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고 귀찮은 그런 여행, 세포를 깨우며
잠귀 밝은 둘째 덕에
예정보다 이른 시간에 길을 나섰다.
이불 속에서 5분만 더 잤으면 하는 마음과 싸운 것 보다
훨씬 낫지 하고 생각하며 쫓겨났는데,
새벽 4시의 칼바람은 생각보다 매서웠다.
텅 빈 도시에 바람이 주인이 되어
건물과 건물 사이를 힘차게 유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도로 위에 차가 몇 대 무서운 속도로 지나가면,
정적이 흐르고 그 사이로 캐리어 바퀴 소리가 요란하게 퍼졌다.
이상하리 만치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이나,
내가 내는 목소리가 얼마나 클지 감각을 잊고
웃으며 크게 떠들어 청춘들도 없었다.
월요일 새벽이었다.
한주를 시작하는 고요하고도 엄숙한 새벽
매일 지나던 이 길이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처음 걸어가는 길처럼.
버스정류장 앞 횡단보도에 이르러서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야광 점프슈트를 입은 환경미화원 한 명을 만났다.
고요히 비질을 하던 그는 요란한 캐리어 소리에 놀란 듯 나를 보았다.
초록 야광색은 겨울에 더 추워 보이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눈으로 수고하십니다 하고 인사를 보냈다.
그는 내 얼굴을 보고, 곧이어 빨갛게 얼어버린 캐리어를 잡은 손으로 시선이 내려왔다.
안쓰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멸망해 버린 지구에 둘만 남은 것처럼 묘한 연대감이 흘렀다.
이 시간, 이 공기에 서있는 서로를 걱정하던 짧은 순간.
나는 아주 멀리 떠나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장소를 여행하기 위해 떠나지 않더라도,
이렇게 낯선 시간에 나서는 것도 여행이구나.
시간과 공간은 다른 개념이 아닐지도 모른다.
차가운 공기를 정면으로 맞으며,
장갑을 캐리어에 넣고 집에서 나온 나를 원망하며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이제까지 텅 빈 거리와 다르게,
정류장엔 오 밀 조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검은색 패딩에 모자와 귀마개를 하고, 좁은 정류장에 효율적으로 서 있었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간격을 유지하며.
버스 정류장 알림판에 버스 번호의 첫차가 표시되고 있다.
643번 첫차 97분, 651번 첫차 66분, 652번 첫차 48분 653번 첫차 33분….
내가 타야 할 차는 28분 뒤에 온다.
아득히 먼 숫자 사이로 한 버스의 번호가 곧 도착으로 뜨더니, 정류장에 도착했고
까만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모두 그 버스에 탑승하고 떠났다.
정류장엔 다시 나 혼자 남았다.
이 시간의 추위와 공기를 알고 각종 방한 용품으로 무장하고
자신이 타야 할 버스의 첫차 시간에 맞춰 종종걸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나에겐 지독히 비일상적인 이 시간이,
저 사람들에겐 평범한 수많은 월요일 가운데 하루라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불현듯 다시 떠올린다.
28분간 이 추위 속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조차 여행이라는 것을 아니까.
자, 버스를 타기 전에 내 몸 안에 3년간 숨겨 놓은 여행 세포를 마지막 하나까지 깨워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