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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Mar 18. 2023

해 뜨는 집

8년 만에 하는 이사

지하실.

어릴 때 살던 연립주택에는 모든 호실에 지하공간이 주어졌다.

요즘 주거형태의 하나인 반지하도 아니고 완벽한 지하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시절에 창문하나 없고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던 지하실에는 누군가 살고 있었다.

다들 월세를 주던 그 지하실을 우리 집에서는 세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곳은 어린 나와 나의 친구들에게 최고의 아지트가 되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수많은 놀이를 했고 꿈과 희망과 유치한 유희를 나누었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가득 매운, 불을 켜지 않으면 칠흑같이 어두웠던 그 지하실은 그 당시 나에게 꿈과 신비로 가득한 놀이동산보다도 더 좋은 공간이었다.


그 연립주택이 재개발되는 동안 우리는 다른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해 살았고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재개발이 끝난 새 아파트에 입주했다.

안양천이 빼꼼히, 아주 고개를 쭈욱 내밀면 빼꼼히 보이던 아파트였다.

으레 다른 고등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학교에 가고 야자를 하느라 늦은 밤 집에 돌아오는 일상이었고

다른 고등학생들과는 매우 다르게

주말이면 대학로며 종로를 싸돌아 다니며 음주가무를 즐기던 나는(무려 부모님의 승인하에 ㅎㅎㅎ) 집에 있을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재수를 선택하며 집과 잠시 멀어지는 시간을 보냈다.

수능점수가 가채점보다 40점이나 낮게 나오는 바람에 원래 그렇게 생긴냥 몇 달 내 눈물바람으로 눈이 퉁퉁 부어있던 나에게 부모님이 재수를 권하셨는데 나는 그냥 점수에 맞춰 학교를 갔다.

그리고 한 학기 내내 정말 신바람 나게 놀다가(과거 충무로의 멍멍이 저요 저요!! 왈왈!!) 여름방학이 끝나갈 때쯤 재수를 하겠다고 했고

부모님은 나의 늦은 선택을 반대하셔서(아마 반대의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가세가 심하게 기울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때는 몰랐다) 나는 엄마아빠와 눈도 마주 치치 않고 3개월 동안 재수를 위해 독서실을 다녔다.

해가 뜨면 독서실에 가서 자정이 다되어 돌아왔다.


그렇게 새로 학교에 입학하고 2개월이 지났을 즈음 아빠는 파산선언을 하셨고

우리는 야반도주하듯 아파트에서 나와 지하실로 이사를 했다(반지하가 아니라 진짜 지하실)

보증금 5천만 원에 50만 원, 빌라의 지하였다.

거실 창문을 열어도 현관문을 열어도 보이는 것은 지하주차장이었다. 문을 열 때마다 매연이 잔뜩 들어왔다.

그런 곳에서 10년을 넘게 살았다.

집은 아무리 깨끗이 청소를 해도 늘 곰팡이가 스멀스멀 침범했다.

아주아주 어린 시절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던 그 지하실에서 맡던 퀴퀴한 냄새를 하루종일 맡아야 했다.


이러다가는 자식들 아무도 결혼을 못할 것 같다며 엄마아빠는 무리를 해서 집을 옮겼다.

빌라들이 빼곡히 들어선 빌라촌이라 창을 열면 바로 옆집이었다. 여전히 해는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신선한 공기는 마주할 수 있는 집이었다.

그리고 취업한 여동생과 내가 모아둔 돈을 빌려 같은 빌라의 3층으로 이사를 했다.

부모님은 마지막 이사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지금 누수로 소송까지 치르고 있는 그 집이다.

역시나 해는 잘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1층보다는 나은 3층이었다.


이렇게 오랜 시절 동안 집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단절되어 살았던 나는

지방발령으로 인해 고층 아파트에 살게 되어 거의 조증에 가까울 정도로 기분이 업되었었으나

그 당시 대학원을 다녀 늘 어두운 밤 집에 들어가기 일쑤였고, 곧이어 아빠의 암 발병 소식을 알게 되어 틈만 나면 본가로 가서 아빠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좋고 좋았던 집에 있을 시간이 별로 없었다.


다시 서울로 오면서 나의 집을 마련했고,

강남 바닥은 이 정도면 일조권이 좋은 것이라는 아빠의 말에(레알참트루이기도 한 아빠의 말) 덜컥 집을 사버리고

별 불만 없이 행복하게 살다가 코로나 & 재택으로 인해 태양빛에 대한 갈증을 넘어 집착에 시달리게 된다.

부동산 경매를 공부하며 여기저기 임장 다닐 때

거실로 햇살이 찬란하게 들어오는 집만 보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좋아하던 내 모습은

이런 기나긴 음지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정말 무모하게도

거실에 빛이 쏟아져내리던 그 집을 보고 무조건 갖고 싶다고 생각했고

정말 가져버렸다(부린이 인생의 시작!!).

그리고, 세입자를 들여 수익을 얻는 용도이지 영영 들어가서 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집에 들어갈 날을 사흘 앞두고 있다.


나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어 여러 번 이사를 다니면서

생때같은 자식들을 셋이나 데리고 이사를 다니던 부모님의 심정이 어땠을지

그리고 그 자식들과 지하실에서 살던 기분이 얼마나 처참했을지

다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 무겁고 무서운 무게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엄마 아빠가 참으로 안 됐고 또 안쓰럽다.


동생과 내가 해 뜨는 집에서 살게 되었으니

곧 엄마와 남동생도 해 뜨는 집으로 이주할 수 있게 세팅할 생각이다.

집이란 지붕이 있어 비를 막아주고 벽이 있어 궂은 날씨를 막아주는 내 한 몸 잠시 머무는 곳이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인가 되어 내 인생에 크나큰 영향을 주고 있었다.


해 뜨는 집에서 내 인생에 해 뜨는 날만 있길,

앞으로는 쭉 해가 찬란한 집에서 살 수 있는 인생만 펼쳐지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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