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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자본(Mountain Capital)의 개념 정립과

by 발키리

산악자본(Mountain Capital)의 개념 정립과 실천적 함의


산과 인간이 교차하는 공간은 고유한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함축하고 있다. 본 글은 레이 올덴버그의 ‘제3의 장소’ 이론과 피에르 부르디외 및 로버트 퍼트남의 사회적·문화적 자본 개념을 이론적 토대로 삼아, ‘산악자본’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고 그 의미와 활용 가능성에 대해 폭넓게 논의해보고자 한다.


제3의 장소와 사회·문화 자본

도시의 작은 카페나 공원처럼 집과 직장 밖에서 사람들이 어울리는 제3의 장소개념은 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Ray Oldenburg)가 그의 저서(The Great Good Place)에서 주창한 것이다 (Oldenburg, 1989). 제3의 장소란 가정(제1의 장소)과 직장(제2의 장소)이 아닌, 사람들이 정기적·비정기적 또는 공식적·비공식적으로 모여 소통하고 교류하는 공간을 말한다. 중립적이고 개방된 공간은 다양한 배경을 지닌 개인들이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며, 정서적 해방과 사회적 연결을 가능하게 한다. 올덴버그는 이러한 제3의 장소가 민주주의와 지역 사회 활성화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하며, 이곳에서 형성되는 유대감과 대화가 개인의 삶과 공동체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주장한다(Oldenburg, 1989).

실제로, 제3의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은 사회학에서 사회적 자본이라는 형태의 자원 축적으로 이어진다. 사회적 자본이란 사람들이 맺는 관계망에서 얻을 수 있는 유용한 자원, 즉 공동체의 신뢰, 규범, 네트워크를 포함하는 무형의 자산을 의미한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사회적 자본을 "지속적인 관계망을 통해 동원할 수 있는 자원과 상호 의무”로 설명하며, 이는 개인이 속한 사회적 연결망에서 얻는 잠재적 이익 이라고 말한다(Bourdieu, 1986). 로버트 퍼트남(Robert Putnam)은 사회적 자본을 "신뢰, 규범, 네트워크와 같은 사회 조직의 특징으로서 상호 협력을 촉진하는 것"으로 정의하여 공동체 수준에서의 신뢰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Putnam, 2000). 결국 사회적 자본은 신뢰와 규범, 그리고 네트워크를 통해 형성되는 무형의 자산으로, 사회 구성원 간의 협력을 가능하게 하고 공동체의 성장을 촉진한다.

한편, 공동체 내에서 공유되고 축적되는 지식과 문화적 경험은 문화적 자본의 형태로 나타난다. 문화적 자본은 사회적 자본과 더불어 부르디외가 언급한 중요한 개념으로, 개인이나 집단이 보유한 지식, 가치관, 예술적 소양 등 문화적 역량을 의미한다(Bourdieu, 1986). 이는 예술에 대한 안목, 교육 수준, 언어 사용 능력, 전통에 대한 이해 등 사회적으로 가치 있다고 인정되는 무형의 자산을 포괄한다. 문화적 자본은 사회 내 지위와 권위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며, 세대를 통해 전승되거나 개인의 교육과 경험을 통해 축적된다. 이를테면, 등산 문화를 통해 전승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산악 지역의 고유한 생활 방식과 전통 역시 문화적 자본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러한 자본은 공동체 정체성의 토대가 되며, 구성원들에게 소속감과 자부심을 부여하는 핵심적 기능을 담당한다.


산악자본: 개념 정립과 사례

앞서 논의된 레이 올덴버그(Ray Oldenburg)의 '제3의 장소(Third Place)' 개념과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및 로버트 퍼트남(Robert Putnam)의 사회적·문화적 자본 이론을 산악 지역이라는 구체적 맥락에서 확장하여 적용할 경우, 우리는 '산악자본(Mountain Capital)'이라는 새로운 이론적 개념을 도출할 수 있다. 산악자본은 산악 지역의 공동체가 산과 등산 활동을 중심으로 형성하고 축적해온 사회적 자본(신뢰, 규범, 네트워크)과 문화적 자본(지식, 관습, 전통)의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자원을 의미한다. 즉, 산이라는 공간을 제3의 장소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사회적 유대감과 축적된 문화적 지식 및 경험이 공동체의 무형 자산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산악자본 개념은 단순히 자연환경의 미적 가치나 경제적 활용 가능성을 넘어, 산악 공동체 내에서 창출되고 축적된 사회적·문화적 활동과 그로 인해 형성된 무형의 가치에 주목한다. 이러한 산악자본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협력과 상호작용을 촉진하며, 결과적으로 공동체의 정체성 형성 및 지속 가능한 발전을 견인하는 핵심적인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는 산악자본이 단지 지역적 자원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맥락에서의 공동체적 발전과 혁신을 가능케 하는 포괄적 개념임을 시사한다.

산악자본은 세계 각국의 산악 공동체 활동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네팔에서는 1980년대부터 공동체 산림관리 제도가 도입되면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숲을 보호하고 자원을 공동으로 관리해왔다. 이 과정에서 상호 신뢰와 협력이 강화되었고, 전통적인 산림관리 지식도 자연스럽게 계승되었다. 이러한 실천은 생태계 회복과 자원의 지속 가능한 이용으로 이어지며 산악자본의 생태적·사회적 가치를 잘 보여준다.

힌두쿠시-히말라야 지역에서는 협동조합을 기반으로 한 경제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 농산물의 공동 판매나 생태관광 운영과 같은 활동을 통해 공동체는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동시에, 구성원 간의 참여와 신뢰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이처럼 공동의 경험을 중심으로 한 협력 구조는 산악자본의 경제적 기능을 뒷받침한다.

유럽 알프스 지역은 등산 클럽과 산악 네트워크를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등반 관련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공유해온 대표적인 사례다. 산악 가이드 제도와 산장 운영 문화는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며, 문화적 자본으로서의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이들 산악 문화는 구성원들에게 소속감과 자긍심을 부여하며 산악자본의 문화적 측면을 강화한다.

또한 네팔 히말라야 지역의 셰르파 공동체는 고산 지대에서의 오랜 등반과 교역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고산 지식과 등반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이들이 축적한 지식은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공동체 내부의 강한 연대감과 신뢰는 사회적 자본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이러한 흐름과 맞물려, 국제산악연맹(UIAA)은 산악 활동의 지속 가능성과 지역 공동체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는 공식 선언문을 발표하며 산악자본 개념의 국제적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결국 이 같은 다양한 사례들은 산악자본이 단순한 자연 자원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끄는 핵심적인 사회적·문화적 자산임을 보여준다.


산악자본 의의와 실천적 시사점

위의 사례들은 산악 환경에서 형성되는 사회적·문화적 자본, 즉 ‘산악자본’이 공동체 발전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보여준다. 산악자본은 여가적 소비나, 경제적 자본에 국한되지 않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의 활동과 상호작용을 통해 신뢰와 연대, 문화적 관습 등이 형성되고 축적되는 무형의 자산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의 학문적 의의는 자연환경과 인간의 공동체 활동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유대와 문화적 역량에 주목함으로써, 기존의 사회적 자본 이론을 산악이라는 특수한 공간적 맥락으로 확장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산악자본은 레이 올덴버그의 ‘제3의 장소(Third Place)’ 이론과 피에르 부르디외 및 로버트 퍼트남의 사회적·문화적 자본 이론을 융합하여, 인간 공동체와 자연환경 간의 관계를 새로운 분석 틀 속에서 재조명하는 개념적 도구가 된다. 특히 산은 개방성과 비위계성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사회적 위계와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구성원들이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공의 장소이다. 이러한 공간에서의 경험은 단순한 휴식과 레저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공동체적 소속감을 회복하게 하는 실질적인 사회 자산으로 기능한다.

실천적 차원에서 산악자본은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산악 지역의 개발, 보전, 관광 및 지역 활성화 정책을 추진할 때에는 물리적 자원이나 경제적 투자뿐 아니라, 지역 주민 간의 신뢰, 세대 간 전승되는 문화, 공동체의 협력 구조 등 산악자본의 가치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무형의 자산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보존·강화하는 노력이 병행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산악 발전이 가능해진다.

결론적으로 산악자본은 산이라는 제3의 장소에서 형성된 사회적 유대와 문화적 역량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산악 공동체의 회복력과 창의성을 촉진하는 핵심 자산이다. 더 나아가 이는 기후위기, 사회적 단절, 지역 소멸이라는 당면한 시대적 과제 속에서, 공동체의 지속성과 인간과 자연의 공존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이론적·실천적 기반이 될 수 있다.


출처

Bourdieu, P. (1986). The Forms of Capital. In J. Richardson (Ed.), Handbook of Theory and Research for the Sociology of Education(pp. 241–258). Greenwood Press.

Oldenburg, R. (1989). The Great Good Place: Cafes, Coffee Shops, Community Centers, Beauty Parlors, General Stores, Bars, Hangouts, and How They Get You Through the Day.Paragon House.

Putnam, R. D. (2000). Bowling Alone: The Collapse and Revival of American Community.Simon & Schu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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