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칠 때만 시간 분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갈레 Galle / 스리랑카 Srilanka
시험칠 때만 시간 분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남편의 갈래 올래 어쩌고 하는 아재 개그를 들을 게 뻔한 도시, 현지 사람들은 ‘골’이라고 부른다. 골로 갈래 하는 아재 개그도 덤으로 들어야 하는 게 분명 한 곳.
스리랑카는 바로 전 여행지였던 인도에 비하면 밍밍한 맛의 쌀 죽 같은 여행지였다. 인도의 강렬한 색채에 물을 탄 듯 비슷하지만 조금 더 부드러운 느낌이랄까. 비슷한 얼굴에 비슷한 옷을 입고 있지만, 힌두 문화의 센 기운은 옅어지고 불교가 생활 곳곳에 배어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 프로그램이나, 정보지에서 찾아봤던 스리랑카는 불교의 나라였다. 관광지 추천에도 불교 사원이 많았다. 인구의 70%가 불교인 나라. 하지만 막상 스리랑카에 도착해보니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에게 차례로 440년이나 식민지배를 당했던 터라 해안가 쪽으로는 천주교의 문화가 깊게 배어 있었다. 불교, 힌두교, 천주교가 섞인 묘한 문화였다.
3개월 동안 인도를 여행하며 꽤나 고단 했던 우리는 이 순한 맛 여행지에서 마음이 풀어졌다.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착해도 되나 싶을 만큼 선했다.
갈레에 도착한 날은 네곰보에서 툭툭(삼륜자동차)을 렌트해 스리랑카를 시계방향으로 돌았던 한 달 간의 여행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었다. 스리랑카의 수도인 콜롬보에서 초밥을 먹고, 커피빈을 가는 것을 빼면 우리는 이제 큰 계획은 없었다.(장기여행에서는 먹는 게 늘 큰 계획이다.)
여기서 툭툭을 반납하는 네곰보까지는 150km 정도 남았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지만, 툭툭은 최대 시속이 60km이고, 사방이 오픈되어 있어 너무 긴 거리를 이동하면 매연을 엄청나게 마셔야 하므로 중간에 쉬어 가며 이동하기로 했다.
툭툭으로 여행한 덕분에 우리는 보통의 여행자들이 가지 않는 곳으로 다녔던 걸까? 여행객을 거의 만나지 못해서 직항을 취항한 대한항공 노선이 곧 없어지겠다고 생각했는데 여행이 끝날 무렵 도착한 남부 해변에 서핑을 하는 전 세계 여행자들이 득실득실 모여있는 걸 보고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네곰보에서 멀지도 않은데 여긴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눈을 감고 코끼리 다리만 만져본 사람처럼 스리랑카엔 여행객이 한 명도 없더라 했겠지.
갈레는 남부 해안의 중심 도시이고, 몇 달씩 머무르는 여행자도 많은 곳이라 여행 인프라가 잘 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현지인들이 다니는 식당만 다니며 ’ 커리 앤 라이스’ 혹은 ‘라이스 앤 커리’만 먹었던 우리는 갈레엔 파스타나 피자, 햄버거 같은 음식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갈레에서 점심이나 먹고 갈래?
유럽의 식민지 기간 동안 16~18세기에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중요한 항구의 역할을 했던 갈레엔 당시 지어진 포트와 유럽풍의 구 시가지가 있다. 바다를 따라 성벽으로 둘러 쌓여 있는데 유럽이 지어놓은 성벽 중 동남아에서 가장 잘 보존이 되어 있는 성벽이기도 하다고. 2004년에 남부에 큰 쓰나미가 와서 4만 명이 죽고 신시가지가 휩쓸려 나갈 때에도 이 성벽이 구 시가지를 보호해 주어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포트에 올라서니, 바다가 한눈에 보였다. 음 바다군.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신기하게도 이 곳 성벽에 조개껍데기나 산호 같은 게 잔뜩 박혀 있어서 그걸 구경하고 있는데, 저 멀리 단체 관광객들이 깃발을 세우고 몇 팀씩 오기 시작했다. 이런 곳에 단체 관광객이라니, 스리랑카가 유럽인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라더니 진짜 인가보다 하고 생각하는데 남편이 이야기한다.
“ 아, 이렇게 사람이 많이 오면 곧 있으면 식당이 붐비겠어. 빨리 밥 먹으러 가자.”
툭툭에 올라타고 골목을 천천히 달렸다. 잘 보존된 유럽풍 구시가지의 거리는 단정했다. 작고 귀여운 카페도 있고, 스리랑카 여행 중에 거의 보지 못했던 젤라또 같은 세련된 디저트도 있었고,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이 생긴 기념품 샵이 아닌 디자이너 편집샵이나 갤러리들도 있었다. 여기저기 로컬 식당도 은근히 많아서 어딜 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점심시간보다 이른 시간인데도 손님이 꽤 많이 앉아 있는 작은 가게를 보고선 그냥 들어가기로 했다. 검색보다 확실할 것이다.
단출한 식당 안 벽엔 열대의 나뭇잎 그림이 그려져 있고, 바다를 그린 작은 그림이 하얀 벽에 걸려 있었다. 우리는 신선한 과일주스와 해산물로 만든 요리를 먹었다. 현지식이지만 적당히 외국인 입맛에 맞춘 맛. 나는 전날 미리사 해변에서 한 후회를 한번 더 하게 된다.'여기 일찍 와서 며칠 있었어야 했네. 장기체류하기 좋은 도시구나.'
저렴하고 쾌적한 숙소
걸어서 갈 수 있는 해변
그리고 다양한 음식과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
로컬 지향주의 여행을 하겠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여행자 거리가 주는 안락함을 맞닥뜨리게 되면 눌러앉고 싶어 지는 건 많이 지쳤다는 뜻이기도 했다. 콜롬보에 가서 커피빈을 가겠다고 계획을 세운 것 역시 그동안의 스리랑카 여행이 그만큼 고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툭툭을 타고 스리랑카 구석구석을 다니는 동안, 정말 구석만 다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홍차는 원 없이 마셨지만, 네스카페 인스턴트 아닌 커피를 마시기가 힘들었고 나는 아이스 카페라테가 절실했다. 다음 나라가 몰디브니(리조트 아닌 현지인 섬으로 여행) 한동안은 또 커피를 마시기 힘들 거라고 생각해서 스리랑카를 떠나기 전에 내가 아는 맛인 커피! 프랜차이즈 커피를 마시고 싶었던 것이다. (스리랑카에서 프랜차이즈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은 수도인 콜롬보 커피빈 밖에 없었다. 스타벅스 없음)
홍차 바이어라도 되는 것처럼 누와라엘리야, 하퓨탈레 같은 내륙의 차밭을 구석구석 다니며 시간을 오래 보내지 않았더라면, 여행객은 커녕 현지인도 없던 스리랑카의 동북부를 가지 않았더라면 갈레를 스쳐 지나가지 않고, 며칠은 머무르며 여유를 좀 부리고 쉴 수 있지 않았을까?
인도에서도 그랬다. 북부부터 남부까지 천천히 돌겠다며 북인도인 스리나가르로 들어와 남부인 첸나이에서 아웃하는 비행기를 끊어두었는데, 북인도와 라자스탄에서 시간을 다 보내고, 막상 아웃 날짜가 되었을 때는 콜카타에서 첸나이까지 33시간 기차를 타고 한 번에 내려와 스리랑카에 와야 했다. 남인도 고아나 함피 같은 도시를 한 군데도 들르지 못했던 그 실수를 또 하고야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150km 떨어진 네곰보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매력적인 스리랑카 남부 해안을 만나게 될 줄이야. 시험 말고 여행에도 적절한 시간 분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