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이의 생일, 독감이 많이 나았다 싶었었는데 간밤에 열이 올라서 새벽에 일어나 해열제를 먹이고 가렵다는 발을 열심히 주물러줬다. 피곤한 월요일- 소고기를 잔뜩 넣은 미역국을 한가득 끓이고 밥을 했다. 뚝딱 요리가 완성되는 베테랑 주부는 아닌지라 국 하나 끓였을 뿐인데 출근시간은 막바지- 아침식사는 회사에서 대충 때우자 싶어 냉동실의 떡 하나를 가방에 던져 넣고 출근길에 올랐다.
4년 전 첫 아이의 생일, 회사에서 다음날 제출해야 할 제안서 준비를 하느라 집에 들어가지 못했고, 그날 밤 아이는 아빠 그리고 할머니와 생일 케이크를 불었더랬다. 그게 두고두고 미안해서 아이 생일엔 아예 휴가를 내곤 했었는데, 이번 생일은 생일이라기보다는 '독감 케어 주간'에 가까우니 성격이 조금 다른 상황- 독감이 완치되는 기간은 약 5일, 어린이 집에 가지 않는 동안 남편과 내가 '출근일'을 배분해서 아이를 봐야 한다. 주말이 낀 것이 천만다행, 월요일은 회사에서 쳐내야 할 일이 많으니 남편이, 내일은 내가 아이를 집에서 보기로 했다.
내 생일은 하반기가 시작하는 7월의 첫날- 초등학교 때에는 장마로 비가 참 많이 내리던 때였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기말고사가 시작하는 즈음이기도 했다. 지극히 '나 자신'을 챙기면서 살아왔으니 생일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떠들고 다녔고, 챙김 받는 것도 은근히 좋아했다. 이미 방학이 시작되어 버리는 대학교에 들어오면서 그 와중에도 '생일'을 챙겨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기분이 좋아지거나 서운하거나 했다.
스스로의 생일을 잘 챙기는 것에 대한 도전은 회사에 입사하고 시작되었는데, 생일 당일 급하게 들어온 클라이언트의 '제안서'요청이 내일 아침까지였고, 그 담당이 나였다는데 있었다.(이제 들어간 지 3개월밖에 안된 곳이었고 난 인턴이었다...--;) 승진과 다양한 회사의 방침이 발표되는 7월의 첫날 회사에서는 회식이 잡혀있었고, 나는 적당히 회식에 참여하고 생일파티로 빠질 생각이었으나 회식은커녕 제안서 때문에 퇴근 자체를 하지 못했다. 아무리 밤을 새웠다 한들 당일치기로 써낸 입사 3개월 인턴이 쓴 제안서가 얼마나 퀄리티가 있었을까- 그 다음 날 제안서는 까여서 수정과 보완을 반복하기까지 했다. 그때는 왜 다 그랬지? 그렇게 일을 시키면서도 회사는 함께 들어온 3명의 인턴 모두에게 '회사의 판단으로 인한 인턴 연장'을 통보했고 나는 깔끔하게 그 회사에 대한 애정을 털고 나왔다. 그때가... 24살 때였던 것 같다.
무언가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해버리면, 다시 그 의미에 발목을 잡힌다. 그 이후로도 무려 10번이 넘는 생일을 맞이했는데, 언뜻 먼저 떠오르는 기억들은 행복했던 날보다 그 날에 방점이 찍혔던 '안 좋았던 날'의 기억들인 것을 보니- 누군가의 생일들을 한 가득 챙길 때에는 빚쟁이처럼 내 생일에 과연 그들이 생일을 챙기는가 안 챙기는가에 온 신경이 쏠리기도 했었다. 이것도 역시 어설픈 관계 맺기의 나쁜 영향의 한 단편이었다.
'주고, 되돌려 받기를 기다린다'의 공식이 머릿속에 사라진 이후 내 생일에 대한 부담과 의미도 조금 줄어들었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서야 생일은 '태어난 내'가 축하받아야 하는 날이 아닌 나를 낳아준 '부모'에게 감사해야 하는 날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결혼도 늦고 출산도 늦었으니 도대체 얼마 만에 철이 든 건가....
이제는 다수의 누군가의 챙김이 아닌, 생일을 진심으로 기억해주는 몇몇 친구들의 축하, 그리고 가족의 축하면 된다.
내가 받고 싶은 것은 내가 제일 잘 아니 내가 사면된다. 거기다가 내가 세상에 내어놓은 '내가 태어났음'이 새로운 존재의 의미로 이어지는 내 '아이'의 축하가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휴가 신청 완료, 내일 해야 할 업무도 대충 쳐낸 퇴근길, 아이가 좋아하는 딸기 초콜릿 케이크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꼭 이런 날 버스에는 자리가 없다... 한 손에 케이크 들고 손잡이 잡고 뒤뚱뒤뚱)
밥을 다 먹어야 케이크이든 과자든 먹을 수 있는 것이 아이와의 규칙- 밥도 먹고 싶고 장난도 치고 싶고 이것저것 간섭도 하고 싶은 아이는 식탁에서 주의를 몇 번이나 받고 겨우겨우 밥을 다 먹었다.
6개의 초,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 촛불 끄는 것을 좋아하니 다시 한번 반복-
내 생일보다 더욱 기쁜 아이의 생일, 내년에는 건강하게 맞이할 수 있기를...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