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지인들이 물어본다.
'오빠는 아직도 그 일 해?'
남편은 회사를 퇴사하고
2019년 12월에 영화 스타트업을 시작했고,
2020년 1월 코로나가 터졌다.
극장이 문을 닫고, 많은 영화들이 개봉을 미뤘고, OTT만 성장했다.
영화 시장이 엉망인 상황이라, 1년쯤 지나니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 남편은 꾸준히 성실히 하던 것을 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
극장 관객수에 포커싱 되어 있던 회사의 방향성에서 빠르게 변화해 영화 콘텐츠 서비스를 시작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오프라인 개봉 영화들에 투자도 시작했다.
<범죄도시><버닝><악인전><기억의 밤><사라진 밤><대장 김창수>와 같은 선 굵은 한국 영화들의 투자와 배급을 담당했던 남편이 제일 잘하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관객이 없는데, 투자라니...
나는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여기 이번 영화 진짜 잘 되어야 하는데.... 좋은 영화 수입 많이 하는 곳인데. 요즘 진짜 어려워."
영화 업계를 걱정하며 각 회사들의 영화 리스트를 분석하고 선택하는 그 과정이 참 예뻐 보였다.
작은 영화에 특별한 애정이 있는 남편은 본인 취향의 조금 어려운 영화들 (내용이 어렵거나, 흥행이 어렵거나)에 투자를 했는데 회사의 필모그래피로 쌓일 영화들을 보면서 '진짜 남편답다.' 싶기도 하고, 읭?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올해 개봉작 중 남편의 회사 로고가 나오는 영화는 총 다섯 편이다.
한 편은 보고 나서, 생각할 게 너무 많아서 일주일 동안 우울 해지는 영화 (남편의 인생영화 중 하나가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랍니다)
한 편은 B급 병맛 영화 (2016년에 그 해 최고의 영화로 <스위스 아미 맨>을 뽑은 사람이 우리 남편임 ㅋㅋ)
한 편은 여행이 떠나고 싶어 지는 영화 (남편은 세계일주 다녀와서 책 낸 적 있음. 심지어 아직도 베스트셀러임. 여행 가고 싶은 영화는 늘 옳지)
한 편은 몹시 프레시한 청춘영화 (아, 이 영화는 왜왜왜? 좀 궁금하긴 하더라)
그리고 마지막 한편은
"이 영화는 그냥 10000% 네 취향의 영화라서 결정했어. 아마 OTT에 올라오면 네가 적어도 30번 이상은 볼 영화랄까? 투자 결정한지는 오래되었지만, 개봉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 만난 지 15주년 기념 선물이라 하자." (응?)
네. 여러분! 이 글을 쓴 이유는 자랑입니다.
광고 아니고요. 홍보 아니고요. 자랑입니다 (단호ㅋㅋ)
남편 찬스로 먼저 영화를 봤는데, 너무 좋아 울었다. (사실 울 영화는 아님.)
많은 영화들 중에 이 영화를 보면서 '아내가 좋아할 영화네...'라고 생각했을 그 마음이 좋아서
셀린저가 조안나에게 하는 말이 남편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또 눈물이 났다.
실제 하는 물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름이 어디에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없고, 아무것도 없지만
아무튼 이 영화 공동제공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내가 있다고 소리 내어 자랑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이 영화로 남편이 내게 하려던 이야기는 내가 다시 글을 쓰는 것이었는데, 덕분에 이렇게 시작한다.
#만난지15주년선물로
#영화개봉을선물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