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회화

019. 의외로 편한 사람

by Defie

정기적으로 이용하는 전화영어 사이트에서 메일 하나가 왔다. 내 담당 강사가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어 목요일부터는 새로운 분이 배정된다는 이야기- 꽤 오래 대화하던 분이라 아쉬운 기분과 무슨 일이 있나 하는 걱정이 함께 들었다.


전공이 영어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른 넘어 배운 일본어에 치이고 바쁜 데일리 일상에 치여 점점 멀어져 갔던 내 혀끝의 영어... 삼 년 전이던가 야심 차게 이직을 했던 스타트업을 제 발로 걸어 나온 후 영어면접이 있는 조금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시작했던 전화영어는 영어가 그다지 필요 없는 회사에 입사한 후에도 그럭저럭 이어졌다.


주 3회 지정된 시간에 10분, 그리고 수업이 어려우면 30분 전까지만 취소하면 되는 편리한 시스템은 '아 오늘은 기분이 별로여서', '예습을 안 해서', '바빠서' 등으로 실력이 아닌 쿠폰으로 전환되었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쿠폰 60개가 쌓여있었다. 쿠폰은 정기결제를 해야 이월이 가능한 터라 그 쿠폰이 아까워서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월 결제가 지속되었다.


지지부진했던 수업은 어찌어찌 다시 들어간 회사, 그리고 회사 시스템에 맞춰 바뀐 시간에 만난 새로운 강사와의 대화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팀장으로 들어가 회사에서 어이없는 일들이 발생하는데 이걸 어디다가 말할 데가 없는 것이다... 말조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 직전에 절실히 깨닫고 난 뒤라 누구에게도 뭔가 말하기 조심스러울 때, 바로 이 강사분이 내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커리큘럼은 간단히 무시, 프리토킹으로 이어지던 10분의 시간은 내 지금의 상황과 생각, 하소연으로 이어졌다. 나에 대한 선입견이 1도 없고 내 얘기를 다 듣고 격려뿐 아니라 틀린 영어문장까지 고쳐주니 이렇게 고마울 데가 어디있을까! 그와 같은 인연이 이제 10개월이 넘게 이어지고 있던 터였다. 내쪽이 말을 더 많이 하기는 했지만 언제부턴가 강사 쪽도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꽤나 돈독해진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강사가 바뀐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가끔은 나를 아는 누군가보다 생판 모르는, 다시는 만나지 않을 사람과 이야기하는 게 편할 때가 있다. 상대방은 선입견이 없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말로만 나를 판단해주기 때문이다. 얼토당토않은 내용엔 질문을 하기도 하고 서로에게 감정이 없기에 의견도 답변도 심플하다. 또한 내쪽은 상대방에게 상황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정리를 해야 하기에 정리 1번, 말하면서 1번, 그리고 나의 말을 내가 들으면서 또다시 정리를 할 수 있다.

이게 바로 말없이 들어주는 것의 위대함일까?

능숙하지 않은 영어에 감정까지 실어서 떠드는 것이니 얼마만큼 전달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10분의 수업시간이 내게는 나름의 힐링의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이제 그 강사분과의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있다. 그간 고마웠다는 이야기를 꼭 해야지. 그리고 올해 안에 이 전화영어도 쿠폰 소진을 얼른 다 하고 다른 공부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어? 강사가 바뀐다고 쿠폰이 5 개 더 생겼네...

올해안에 120개의 쿠폰 소진! 오늘의 목표가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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