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있거나 서있거나

038. 몸이 아주 불편한 날

by Defie

도수치료 2회 만에 차도가 엄청나게 있어서 어제 아주 열심히 빨빨거리면서 집안일을 하면서 짬이 날 때마다 스트레칭을 했다. '소염제 따위 없어도 되겠어! '의기양양~

그런데 저녁이 될수록 다리와 허리가 무거운 느낌이 들어 '에이 설마' 하면서 잠이든지 몇 시간 후 극심한 통증에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 왼쪽으로 누워도 오른쪽으로 누워도 똑바로 누워도 아프다.. 결국 거실로 나와 소파에 대충 걸쳐져서 '어떻게 해야 하지?'생각만 하고 있었다. 몇 시간을 그러고 있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고 느지막이 아침이 시작되었지만, 몸은 불편한 상태 그대로였다. 아이의 밥은 남편이 챙기고 나도 대충 입에 밥알을 집어넣었다. 몸이 불편하니 예민해지고 짜증도 나기 시작한다.

아이는 거실과 방을 돌아다니면서 "엄마 이리 좀 와보세요!"를 외치는데 이를 다 따라다녀줄 수 없으니 아이는 몇 번씩 나를 부르고 나는 아프면서도 미안해진다.

소염제를 챙겨 먹고 왜 이렇게 된 건지 복기한다. 어제 너무 무리를 한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나를 제외한 무리를 하게 만든 상황과 사람이 괜스레 미워진다. 남편과 아이- 아이야 아이니까 별 수없다고 제외하면 남는 건 한 명... '어제는 우리 둘 다 이번 주에 처음으로 쉬는 토요일이었는데, 왜 나는 바빴고 이이는 한가했을까?'

불편한 몸상태가 부정적인 마음으로 향하기 바로 직전에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누구 탓을 해서 뭐해, 내 몸 내가 관리 못한 탓이지...'


쓸데없는 미움을 다시 거두어들이고 일단 오늘의 해야 할 일들을 천천히 시작한다. 할 수 있는 건 누워 있거나 서 있거나 둘 중 하나인데 누워있는 건 적성에 안 맞으니 서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시작한다. 아이는 엄마가 '아프다'는 이야기에 이미 잔뜩 겁을 먹고 있는 상태라 여기서 누워버리면 '엄마 아프지 마' 이러면서 울음을 터뜨릴 수 도 있으니... 아 나 좀 대단한 존재인데?^^


어쨌든 아주 불편한 몸 때문에 의욕적으로 하던 집안일에 대한 욕구는 1/3 이상으로 줄어든다. 설거지, 점심의 끼니 걱정은 남편에게 맡겨도 되니 일단 뒤로 하고, 삶고 애벌빨래가 필요한 아이의 옷 세탁에만 조금 더 힘을 쓴다. 집안일에 손을 조금 놓으니 천천히 시간이 생긴다- 소파에 앉는 것은 불가- 다행히도 나무 의자에 앉는 정도는 가능해져서 앉아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데, 아.. 아침에 아파서 못한 오늘의 숙제 '공부'가 있다.


어제, 그제 한 번 훑어봤던 교재들을 꺼내서 슬쩍슬쩍 보기 시작한다. 남편도 아파서 누워있는 것보다는 나아 보이는지 건드리지 않고, 아이는 책상 앞에 앉아서 뭔가를 쓰는 엄마가 신기한지 (원래 아이가 잠들 때만 무언가를 했었으니까) 펜꽂이에 있는 펜들을 하나하나 꺼내서 자기도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남편이 아이를 불러도 "나 공부해!"라고 하면서 내가 준 노트 위로 그림과 글자가 섞인 무언가 들이 하나씩 얹어진다.


한 시간 삼십 분 남짓, 나는 잠깐 공부를 했고 아이는 그 옆에서 공부? 같지 않은 그림을 그렸다. 가끔 "엄마 이거 어때? 엄마 나 저 펜 주세요"라고 말을 걸기는 했지만 이렇게라도 옆에서 잠자코 있어주는 게 어디인가? 의자에 앉고 일어설 때마다 골반과 그 부속 아이들이 삐그덕 삐그덕 아우성을 치긴 했지만 아이와 이렇게 같이 서로의 시간을 각자 누리는 것도 꽤나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소염제를 하나 먹었고, 남편의 미니 안마기를 열심히 돌려댔지만, 그다지 나아진 감은 없다. 저녁에 친정식구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사촌언니를 보면서 신나 할 아이의 얼굴과 괜히 '아프서 못 간다'라고 이야기하면 근심이 가득하실 엄마의 얼굴이 떠올라, 가 보기로 한다.


엄마 집에 도착하자마 "엄마 나 아파"하고 자리에 누웠다. 친정식구들이 모두 모였고 '아프다'는 핑계로 앉은자리에서 상을 받았다. 다들 워낙 건강체질이라고 알고 있는터라 조금은 놀란 듯, 내 집보다 더욱 편안하고 맛있는 (엄마가 만든 음식이 그득하니까) 저녁식사시간이다. 아이와 함께 있지만 이 곳에서만큼은 나도 엄마보다 '딸'이고 싶은가 보다.

집까지 가는 길에는 남동생이 데려다줬다. "몸조심해" 잔뜩 걱정을 해준다. 고마운 녀석 같으니-

집 도착, 해야 하지만 하지 않은 집안일들이 가득 쌓여있지만 그냥 모른 척 아이와 잘 준비를 한다.

내일, 조금 더 건강해진 내가 조금 더 열심히 하면 되겠지.


오늘은 열심히 몸을 사렸으니,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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