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생신이라서 아침에 미역국을 끓였다. 출산 후, 6개월 만에 회사 복귀, 아이가 돌이 되기 전까지는 엄마가 자신의 집과 우리집을 매일 오가시며, 집에서 아이를 봐주셨고, 이후에는 어린이집 하원과 저녁 아이 돌봄을 맡아주셨다. 아이가 이제 6살이 되었으니 5년째-
이사 전에는 아침 등원은 어떻게든 남편과 내가 해결했었는데, 이사를 한 후 내 출근시간이 너무 빨라진 터라 남편이 아침 아이 등원 전담이 되었고 남편 또한 촬영으로 빨리 나가야 할 경우 엄마가 전날 오셔서 주무신후 아이를 어린이집까지 데려다주신다.
남편의 3일 연속 촬영 일정으로 집에서 함께 주무신 지 이틀째-
공식 생일파티는 지난 주말에 했으니 생일 당일인 오늘은 미역국 정도만 끓이기로 했다. 그나마 우리 집에 함께 계셔서 생일 미역국을 아침부터 드릴 수 있는 게 다행. 출근길, "생신 축하드려요~"라는 말을 하고 집을 나섰다.
일기에는 오로지 내 이야기만을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내 삶의 역사? 속에 빠질 수 없는 사람을 단 한 사람 꼽으라고 하면 그건 엄마일 것 같다. 책임, 신뢰, 애정까지- 성인이 될 때까지, 아빠가 마이너스로 만들어버리는 중요한 감정과 믿음들을 그 배로 상쇄시켜주신 게 엄마였으니까-
엄마같이 저렇게 손해 보면서 힘들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하면서 자랐고 엄마 또한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인지 남녀차별 없이, (아니 가끔은 남동생보다 더 많이 신경 써주시면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승부욕과 자신감을 심어주셨다. 성인이 되고, 늦은 결혼 후 출산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 더 알게 된 사실은 이거였다.
내 속에 아빠가 채워주지 못한 결핍에 대한 어떤 트라우마가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정상적으로 어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엄마 덕분이었다는 것
그래서 이제는 엄마의 인생을 닮지 않은, 그러면서도 엄마가 원하는 이상적인 딸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에 덧붙여 엄마와 꼭 같은, 자식에게 '믿음'과 '사랑'을 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고 이제는 생각한다.
출근을 하고 나면 스위치를 끄듯 집의 일은 잊는다. 아이도 남편과의 말다툼도 머릿속 저 한편으로 보내고 일에 매진한다. 분초를 다투면서 신경 쓸 일이 많은 것도 있지만 아이를 맡기고 출근을 했던 첫날부터 친정엄마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옆에 있었고 그 덕에 업무에 몰두할 수 있는 정신력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일을 해도 집에 있어도 뭔가 한 번에 몰려오는 책임에 버거워 이도 저도 못하는 워킹맘이라는 굴레에 비교적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오후 6시, 이제 슬슬 집을 향한 스위치가 켜질 시간이다. 엄마께 카톡으로 뭐 드시고 싶으신 게 없냐고 물었다.
엄마는 "가볍게 치킨 혹은 피자랑 맥주?"라고 답을 하신다. 퇴근길 배달어플을 켜고 집 근처 피자집에서 피자와 샐러드를 시킨다.
집에 도착할 때쯤이면 피자와 샐러드가 이미 와 있겠지- 날은 춥지만 발걸음은 가볍다.
피자 그리고 맥주와 함께 엄마의 딸과, 그 딸의 딸, 그리고 사위와 함께하는 엄마의 작은 생일파티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