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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슴 Sep 01. 2020

001. 갈라파고스 제도

비현실이 현실로 존재하는 곳

갈라파고스 제도 Galapagos Islands


 그곳이 실제로 존재하는 곳인가요?

나에게 질문 한 분은 첫 번째 해외여행으로 타히티를 다녀온 분이었다. ‘타히티 가는 게 더 힘들지 않나요?’ 내가 반문했다.

 

여름휴가, 휴양지, 바다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이 곳의 이야기를 신나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적어도 나에겐 바다의 끝판왕 같은 곳. 어떤 사람에겐 엘도라도, 유토피아 같은 곳.

 


 갈라파고스 제도는 찰스 다윈이 1859년 <종의 기원>에서 발표한 진화론에 대해 영감을 준 곳으로 19개의 화산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갈라파고는 ‘안장’이라는 뜻이고, 육지거북의 등딱지 모양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장기 여행 중에 왕복 비행기를 예약해야 하는 섬 여행을 하는 것은 큰 비용이 들고 미리 왕복 일정을 계획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세계일주를 시작한 지 1년이 넘어서 웬만한 여행지에는 크게 욕심이 없었던 때였다. 나중에 또 오지 뭐라는 안일한 생각을 자주 하던 때였는데도 어쩐지 이 곳만은 꼭 가고 싶었다. 상상 속에 존재하는 용을 직접 만나러 가는 느낌이랄까? 갈라파고스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갈라파고스는 섬 여행에 필요한 왕복 비행기 티켓 외에도 입도비 100달러, 여행자 카드(20달러)까지 구매해야 했기 때문에 부담이 컸다. 평소에 하던 것처럼 “여기 마음에 드는데 며칠 더 있다가 다음 도시로 갈래?” 와 같은 충동적인 스케줄로 움직 일 수 없기 때문에 아주 오랜만에 단기 여행자의 마음으로 정보를 찾고 여행 일정을 세웠다. 국제선은 없으므로, 갈라파고스를 가려면 에콰도르의 수도인 키토나 과야킬에서 국내선을 타야 하는데, 동선을 효율적으로 움직이려고 들어가는 공항과 나오는 공항을 다르게 예약했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수많은 희귀종 동물과 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가방검사도 꽤 꼼꼼히 하는 편이라고 해서 섬에 반입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도 미리 체크해서 섬에서 먹을 식재료도 미리 구매를 해두었다.

갈라파고스에서만 살고 있는 육지거북

갈라파고스의 생활은 평화롭고 단순했다. 에콰도르 본토보다 비싼 물가 때문에 갈라파고스에 머무르는 16 동안, 거의 대부분 밥을  먹었는데, 좋은 식재료를 얻기 위해 아침 7 피쉬 마켓에 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참치 뱃살을 사기 위해 약간의 흥정을   (맛있는 뱃살은 일찍 동이 나므로 서둘러야 한다) 신선한 참치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면 회를 뜨거나, 초밥을 만들어 점심을 먹고, 어떤 날은  생선살을 사서 직접 어묵도 만들어 먹었다. 간장은 갈라파고스에서도   있지만, 회를 맛있게 먹으려면 고추장이나, 초장, 참기름, 고추냉이를 한인마트에서   가지고 가라던 다른 여행자의 말을 듣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채소가 귀하고 비싼 동네라 어쩔  없이 제일 구하기 쉬운 참치를 매일 먹었는데, 고추장에 레몬즙을 

넣어 만든 초장이 없었다면 느끼해서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산타크루즈 피쉬마켓, 생선을 노리는 펠리컨들

 

참치와 생선이 질린 어느 날은 동네 작은 마트에서 비싼 달걀을 사 왔다. 6개를 샀는데 3개는 까맣게 썩어 있길래 처음에는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다음에 사 왔을 때도 몇 개가 썩어 있길래 다시 마트를 찾아갔다.


“아까 사 갔던 계란이 상했어.”

말해 놓고도 어쩐지 내가 사기꾼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미 상한 계란은 버려서 없는데 빈 손으로 와서 계란이 상했다고 투덜거리는 고객이라니.

 

하지만 가게 주인은 따지지도 않고 물어본다

“몇 개 상했어?”

“3개”

“자 여기 3개 다시 줄게.”

 

어? 이건 무슨 상황이지?

당황하는 나에게 주인이 이야기한다.

 

여긴 닭이 살지 않아. 원래 여기 살던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닭은 들여오지 않았지. 그래서 그 계란은 본토에서 배를 타고 온 거 거든. 내가 지금 주는 3개 중에도 상한 게 있을 수 있어. 그럼 다시 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어 보인다. 다시 받은 달걀도 1개가 상했지만, 우리는 바꾸러 가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달걀을 내어주는 가게 주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우리는 생필품(물, 스파게티 등등)을 모두 그 가게에서 사기로 했다. 물론 그 날 이후 달걀은 다시 사지 않았다.

 

선착장에 서서 찍은 사진들 가오리떼와 상어가 유유히 지나간다.


여행지의 일상이 대게 그렇듯 먹는 일과 쉬는 일이 전부다. 흔한 참치를 질리도록 먹고, 오후엔 동네 강아지보다 더 흔한 바다사자와 수영을 하러 바다에 나가기도 하고, 해변에 멍하게 누워,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일광욕을 하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면, 언제 더웠냐는 듯이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이른 저녁을 해 먹고 어슬렁어슬렁 걸어서 바닷가로 나가 한 시간이 넘게 앉아 해가 지는 걸 보고 나면, 하루가 지나갔다. 깜깜한 밤 산책을 나가 선착장에 서 있다가 바다를 내려다보면 가오리 떼가 스르르 지나가기도 했다.

 

부지런하게 자전거를 빌려 타고 나갔다가 아무리 달려도 그늘 한 점이 없어서 후회하는 하루를 보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스노클링 투어를 나가 120살 된 거북이 할아버지를 뵙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고, 자고 있는 화이트팁 상어를 보고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뜬금없이 나타난 열대 펭귄이 바위 위에서 나를 구경하러 뿅뿅뿅 걸어오는 말도 안 되는 일을 겪기도 했다.   



 

100살은 넘었다는 거북이
바다사자와 마음껏 수영할 수 있는 곳

 갈라파고스를 다녀온 사람들의 SNS엔 누구나 할 것 없이 바다사자와 이구아나 혹은 파란 발 부비새 (실제로 보면 정말 신기 하긴 하다) 사진이 넘쳐나는데, 실제 가 보니 동물들 보다는 바다가 정말 아름 다웠다. 칸쿤으로 대표되는 카리브해나, 몰디브에서 만난 인도양과는 또 다른 맑은 바다. 그 해변에 수 만 마리의 이구아나들은 징그럽기보다 경이로운 풍경이었고, 동네 입구에 널브러져 자고 있는 바다사자는 생각보다 크고, 냄새가 고약하고, 성격도 포악해서 사진을 찍는 건 꽤나 심장이 쫄깃해지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해 질 녘 수백 마리가 해변에서 컹컹 - 울 때면 정말 뛰쳐 오지나 않을까 무서웠다. 어떤 때는 길목을 막고 지나가지 못하게 공격하기도 해서 한참을 길 끝에 서성이기도 했다. 정말 동네 깡패가 따로 없었다.

강아지 보다 흔한 바다사자들


그때 우리에겐 그 순간이 너무 당연한 일상으로 느껴지곤 했는데, 여행에서 돌아와 갈라파고스 이야기를 할 때면 허풍쟁이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그곳이 실제로 존재하는 곳인가요?”라고 물었던 그분처럼 나 역시 아직까지도 그 시간이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평범한 것이 평범하지 않고, 흔한 것이 흔하지 않은 곳. 비현실이 현실로 존재하는 곳. 갈라파고스.

 


갈라파고스에만 살고 있는 바다이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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