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자리

by Dee

새벽 2시.
지 엄마라고 해도 조금도 봐주지 않는 아이들의 몸부림에 무릎 킥 당하고, 앞차기당하며 멍하게 짜증을 냈다. 어둠 속에서 이내 밝아오는 두 아이들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맞다, 내가 이 아이들 엄마지...' 하는 생각에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가 묵직하게 나를 눌러왔다. 뽀얗게 빛나는 복숭아 빛의 볼과 앵두 두 개를 합쳐놓은 것 같은 귀여운 입술, 아득히 길게 늘어져있는 속눈썹. 평생 꿈꿔오지 않은 갑작스러운 선물에 '이게 웬 꿈이야 생시야'하며 햇강아지 눈을 하고 몽글몽글하고 뜨끈뜨끈한 떡가래 같은 정을 뚝뚝 쏟아내다가, 욱 할 때는 나도 폭발해 '별나다, 별나!' 하며 모진 말을 폭포같이 내뿜다가, 언제 그랬냐듯 나 혼자 화해하고 반성 모드로 가기를 하루에도 몇 차례. 이중인격도 아니고 하루에 몇 번을 이뻐 죽겠다가 미워 죽겠다가 냉탕 온탕을 왔다 갔다 한다.

내 생애 가장 위대한 일이면서도 어느 누구에겐 가장 평범한 일. 그건 바로 누군가의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친정엄마를 겪으면서 절대! 절대! 내 인생에 절대 결혼이란 없다고 으스댔다. 엄마를 젓가락 한 쌍처럼 그대로 빼닮은 나이고 하필 억울하게도 유일한 롤모델이 엄마라 드라마에 심심찮게 나오는 인정 많고 푸근한 엄마를 꿈꾸기란 만무했다. 엄마는 아이에게 세상의 거울이고, 아이는 엄마의 복사판이고, 사회라는 첫 발을 내딛을 때 처음 마주하고 관계하는 사람이라며 온갖 얘기를 읽고 들으니 엄마가 되겠다는 꿈은 길 없는 산을 오르는 것과 같은 미지의 두려움이었다.

하필 그런 내게, 하늘도 무심하시지 세상 별나고 천방지축 에너지 왕왕 뿜는 첫아들이 나와버렸다. 갓난아기는 누가 먹고 자고 싸는 것밖에 안 한다고 했던가. 세상에서 처음 만난 내 아기는 빛과 소리에 예민해서 잘 자지도 않고 한 번 울면 몇 시간을 울어대고 진정이 안되었다. '다 그동안 지은 내 죗값이야'라고 받아들여야 했거늘 그 당시는 매 순간, 매 시간이 아이와 마주하는 시간이 두려웠고, 그런 엄마의 감정을 감지한 아기는 더 민감하게 보채고 또 보챘다. 아기는 자라서도 잠도 잘 안 자면서 에너지는 어디에서 뿜어져 나오는지 밖에 한 번 나가면 온 천지를 휘젓고 다니며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떼라는 떼는 다 쓰고 다녔다. 유모차에 커피를 들고 다니며 여유롭게 아이들을 놀리는 엄마들을 보며, 얼마나 잔망스러운 눈빛을 보냈는지... 그렇다고 아이를 집에 두면 에너지 억제가 안되는지 도통 잠을 자지 않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별난 첫아이를 만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친정엄마와 주위 사람들의 우려를 더 큰 우려로 입을 못 다물게 만들려고 했는지 남편과 막돼먹은 엄마 씨는 둘째를 계획했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피를 나눈 형제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남산은 무엇이랴, 태산과 같이 솟아오른 만삭의 배를 하고 별난 첫째 씨를 잡으러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혼자서 난리부르스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신은 더 큰 고통으로 날 잠재워주셨다. 초기부터 있었던 임신소양증에, 얼굴이 마비로 돌아가고, 폐렴까지... 참 많은 날들을 대놓고 베개 적시며 많이 울었다. 스스로 선택한 일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친정엄마의 까칠하고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그렇게 둘째 출산에서 양육까지 버텨나갔다.

​인간이 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처럼 엄마가 되는 것도 참 쉽지 않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모든 언행을 아이가 내 눈앞에서 생생하게 재방송을 해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이 점이 나를 가장 두렵게 했으며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도 제발 아빠만 닮아라고 빌고 또 빌었다.

별난 첫째 씨와 기 센 둘째 양이 한 살 한 살 먹는 요즘, 이 아이들을 내 배에서 받고 내 배 위에서 키울 때의 두려움은 이제는 한결 덜하다. 워킹맘으로 전환해서 아이들을 한편 뒤에서 바라보게 된 것도 한 몫하겠지만 이제 엄마라는 자리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아이는 거칠고 못난 엄마를 매 순간 더 낫게 이끌어준다. 엄마의 본을 그대로 닮는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스스로도 말을 정제해서 나뱉게 되고 행동도 억제하게 되기 마련이다.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 보면서 나 자신이 소리를 덜 지르게 되고, 아이가 해서 안될 말은 내가 아예 꺼내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 점점 나은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이 엄마라는 자리도 있다 보면 저절로 시행착오를 겪고 나아가게 되어있다. 인간의 발달 과정상, 웬만해서는 후퇴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낳아놓으면 콩나물시루 자라듯이 신체도 정신도 잘 크게 되어있다.


사람이 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일은 사랑과 정을 주는 일이다. 그런 대상이 없어서 슬픈 거지 대상이 생기면 그냥저냥 있는 거 다 떠다 먹이고 온정을 듬뿍 주기 바쁘다. 사랑을 억제하기에 통달한 사람은 없듯이 지 자식이면 저절로 사랑을 주게 되어있으며 이 세상살이에서 고되지 않게 강인하게 키우게 되어있다. 엄마의 자리가 두려운가? 1도 걱정 말라. 지금의 당신보다 몇 배나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게 ​아이일지니.

작가의 이전글미지의 세계로의 첫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