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을 주는 삼시세끼

010. 바나나맛 우유

by Defie

주말은 거의 80% 이상 아이를 위해 쓰이는 날이지만, A형 독감에 걸린 아이가 밤새 앓고 난 아침이라 '이번 주말은 온전히 집에서 아이와 함께하기로 다짐한다. 병원에서 지어준 약을 제때 먹이고, 놀아주는 것보다 더욱 신경이 쓰였던 것은 아이의 '영양 많은 삼시 세 끼' - 오전 8시 반, 평상시보다 늦은 아침식사로 아이가 좋아하는 당근을 가득 넣은 야채죽에 참기름을 몇 방울 넣고 아이에게 먹이면서 물었다.

"점심에 뭐 먹고 싶어? 엄마가 해줄게^^"

"소고기요"

"응? 소고기? 돼지고기 말고 소고기?"

"응, 소고기"

초콜릿도 좋아하고 과자도 좋아하는 6세 아이의 답변치고는 너무 어르신 입맛 아닌가...라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입맛이 없는 것도 아니고 고기가 먹고 싶다니-

그렇게 오늘의 메뉴 결정! 점심에는 한우를 사다가 구워주었고, 저녁에는 약재와 마늘을 가득 넣은 닭백숙을 진하게 끓여서 먹였다.

먹이고 설거지하고, 장을 봐와서 먹이고 설거지하고, 다시 먹이고 (저녁 설거지는 내일 하자...) 하루가 갔다.


내가 어렸을 땐 뭘 먹었었지? 잠시 옛날을 떠올렸다.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다들 힘들고 가난했을 때였으니까, 시장에서 간편하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유독 자주 코피가 났던 초등학생 시절 먹었던 것이 이모가 집에서 길렀다는 알로에와 연근을 갈아서 삶은 물, 감기 기운이 올라와 오들오들 떨면서 집에 누워있을 때, 머리에 수건을 올려주면서 엄마가 가져다줬던 귤-


그다지 특별했던 음식은 없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바나나맛 우유'였다. 초등학생 때 가장 아팠던 기억은 '홍역'에 걸렸을 무렵- 엄마는 "가려운 데를 긁으면 곰보가 된다"는 무서운 말로 아이의 '긁고 싶은' 욕망을 잠재우셨고, 거의 일주일을 앓은 후 (접종을 했는데도 걸렸다... 나 참...) 그렇게도 소원하던 '바나나맛 우유'를 사다 주셨었다.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 우유보다 몇백 원 더 비싼 뚱뚱한 바나나맛 우유는, 엄마와 매주 목욕탕을 가던 내 눈 안으로 반갑게 들어왔지만 몇 백원이 비싸기에 감히 먹을 수 없던 '사치의 존재'였다. 설마 몇 백원이 없어서였겠을까- 한 번의 몇 백 원보다 아마도 한 번 사주고 나면 그 이후에도 계속될 몇 백 원 X횟수의 곱으로 떨어지는 금액이 엄마에게는 마음의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 더군다나 나를 사주면 언젠가 남동생도 사줘야 한다)

홍역이 다 나아갈 무렵 따뜻한 방에서 빨대로 쪽쪽 빨아먹는 바나나맛 우유는 그때부터 나에겐 '나를 위한 소중한 맛'의 상징이 되었고, 그 이후 기분이 안 좋을 때에는 뚱뚱한 바나나맛 우유 하나를 나에게 선물했다. '기분이 좋아지는 맛'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밥도 잘 먹고 약도 잘 먹은 아이는 하나도 아프지 않은 아이 같다. 아빠와 여유롭게 저녁을 먹는 아이를 보면서 차 한잔을 마신다. ( 늘어나는 몸무게의 위협에 운동을 늘릴 수없으니 간단하게 저녁식사 양을 줄였다, 그러므로 밥도 빨리 먹는다^^;) 밥을 거의 안 먹어서 그런가 허전한 뱃속을 위로하기 위해 다시 차 한잔을 더 마신다. 오늘을 마무리하는 나름의 여유로운 시간-

열이 많이 오르는 밤이 걱정이지만, 어제 한 번 세게 앓았으니 오늘은 괜찮을 거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체온계와 가습기, 해열제 그리고 이마에 붙일 냉시트를 준비해두고 아이와 누웠다.


아이는 확실하게 나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자란다.

어제보다 나아지는 오늘, 그리고 더 나아질 내일-

점점 퇴보하는 나이든 인간이 자식을 키우는 이유는, 그 확실한 '성장'의 느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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