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잠든 새벽
011. 드라마를 보지 않는 이유
아이도, 나도 푹 자고 편안하게 맞이한 일요일- '독감으로 외출금지'라는 것 빼고는 일상적인 하루가 다시 찾아온 기분이었다. 조금 눈이 빨리 떠진 시간이 새벽 4시 30분. 브런치 글을 하나 쓰고 플래너 정리를 잠깐 한 후, 전날 건조기에 넣었던 빨래들을 꺼내 접으면서 TV를 틀었다. 집에서의 TV는 아이가 1순위, 그리고 그 나머지 시간은 귀가 후 소파와 붙어있는 남편의 차지 - 누구의 방해도 없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그 둘이 모두 잠든 새벽뿐이다. 잘 보지 않으니 즐겨보는 프로그램도 지극히 적다.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하는 업무 특성상 연예 이슈나 유행하는 드라마는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쯤이야 페이스북과 연예뉴스만 훑어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으니 큰 지장은 없는 편.
오늘은 '나 혼자 산다'를 보고 싶었는데, 이른 시각이라 재방송도 안 나오네... 뉴스를 틀어놓고 빨래를 접었다. 책을 읽으면 딱 좋은 시간인데 오늘따라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렸을 때 TV 프로그램의 선택권은 '아빠'에게 있었다. 그러므로 나와 동생은 어린이 프로를 신나게 보다가 갑자기 뉴스를 봐야 하는 청천벽력 같은 상황에 종종 아니, 아주 많이 직면하고는 했다. 사고가 나고 정치가 어떻고... 시커멓고 재미없는 저런 걸 왜 볼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새 나도 어른이 되어서 "그냥 뉴스나 보자"라는 말을 무심결에 하고 있었다.
10대, 그리고 20대 중반 무렵까지는 나도 연애 드라마를 좋아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쿵쾅거리면서 그 둘의 절절한 사랑이 이어지면 내가 꿈꾸는 그런 '사랑'도 언젠가 실현되리라고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드라마와 확연히 달 랐고 서로의 시그널이 맞지 않는 어필-거절받은 상황들과의 그 이후 이어진 만족하지 못했던 긴 연애가 '꿈을 와장창' 깨뜨렸다.
깨닫게 된 건 1. 드라마 속의 주인공 같은 남자는 현실에는 없다. 2. 변하지 않는 사랑은 없다 라는 두 가지 명제- 이유도 간단하다. 1. 나 또한 드라마 속의 주인공 같은 여자는 아니며 2. 현실의 연애는 드라마보다 더욱 오랜 시간을 겪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만족스럽게 보고 난 후 따라오는 그 '현타(현재의 실제 상황을 확인하고 난 뒤 밀려오는 정신적인 타격)'가 싫어서 결국은 드라마를 보지 않게 되었다. '잠깐 꿈꾸는 게 뭐 어때서?'라고 누가 반론할 수도 있다.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을 뭐라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나를 잘 알기 때문이다. 유혹이나 자극에 약한 나 자신을 지키는 법은 처음부터 그 '유혹'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그렇다. 나는 카페인만큼 다른 자극에도 취약하다 )
원인이 되는 것을 눈에서 떨어뜨리면 생각에서도 멀어질 수 있다.
뉴스를 보면서 전날 적게 먹었던 저녁의 분량을 아침밥으로 대신한다. 30분만 더 있으면 아이가 일어날 테니 이 소중한 시간에 뭔가 하나 더 해야 하는데... 주말에는 좀처럼 펼쳐보지 못하는 플래너를 오늘은 두 번이나 꺼내서 차주의 계획을 다시 한 번 체크한다. 비록 연예 드라마는 아닐지라도 '현재'라는 또 다른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보고 있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그 드라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