지는 스피드볼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스피드볼의 움직임과 속도를 익히며, 반복적으로 공을 때린다. 팡-팡-팡-팡 볼을 일정하게 주먹으로 내리치는 소리가 체육관을 가득 메웠다. 띵! 하고 한 라운드가 끝나는 타이머 소리가 울릴 때까지. 시선을 스피드볼에 고정하고, 공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팡-팡 내리치고 있자니, 일종의 정신 수련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다른 모든 잡생각은 덜어내고,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히고, 시선을 고정한 채 온 정신을 오로지 내 눈앞의 스피드볼에 집중하는 거다. 소란한 체육관 속에서 마음의 고요가 찾아왔다.
다른 건 몰라도 요령 안 피우고 그저 열심히 할 줄만은 아는 나의 습성은 오래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도 요령 없이 열심히 공부만 했던 고등학교 시절, 나의 유일한 탈출구는 매일 야자시간 후 학교 앞 복싱장에 가는 것이었다. 세월과 함께 시꺼멓게 때 탄 낡은 건물 입구에 들어서면 오래된 노란 전등이 틱 하고 켜지며 깜깜한 계단을 밝히곤 했다. 성큼성큼 계단을 따라 한 칸씩 복싱장에 가까워질수록 띵! 하는 강렬한 타이머 소리가 점점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팡팡 샌드백 치는 소리, 휙휙 돌아가는 줄넘기와 함께 체육관 바닥을 밀어내는 경쾌한 발돋움 소리, 알싸하게 풍겨오는 땀 냄새와 뜨거운 열기, 츄츄하고 내쉬는 거친 숨소리, 가끔씩 보이는 어마무시한 문신을 한 아저씨들, 관장님의 훈장과도 같은 수많은 메달과 트로피들, 귓가에 웅웅대는 리드미컬한 노래. 지금이야 복싱이 더 많이 대중화되면서 여성 회원들도 더 많아지고, 깔끔하고 세련된 복싱장들도 많아졌는데 그때만 해도 내가 다녔던 복싱장은 마치 테스토스테론 가득한 거친 남자들의 세계 같았다. 격투기 종목 경기는 무서워서 보지도 못하는 게, 그때 왜 그게 갑자기 그렇게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책상 밖에서 에너지를 발산할 색다른 창구가 필요했던 것 같다. 처음 복싱장에 등록하러 간 날, 내게 너무도 생소했던 그 광경에 약간 움츠러든 채로 걸어 들어갔던 순간이 아직도 생각난다. 무릎 아래 길게 내려오는 교복 치마에 무거운 책가방을 둘러메고, 복싱장의 문턱을 넘어서는 그 순간이 내게는 집-학교-독서실-학원을 오가는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 입장하는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곳에서 내게 연필과 책은 필요가 없었다. 처음으로 양손에 주먹을 꼭 쥐고, 턱 옆에 가드를 올리고, 총총 앞뒤로 뛰며 잽을 배웠던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고작 몇 라운드 엉거주춤 잽과 원-투를 했던 그 다음날, 학교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두 다리가 미친 듯이 후들거려 아주 혼이 났더랬다. 10년도 더 된 그날의 기억이 왜인지 여태껏 생생하다. 그렇게 본격적인 고3 수험생 모드에 돌입하기 전까지 한 2년 가까이 '공부 아니면 복싱'일 정도로 신나게 매일 야자를 마치고 복싱장을 드나들었다. 마치 이중생활을 하듯, 학교에서는 하루종일 책상 앞에서 정숙하게 공부를 하고, 밤에는 복싱장에 가서 시꺼먼 아저씨들 사이에서 온몸이 부서져라 땀으로 흠뻑 젖을 때까지 팡팡 샌드백을 쳐댔다. 혈기왕성한 낭랑 18세의 에너지란 끝이 없었다. 대체 어디서 그렇게 끝도 없이 나오는지 모를 내 안의 에너지를 탈탈 털어 잔뜩 토해내듯 발산했다. 그저 신이 났다. 공부할 때도 요령 없이 열심히 할 줄밖에 몰랐던 것처럼, 복싱장에 들어선 순간 나는 한 명의 복서가 되어 그저 성실히 또 참 열심히도 했다. 나중에는 운동하러 온 아저씨들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혹시 체대 준비생이냐고 묻기도 했다. 하하.
요령을 피울 줄 모른다는 건, 좋게 말하면 우직하다고 할 수도 있고 나쁘게 말하면 무식하다고도 할 수 있다. 나는 지독하게 엉덩이로 공부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내 머리가 좋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대신 뭐든 참 우직하게, 그저 무식하게 열심히 할 줄은 알았다. 웃긴 게, 애초에 그런 성격에 더해 '무소의 뿔처럼 가라'와 같은 말을 좋아했더랬다. 그래서 늘 똑똑한데 성실하기까지 한 친구들을 넘어설 재량은 없었지만, 끈덕진 근성으로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하곤 했다. 수험생 시절 새벽에 등교해서, 저녁 급식 시간 전까지 하루에 딱 두 번 엉덩이를 떼고 일어날 정도로 무식하게 책을 잡고 있는 게 내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방법이었다. 고3 때 하루는 학교 독서실에서 야자를 하다가, 힘들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는데 울면서도 꾸역꾸역 멈추지 않고 문제지를 풀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별 것도 아닌데, 돌이켜보면 그런 작은 기억들이 나라는 사람을 스스로 기억하는 정체성의 조각들이 되는 것 같다. 선배들의 수능이 끝난 날을 기점으로, 그렇게 좋아했던 복싱도 단념했다. 1년 간 참 지독한 고3 시절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앞서서 운동했던 그 시간들 덕분에 수험생활을 버틸 수 있는 체력이 뒷받침되었던 것 같다. 모쪼록 1년이 지나, 대학생이 된 나는 복싱장을 다시 찾았다. 복싱은 여전히 재미있었지만, 이제 막 시작된 나의 20대는 복싱 외에도 새롭고 신기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20대 초반 한 1~2년 정도 방학 때만 짬짬이 다니다가, 거리와 시간 등 여타 이유들로 결국엔 그만두게 되었다.
그로부터 10년의 시간이 지나 나의 모든 게 무너지고, 다시 내 삶의 리듬을 찾아나갈 때 내게 향수처럼 떠오른 건 다름 아닌 복싱이었다. 복싱은 내게 그저 단순한 스포츠로서의 일반명사가 아니라, 원-투-원-투 구호에 맞춰 성실하게 흘렸던 수많은 땀과, 학창 시절 내 작은 울타리 속 무소 같았던 고군분투가 스며 있었다. 인생 최대의 고민이라고는 수능과 눈앞의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가 전부였지만, 그땐 그게 참 그리도 무거웠다. 그리고 그 작은 세상 안에서 참 열심히도 했다. 내가 기억하는 복싱에는 희미해진 그 시절 내 모습의 파편이 담겨 있었다.
잠시 모든 걸 멈추고 휴식 시간을 가지는 동안, 혼자 두 달간 무작정 밖을 내달리며 체력을 어느 정도 회복하면 복싱장에 다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5km 달리기가 버겁지 않게 되었을 무렵, 집 앞에 새로 생긴 복싱장을 방문했다. 띵! 하고 라운드의 시작을 알리는 경쾌한 타이머 소리가 내 기억 속 무언가를 툭하고 건드렸다. 십 년 만에 스텝을 다시 밟았다. 원-투-원-투 다시 스텝을 밟으며, 낭랑 18세의 밝고, 강인하고, 무식할 정도로 성실했던 나의 조각을 다시금 마주했다. 비로소 무너지고 부서지고 나서야, 나를 다시 이어 붙이며 내게 그런 조각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세 달째,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워밍업 줄넘기 2,000개로 운동을 시작한다. 한 번 하기로 결정하면, 체육관에 들어선 순간 머리를 비우고 그냥 매일 한다. 솔직히 나의 막연한 여행을 앞두고, 여전히 시시로 때때로 머릿속이 복잡해지곤 한다. 글을 쓰고 싶다, 떠나야겠다는 결심과 설렘의 이면에는 이 대책 없는 막연함 앞에서 이 삶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 할지 하루에 수십 번도 마음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앞이 아득해진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앞으로 무슨 일이든 잘 헤쳐나갈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다가도, 문득문득 지금의 내 자신의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져 힘들기도 하다.
백수로서의 시간이 길어지고,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면 참 다양한 일을 심심치 않게 할 수 있게 된다. 5분이면 온라인으로 초, 중,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조회할 수 있다길래 한 번 떼어봤다. 고3 때 담임선생님께서 남겨주신 문장들을 읽다가 예상치 않게 눈물이 쏟아졌다.
'차분하면서도 자신이 가진 긍정적 사고를 바탕으로 다른 학생들도 좌절하지 않도록 용기를 주는 은은한 진주와 같은 빛을 발하는 학생임.'
열아홉 살의 나는 누군가에게 이런 모습이었구나 하고 눈물이 흘렀다. 가슴 뭉클한 위로를 받고, 오래된 나를 다시 한 번 기억한다. 그 모든 오래된 기억들을 품고 서른이 된 오늘의 나는 다시 새로운 도약의 잽을 날려본다.
다시 복싱을 시작하고 지난 세 달간 주 5일 매일 복싱장에 출석 도장을 찍으며, 복싱장에서만 하루 두 시간씩 미친 듯이 운동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몸이 부서져라 땀 흘리는 것만큼 몸과 마음을 비우는 특효약도 없다. 아마 복싱장 관장님은, 갑자기 나타나서는 매일 구석에서 몇 시간씩 조용히 귀에 이어폰 꼽고 부서져라 몸을 혹사시키는 나를 보며 이 사람은 대체 뭐지 하고 계신 것 같다. 어쨌거나 열심히 하고 곧잘 따라오는 것 같으니, 내게 기존 루틴에 더해 중간중간 새로운 훈련을 하나씩 덤으로 얹어주셨다.
몸으로 습득하는 감각이라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마치 자전거 타는 법을 한 번 터득하면, 다시는 자전거를 못 타게 될 수 없는 것처럼, 어떤 기억을 근육에 아로새기는 일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훈련하다 보면, 어느 순간 돌아보았을 때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기억하게 된다. 엉성한 스텝도, 엉성한 잽도, 매일 반복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진다. 그리고 생각과 태도에도, 삶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동들에도 마찬가지로 근육이 있다고 생각한다.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다 보면, 가끔씩 관장님께서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 같은 말에 띵-하고 얻어맞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얼마 전부터 팔의 근력과 잽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3분간 1.5kg, 2kg 덤벨을 1분 단위로 번갈아 양손에 쥔 채로 빠르게 스텝을 밟으며 원-투를 하는 아주 작은 루틴을 하나 추가했다. 이걸 처음 시도한 날, 1분 30초께를 향해가니, 팔이 너무 아파서 가드가 점점 내려가고 자세가 망가지는 걸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때 옆에서 관장님께서 외치셨다. "멈추면 안 돼요! 가드 내려가면 안 돼요! 느려지더라도 정확하게 원-투, 원-투! 안 힘들 땐 누구나 다 합니다! 힘들 때도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게 진짜입니다!"
하하하. 안 그래도 아침에 크로스핏을 이미 한 시간 하고, 복싱장에서 한 시간 반 운동을 더 하고 난 뒤여서 팔이 아파 미치겠는데, '안 힘들 땐 누구나 합니다. 힘들 때도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게 진짜입니다' 이 말이 내게 날아와 꽂혔다. 고작 그 순간의 힘듦 때문에 나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입을 꽉 물고 근성으로 해내는 거다. 하하. 더 강인해진 미래의 나를 상상하며, 나는 진짜가 되기 위해 그렇게 매일 또 이 트레이닝을 반복하고 있다. 두 팔의 근육과 정신력의 근육을 함께 기르고 있는 것만 같다. 내 일상과 내 삶에 있어서 모든 일이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초반 30초 동안에는 덤벨을 쥔 내 팔이 전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뭔가를 이제 막 시작했을 때는 뭐든 희망차고, 안 힘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마침내 변화를 만드는 것은, 점점 힘들어지더라도, 가끔은 초라한 나를 견디며 지속하는 힘에 있다. 물론 그게 나를 망가뜨리거나 무너뜨리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매일 한 편의 글을 완결하고자 마음먹었으나, 괜찮은 글을 내보이고 싶은 욕심에 좀처럼 속도가 나질 않았다. 그러나 마치 매일 반복하는 똑같은 훈련으로 원-투 스텝의 감각을 근육에 아로새기듯, 울면서도 꾸역꾸역 수능 문제집을 풀었듯, 그래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잘하는 무식한 엉덩이 싸움으로, 매일 읽고, 쓰고, 어디로든 나아가자 스스로를 다시 한번 다독인다. 아무런 결정적 계기나 사건이 없어도, 내 머릿속은 이렇게 매일이 전쟁터 같다.
그런데 대체 운동 루틴을 매일 반복하는 것은 내게 쉬운 일인데, 그 외 일상에서 나머지 것들은 매일 반복하는 것이 그리도 어려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운동 루틴은 매번 내가 별다른 생각을 더하지 않아도 그저 즉시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행동 단위로 이미 쪼개져있었다. 그 외의 것들은 아직 그러한 작은 단위로 만들지 못했다는 차이가 있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으로 이끄는 좀 더 작은 단위의 움직임들이 더 많이 필요한 것 같다. 즉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좀 더 작고, 명확한 단위의 움직임들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스피드볼을 일정한 간격으로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히 내리치는 것, 3분간 양손에 덤벨을 쥐고 스텝을 뛰며 원-투를 빠르게 내지르는 것과 같은 아주 단순한 움직임 말이다. 이걸 다른 말로 바꾸면 '습관'인 것 같다. 최근에 본 이동진 평론가의 인터뷰 영상에서 나왔던 '습관'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좋은 습관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 대부분은 결국 습관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일, 사랑, 관계 등 모든 것들이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형성됩니다.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은 행복할 확률이 훨씬 높고, 이를 위해 반복과 시간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삶을 바꾸고 싶다면, 반복과 시간 속에서 몸이 기억하게 하자. 어느 순간, 두 팔과 다리가 근육으로 땅땅해진 내 몸처럼, 내 정신도 마음도 내면도 충분히 더 단단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다. 제자리에 정체되어 있는 것 같지만,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눈빛으로 팡-팡 스피드볼을 내리치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