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예뻤다

029. 딴생각

by Defie

기온도 겨울답지 않게 온화하고 집으로 가는 퇴근길 캄캄함이 조금 옅어진 걸 보니 조금만 더 지나면

봄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젯밤, 회사 회식... 의도치 않게 머릿속이 과부하가 걸린 상태라 조금 빠른 속도로 소맥을 들이켰던 여파가 아침까지 이어졌고, 가까스로 하루 업무를 끝낸 뒤였다.

그나마 1차의 술안주가 '소' 님 이었기에 속이 뒤집어지거나 먹은 것을 확인하거나 하는 큰 탈이 없었음에 감사한 금요일의 퇴근길-

무선 이어폰을 귀에 꼽고, 며칠 전부터 주구장창 듣고 있는 노래를 다시 듣는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올려다본 하늘에는 노랗고 밝은 링 귀걸이 반쪽 같은 모양을 한 초승달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친구들에게 보내는 '한 주 수고했어' 카톡 메시지에 나도 모르게 '달이 예쁘네'가 써졌다.


새벽, 누군가에게 편지가 쓰고 싶은 소녀 감성은

나이가 들면 현실과 체념에 묻혀 어느 순간 사라지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주 가끔 불쑥하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 때가 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감동적인 멘트 따위는 드라마에서만 존재한다고 여기면서도

누군가

그런 말을 내게 또 해준다면 짐짓 당황하면서도 좋아하겠지?

두근거려 본 게, 누군가 때문에 얼굴이 빨개져본 게 언제였지?...

퇴근길 버스에서는 오늘의 토익 단어를 외워야 하는데,

초승달 때문에서인지, 숙취의 여운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건지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노래를 끄지 못하고, 쓸데없는 감상적인 생각만 가득했다.

나이에도, 상황에도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감정들이 여러 가수들의 가사 속에서 자꾸만 꿈틀거렸다.


집으로 향하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노래를 멈추고,

이어폰을 케이스에 곱게 집어넣었다.

밥을 먹던 아이가 현관문 앞까지 뛰어나와 "다녀왔습니다"로 엄마를 반긴다.

아이 옆에서 저녁을 조금 먹고, 남편과 '일터'의 '사람들'과의 애로사항에 대해 이것저것 의견을 교환한다.

이제 아이를 재울 시간,

"oo야 달 예쁘지 않니?" 창밖을 가리키면서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아빠랑 장난치느라 내 말을 못 들었나 보다.

"달 예쁘지 않냐고! 저기 ~ 저 불빛들 말고 노랗게 동그란 저 달 말이야"

"응 예뻐 엄마"

아이의 대답에, 하루를 위로받은 느낌이 든다.


변해버린 많은 것이 아쉬운 날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온전히 변하지 않는 것 들도 있다.

소중히 여기면서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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