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마음으로 달리며, 나도 이제 러너가 된 것 같아!
본격적인 배낭여행을 떠나기 전, 8년 전 친구와 나눈 약속을 지키기 위해 2박 3일 짧은 일정으로 일본에 왔다. 하루에 몇 만보를 걸어도 지칠 줄 몰랐던 20대 초반, 함께 떠난 유럽여행 중 로마 트레비 분수 앞에서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었다. "30살 되기 전에 저희 같이 또 해외여행 오게 해 주세요." 시간은 쏜살 같이 흘러, 눈 깜짝할 새에 우리는 서른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렇게 만으로 30살이 되기 1주일 전,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본에 왔다.
친구와 함께할 수 있는 이 모든 순간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기어코 흘려보낼 수 있었던 약속을 지킨 우리 자신을 너무나 칭찬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여행에서 그때처럼 또 다른 약속을 남겼다. 소중한 친구와의 여행에 대한 수기는 따로 남겨보려 한다. 대신 이 글에서는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내가 이 짧디 짧은 도쿄 여행에서, 아침 일찍 홀로 10km를 달린 데에는 사실 이런 비하인드가 있다.
한 때 버킷리스트 같은 거, 되게 식상하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특별 병'이라는 내가 이름 붙인 오랜 고질병이 하나 있다. 왠지 남들이 다 하는 건 하기 싫은 뭐 그런 가소로운 병이다. 한 때 붐이었던 '버킷리스트 만들기'도 그 특별 병의 일환으로 괜히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한참이나 지나 시간이 흘러, 내가 너무나 몰두해 있던 나의 일, 커리어, 성취, 성공과 같은 인생의 단편적인 개념들로부터 잠시 간격을 두고 다시 삶이란 걸 다른 방식으로 재정립하며 살아가보자 결심할 계기가 생겼다. 물론, 커리어에 있어서 뭔가 대단한 성취를 해낸 것도 없고, 아직 그럴 정도의 충분한 시간과 배움을 쌓지도 못했다. 뭔가 정점을 찍었어야 꺼낼 법한 말 같아 스스로 우습지만서도, 우리는 가끔 삶에서 예기치 않게 저마다의 고난을 겪으니까. 그리고 그 고난을 통해 사람은 변하니까, 스스로 검열을 멈추고 잠시 나의 이야기를 꺼내 보겠다.
내가 다시 잘 살아낼 거란 어렴풋한 믿음은 있었지만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막막했던 나에게, 어느 날 문득 버킷리스트를 만드는 게 인생에서 일종의 낭만을 잃지 않게 해주는 좋은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좁은 시선으로 내 삶을 몰아가고 있을 때, 내가 기어이 포기해 버렸던 것 중 하나는 내 삶의 낭만이었다. 낭만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버킷리스트에 무얼 담을지 눈을 반짝이며 살아간다는 행위 자체가, 인생을 좀 더 생생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시간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이며 계속 변화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렇게 성숙하고 성장하고 변화하는 내 자신과 함께 나의 버킷리스트 또한 나의 죽는 날까지 계속해서 업데이트되어가기를 바라고 있다.
지난 6개월 동안,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며 시작했던 달리기에 조금씩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으며, 성실히 매일을 달리며 자신을 단련하는 삶에 담긴 깊이와 기쁨을 한층 깊숙이 느낄 수 있었다. 서른셋, 주당 60~80km를 꾸준히 달리는 삶으로 나아간 하루키가 러너로서의 생활과 전업 소설가로서의 생활을 시작한 나이다. 그렇게 25년간 그는 수많은 소설과 글들을 집필하며 100km 울트라 마라톤과 철인삼종 경기를 포함하여 풀 마라톤을 25회나 완주했다.
책에서 그가 100km 울트라 마라톤이라는, 마라톤 풀코스인 42km의 두 배가 넘는, 보통의 인간에게도 그에게도 전혀 새로운 경험이자 도전을 했던 이야기가 나온다. 그로서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던 이 도전은, 그의 달리기 인생에도 모종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한계를 넘어 달리며, 몰아의 경지를 경험하는 하루키의 생생한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그의 레이스를 함께 달리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적어도 숨이 턱 끝까지 차 다리가 땡땡해지고 온몸이 부서질 것만 같은 경험이 있다면, 혹은 인생에서 순수한 열정만으로 무언가에 몰입해 미쳐본 경험이 있다면, 그의 지독한 달리기 여정에 힘입어 나도 한 번 더, 다시 한번 더, 무언가에 몰입하여 무아지경에 이르는 경지에 다다라보고 싶다는 열망의 불꽃이 내 안 어딘가에서 파박하고 작은 스파크를 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가보지 않은 그 길의 끝이 어떤 결말을 가져다주든,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하루키는 100km 마라톤 달리기에 대한 소회를 풀며 이런 말을 남긴다. '일상성에서 크게 일탈한 것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으로서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행위'는 자신에 대한 관조에 몇 가지 새로운 요소를 덧붙이게 해 준다고. 그 결과로써, 당신 인생의 광경은 그 색깔과 형상을 바꾸어 나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예기치 않게 마음에 드는 순간을 마주칠 때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으며 버킷리스트에 하나씩 추가가 되고 있다. 예컨대, 하루키가 해외 곳곳에서 머무르며 달려왔던 도시들마다, 그곳에서 달리며 마주쳤던 사람들, 광경들, 달리면서 들었던 음악, 그때의 기분, 그런 것들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의 삶을 동경하며, 나도 여행을 떠나면 도시마다 달리기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계속해서 늘어나 영원히 종료되지 않는 인생의 To-do-list를 작성한다는 이 작은 이벤트가, 내 삶 속의 의미 있는 순간들을 허투루 놓치지 않고 현재를 더 잘 살도록 도와주는 것 같다. 내 자신에 대한 관조에 새로운 요소를 덧붙여 줄, 그럼으로써 내 인생의 광경에 새로움을 줄 리스트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나의 가장 오래된 20년지기 친구와 떠난 도쿄 여행에서, 나는 나를 일으켰던 첫 버킷리스트의 스타트를 끊었다. 도쿄 시부야의 일요일 오전 6시의 바람을 가르며 달렸던 이 기억을 난 잊지 못할 것 같다. 이제 막 떠오른 햇빛을 맞으며, 아직 조용한 바다 건너 도시를 자유롭게 달리고 있자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번화한 도심 한복판에서 조금 떨어진 하타가야역 근처의 숙소에서 시작해, 일본 동네 특유의 고즈넉한 골목골목을 달리고 달렸다. 하루키가 달리기를 하며 듣기 좋아했다던 The Lovin' Spoonful의 Daydream이 에어팟을 통해 흘러나왔다. 사람 없는 대로변을 따라 신나게 뛰어, 하타가야역에서 몇 정거장 떨어진 요요기 공원까지 달렸다. 울창한 나무로 가득한 요요기 공원에서, 도쿄의 러너들 사이에 섞여 하루키의 마음으로 달렸다. 찬 바람을 가르며, 나무 사이사이로 따뜻한 시부야의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것을 마주했을 때, 나도 모르게 행복감에 벅차 달리며 활짝 웃었던 것 같다.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다.
낮에는 포근한 2월의 도쿄였지만, 아침엔 아직 좀 많이 추웠다. 뛰면서 난 땀이 실시간으로 식으면서 몸에 한기가 돌았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이라면 날 더 충만하게 행복한 인간으로 만들어줄 것만 같았다. 일요일 아침 일찍 문을 연, 몇 없는 근처 카페들 중에는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푸글렌이 있었다. 특별 병의 일환으로 힙스터는 못 참는 나, 가장 가까운 카페보다는 조금은 거리가 더 먼 푸글렌 시부야를 향해 달렸다.
아침 일찍에도 사람이 꽤 있었다. 나처럼 아침 러닝 후 커피 한 잔 하려고 들른 러너들도 몇 보였다. 누가 봐도 나도 그들과 같은 러너의 차림새였다. 주문을 하고, 유일하게 남은 바 테이블 자리에 앉아 다소곳하게 커피가 나오길 기다렸다. 세찬 바람에 두 볼이 시뻘겋게 텄지만, 오들오들 떨면서 초췌한 얼굴로 마셨던 드립 커피 한 모금이 뜨끈하게 식도를 타고 내려갈 때, 이 모든 게 이걸 위해 쌓여온 것 같았다. 사실 커피 맛보다는 감성과 그 순간 자체가 좋았다. 낯선 땅에서 난생처음 러너로서의 정체성으로, 커피 한 잔과 함께 몸을 녹이는 경험이었던 것이다. 알 수 없는 설렘으로 가득 차오름을 느꼈다.
아직 달리기를 막 잘하는 정도는 아니다. 그저 앞으로 이렇게 새로운 도시들을 달려보고 싶다. 언젠가는 나도 세계 곳곳의 도시에서 열리는 풀마라톤에 나가보고 싶다. 아직 인생에서 이렇게나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게 정말 감사하고 기쁜 일이지 않은가 싶다.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죽기 전에 다 해보고 죽을 수 있을지 시간이 모자라게 느껴진다. 죽는 날까지 소중한 기억들을 내 몸에 아로새기며, 내 인생의 광경을 다채롭게 가꿔가며, 최선을 다해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