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대부분의 업무를 혼자서 하기 때문에 누군가와 대화가 그리울 때는 채팅창을 연다. 두어 명 정도? 아침인사와 더불어 하루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교롭게도 모두 같은 나이의 딸아이를 가진 워킹맘, 나이는 다를지라도 일과 육아, 그리고 커리어와 수입 사이에서 비슷비슷한 고민을 한다.
실제로 만나는 건 한달에 한 번이 채 안되지만 카톡으로 나마 매일 이야기를 하니 현재의 나를 가장 많이 아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하려나? (아이가 어리고 일을 병행하고 있으니 그렇다고 더 빈번하게 만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긴 하다.. 여하튼...)
바로 지금의 일상을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면서도 가끔은 '비공감'의 표시를 하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대뜸 내놓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될 때도 있다. 표정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일들을 겪으면서 오로지 글로만 의견과 생각을 전달하기 때문인 것 같다. 대화에서 말이 차지하는 비율은 20프로 정도밖에 안되고 제스처, 목소리. 표정 등이 더 많은 인상을 준다고 하던데 그래서일까?
채팅이나 이메일등을 쓸 때 말할 때보다 더 주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같은 말이라도 그 톤에 따라 의미가 틀려지는데 단순히 글자들의 나열로는 전달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으니까- 내 의도와 180도 다른 내용으로 받아들여지면 곤란하니까... 혹시 이런 의도로 보냈는데 다른 게 받아들여졌는지, 아니면 내가 오해를 한 건지 이따금씩 확인을 하기도 한다.
말과 글의 행간을 이해하는 것만큼 중요하면서도 서로의 대화에 필요한 요소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눈치가 없는 사람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고 그 불편함은 본인이 전혀 느끼지 못하니까- 한편 달리 생각해보면 조금 부럽기도 하다. 어떤 의미인지 뻔히 보이는데 그걸 못 본 척하는 것보다는 아예 처음부터 읽지 못하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본인에게는 정신적으로 가장 건강한 일일테니-. 세상의 모든 관계가 그렇다. 누군가 불편하면 그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편한 일일 수 있다. 둘 다 윈윈 하거나 둘 다 패배자의 경우도 있지만 전자의 부분이 훨씬 더 많다고 느낀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조금 더 감정적이고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대부분 많이 패배자의 쪽이었다.
호의가 어느 순간 권리가 된다는 말도 있고 좋은 사람도 좋지만 호구는 되지 말라는 말도 있고,...
가끔 무언가에 누군가에 휘둘리고 있다고 느낄 때, 위의 두 명언을 한 번 더 상기한다. 내가 지금 그러고 있지 않은가 하는... 그러면서 조금씩 어딘가 기울어지는, 내 쪽에서는 언제나 패배자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줄여나갔다. 떨어져나간 것도 있고, 줄여나간 것도 있고... 조금 더 서로를 위하는, 고마워하는, 걱정하는 사람들이 남겨졌다.
이 둘이 아마 그런 존재에서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현재의 나 그리고 일상을 공유하는 그 둘 앞에서는 편안히 이야기를, 생각을,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나만 왜 이러지?'라는 생각이 드는 관계는 만들고 싶지 않다. 관계라는게 무 자르듯이 규정할 수는 없겠지만, 만나면 기분 좋은, 따뜻한, 내가 어떻게 보여져도 나를 의심하지 않는, 편안한 그런 사람들만 만나고 싶다.
그리고 내가 만나는 그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면서 만나줬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나만 좋으면, 나만 진심이면 된다 가 기준이었는데, 이제는 그 조건이 하나 더 늘었다.
그런 나를 진심으로 받아들여주는, 나에게 진심인 그런 사람들을 내가 알아채야 하는 것,
나에게 좋지 않은 사람들을 간파해내는 것- 그럴 수 있는 힘 또한 필요한 것 같다.
누구에게나 다 좋은 사람이라도 내게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있고
또 그 반대일 수 도 있으니까-
속 마음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거울 같은게 있으면 좋을텐데-
더 이상 사람에 힘들어지거나 실망하지 않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