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좋은 와인바, 지인들과의 이야기는 늦어도 밤 11시가 되기 전에 집으로 향하는 나의 발목을 계속 붙들었다. 이 조합이 만난 것은 근 일 년 만이고, 와인바 사장님까지 동석하시면서 이야기는 이야기로 꼬리를 물고 이어졌으니까- 새벽 밤 택시를 달려 간신히 집에 도착, 이미 정해둔 수면시간은 반 토막이 나 있던 터였다. 그나마 지난번에 옆 과장님 에게서 친구가 판매하는 제품이라 대량으로 받았다고 하던 '숙취해소제'를 한병 가득 들이켜 두었더니 부족한 잠 빼고는 '숙취입니다'라고 느껴지는 다른 종류의 힘듦은 다행히 없었다.
출근길 광역버스 안에서 외투의 후드까지 뒤집어쓴 채로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숙면, 각종 음료와 먹을 것들로 오전의 업무를 채운 후 점심을 포기하고 다시 한 시간 잠을 잔 힘으로 오후 시간의 업무를 모두 쳐냈다.
어렸을 때에는 잠을 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호기심도 많았고 하고 싶었던 것도 많았던 터라, 어떻게 하면 잠을 덜 자고 다른 걸 할 수 있는지 생각하기도 했다. '4시간 수면법'이라는 책을 진지하게 읽기도 했었고, 성취를 위해서는 '4당 5 락'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는 맞다고 여겼다. 어쨌든 잠을 줄인 시간에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니까- 손으로 꾹꾹 누른 일기를 썼고, 다이어리를 썼고, 끊임없이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이야 다들 늦게 자고 아침에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에 가니까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자는 것은 논외로 하자) 밤늦도록 이야기할 친구들은 많았다.
여기에 집안의 분위기도 한몫했는데 재산?이라는 것이 없었고 근면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잔만 더해'의 위력에 압도되면 가끔 모았던 돈을 전부 털어먹는 남편을 둔 엄마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방침으로 '성실하게 열심히 사는 것만이 옳다'라는 당신의 생각을 자신의 '삶'으로 몸소 보여주셨다. '장녀'라는 것은 부모의 기대와 '네가 누나니까, 동생을 잘 돌봐야 해, 네가 그러면 동생이 뭘 배우겠니?'라는 책임을 함께 받고 자라나는 자식이라, 나는 엄마의 성격과 근면함, 생활 방식을 그대로 전수받고 어른이 되었다.
아... 그래서-0- 그렇게 '잠'을 소중히 하지 않는 회사에 취직했던 것일까? 20대를 거칠고 힘들게, 다시 30대를 20대보다 조금은 나아졌지만 충분히 자지 못하고 보내면서 '결혼'과 '육아'라는 새로운 관문에 돌입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의 '생존'을 위해 잠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거치고 나서는 '내가 뭔가를 더 하기 위해서는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떠올렸다. 아이를 재우고 11시부터 약 1시까지 책을 읽고 서평을 쓰기 시작한 게 그즈음이다.
매일매일 한 권 다양하게 접하게 된 정보들은 나를 천천히 변화시켰는데 '수면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도 그 수확이었다. 여기에 골골해진 몸이 '잠을 잘 자면 완화된다'를 개인 임상실험같이 경험하고 나니 더 이상 '잠자는 시간을 줄이지 말자'라는 새로운 시각이 몸으로 들어왔다.
아이와 함께 눕는 시간이 밤 9시 30분, 7시간 정도를 수면의 최적시간으로 잡고 내 기상시간은 새벽 5시- 6시까지 한 시간 동안 브런치를 쓰고 블로그 서평 등을 쓴다.
이사 오기 전에는 출근시간 동선이 조금 짧았으니 5시 반기상, 6시 45분 정도까지 작성을 완료하고 출근 준비를 시작했는데 (그때는 7시 55분에 집을 나서면 되었었다) 지금은 7시 10분 전후로 도착이 일정치 않은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에 기상시간은 당겨졌고, 무작정 당길 수 없어 새벽 시간이 조금 줄어든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잠을 늘리고 나니 몸은 조금 더 가벼워졌고, 골골거리는 곳도 큰 탈을 일으키지 않고 있는데 문제는 그 시간 동안에 했던 집안일, 혼자 사부작사부작했던 새로운 '짓'의 시간 확보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낮 동안의 일과 동안의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든 활용해보는 것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집안일은... 조금 더 기계들에게 의지하고 있다.
요즘 집안일로 제일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것은 설거지-
식기세척기가 자꾸 눈에 들어오는 것도... 그 이유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