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잠깐 만났었던 아이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한 번 엇나간 인연은 (특히 그것이 남녀관계라면) 일부러라도 찾아보지 않는 편인데, 어떤 계기로 그간의 내 인연들을 되짚어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공통으로 알고 있던 지인에게 수소문을 했고, 하루 만에 근황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그때의 생활이 떠올랐다.
11년 전, 그때는 과로로 허리가 많이 아팠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나를 훌쩍 일본으로 보냈던 해였다.
서른이 넘어서 일을 쉰다는 건 '백수'임에 틀림없기에, 관심 있는 일본어 공부도 할 겸 쉴 겸 해서 떠났던 일본 생활은 너무도 여유로웠다. 처음으로 빨간불의 신호등 앞에서 발을 동동거리지 않았었으니까-하루 24시간 중, 4시간의 일본어 공부 후에는 정말 띵까띵까 놀러 다녔다. 대부분의 어학원 아이들은 대부분 나보다 10살 정도 어렸고, 나는 그 속에서 '지금 내가 몇 살인지' '뭘 해야 하는 나이인지' 까맣게 잊은 채 아주 열심히 놀고 아주 열심히 공부를 했었다. 그전에 어학연수도 유럽 배낭여행도 가지 못했던 나에게 신세계 같은 시간들이었다.
나이가 다른, 혹은 국적까지 다른 친구들을 만났었고, 그 몇몇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생애 처음, 낯선 나라에서 나름 오래 살았던 경험이었고, 언어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그런지 일본은, 내게 언제 가도 조금 편하고, 친숙한 곳이 되었다. 일단, 내가 몇 살이고 뭘 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는 곳이니까...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일본에 가서 지인들을 만나곤 했는데, 아이가 생긴 후로는 가지 못하고 있다. 아이가 6살이 되었으니, 6년이나 가지 않은 게 되는구나...
결혼 소식을 알려준 지인은 그때 룸메이트였던 나보다 딱 11살이 적은 아이였다. 오래간만에 옛이야기가 나온 탓에 카톡으로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싸이월드에 올렸었다는 그때의 사진 몇 장들을 전해받았다. 다시금 새록새록 떠오르는 추억들... 그리고 그 속에서 지금은 만나지 않는 그때의 사람들을 잔뜩 소환했다. 대만의 코우는 잘 있을까, 자원봉사로 일본어를 가르쳐주시던 할아버지는 잘 계실까... 그런 이야기들-
다 좋은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환된 추억들은 모두 다 즐거운 일들 뿐이었다.
분명히 힘들었던, 아팠던 일들이 있었는데 그 감정들도 기억과 함께 머릿속에서 희미해진 게 아닐까...라고 추측한다.
무언가를 잊는다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최근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도 아마 지나고 나면 좋은 의미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다시 하루를 단도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