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you worry

베일리와 버드(2024)

by 명태

가끔은 위로의 말이 들리지 않는 때가 있다.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보이지 않을 때, 건넨 격려를 공격하고 싶기까지 하다. 그래서 알맞은 때에 받는 적절한 위로만큼 양약도 없지 않을까 싶다. 사람은 하나의 일로 구원받기도 하고, 하나의 일로 나락에 떨어지기도 하는 존재니까. 알맞은 타이밍에 찾아온 사람으로 날개를 펼칠 수 있고 숨통이 트인다면, 누군가는 그걸로 한 시절을 헤쳐나갈 수도 있다.


막막한 상황에서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 같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처음 맞닥뜨리는 사춘기라면 더더욱. 그런 의미에서 영화 <베일리와 버드>에서의 12살 소녀 '베일리'에게 찾아온 '버드'와의 만남은 베일리에게 양약 같은 사건이리라.



영국 켄트 북부 그레이브샌드. 날아가는 새를 보는 걸 좋아하는 소녀, 12살 베일리. 베일리는 무단 거주지인 낡은 건물에서 아빠 버그, 오빠 헌터와 함께 살고 있다.


여느 때와 같이 날아가는 새를 찍고 있는데 철없는 아빠가 토요일에 결혼을 한다고 한다. 그것도 3달 만난 사람과. 베일리는 결혼식에 가지 않겠다며 집을 나선다. 오빠인 헌터는 자신과 친구들을 자경단이라 칭하며, 타인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패러 다니고, 몰래 따라나선 베일리는 사람을 폭행하는 장면과 사이렌 소리에 놀라 도망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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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서 잠들고 일어난 후, 갑작스러운 돌풍과 함께 베일리는 희한한 사람을 만난다. 스커트를 입고 독일식 억양으로 말하는 버드는 자신이 어릴 때 살았던 아파트 단지에서 가족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정말 아름답지 않니? 오늘이"

들이대는 카메라 앞에서도 자유로이 춤을 추고, 평범한 하늘을 보며 감탄하는 그를 베일리는 몰래 따라간다.


베일리는 버드가 가족을 찾게 도와주고 싶다. 베일리는 자신의 엄마가 버드의 부모를 알 수도 있다는 사실에 엄마의 집으로 찾아간다. 엄마는 폭력적인 남자와 사귀는 중이었다. 그 남자는 자신의 동생들마저 위험하게 하고 있었다.


다행히 엄마는 버드의 아버지 이름을 기억해 내고, 베일리는 헌터와 자경단이 엄마의 남자 친구를 공격해 자신의 이복동생들을 구출하기로 계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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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와 베일리는 버드의 아버지를 찾아가지만, 그곳에 사는 남자는 처음에 아들이 있다는 것을 부인한다. 이후 그는 버드의 어머니와 함께 있었고 아들이 있었지만, 그녀의 심각한 정신 상태를 감당할 수 없어 떠났다고 인정한다. 그는 버드가 어릴 때 사라졌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돌아온 엄마의 집. 헌터의 자경단 계획이 실패하고 엄마는 여전히 남자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다. 베일리가 막으려 하지만 밀쳐져 의식을 잃고 만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베일리는 버드가 깃털과 거대한 날개, 새 같은 눈을 가진 존재로 변신하는 것을 목격한다. 버드는 남자를 발톱으로 붙잡고 밖으로 날아가 버린다.


다음 날 아침 헌터가 집을 나갔다는 것을 발견한 베일리는 아빠 버그와 함께 기차역으로 달려가고, 여자 친구가 나타나지 않아 좌절한 헌터를 발견한다. 버그는 헌터에게 아직 아이를 가질 나이가 아니라고 위로한다.

"가끔은 니들이 없었으면 하기도 하지만, 난 너네를 정말 사랑한다!"



세 사람은 함께 집으로 돌아와 결혼식에 참석한다. 피로연에서 모두 새신랑이 된 아빠의 열창을 듣고 있을 때, 버드가 예고 없이 나타나 베일리를 안아주고 작별 인사를 한다.


"걱정하지 마."

낡은 아파트의 리프트에서, 버스 유리창의 낙서에서 베일리가 목격하던 바로 그 말. Don't you worry.

버드는 등장했던 때처럼 홀연히 사라지고, 길 여우 한 마리가 들어온다. 그리고 어느새 베일리의 눈은 여우의 눈동자로 물든다.



성장통 한가운데에 있는 베일리에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삶의 무게가 버겁다. 베일리는 기댈 어른보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마음껏 날아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를 원한다.

너무 빨리 자란 아이, 그러나 아직은 어른이 될 수 없는. 그런 베일리에게 나타난 버드와 버드의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얼마나 마법 같았을까.


영국 하층민의 삶이 지극히 현실적으로 드러난 이 영화에서 버드의 출현과 사건은 환상적이다. 마치 신이인 시인의 <새>처럼.




2017년 2월 3일

딱따구리를 데리고 있다. 이것은 내 약점이다. 딱따구리는 어디든 구멍을 낼 수 있으니까. 사람의 머리통에도.
딱따구리는 내 머리 옆쪽에 구멍을 뚫어주었다. 그건 정말이지 환상적인 사고였다. 귀가 생겼다. 딱따구리가 어찌나 청명하게 나무문을 쪼고 다니는지가 다 들렸다. 난 비로소 듣는 사람이 됐다.
나의 방문은 말할 줄 몰랐다. 내가 듣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방문은 딱따구리를 통해 내게 말을 전할 수 있다. 나는 그걸 즐겁게 들을 수 있다.

딱따구리가 부리를 사용하는 이유, 날 즐겁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이나 벽 또는 모자걸이의 말을 발굴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멍을 뚫기 위해서, 자기 몸이 통과하기에 충분한 길을 내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
내가 가진 견고한 것에는 모두 구멍이 나 있었으며, 딱따구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가진 것을 전부 내놓고, 딱따구리를 찾을 수 있다면 누구에게 무엇을 주어도 좋다는 식으로 대로에 나가 허물어졌으나
이미 좀먹을 대로 좀먹은 내 모든 것에는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나는 머리통에 난 구멍이 생각보다 컸었다는 걸 알게 되고, 반대로 딱따구리는 생각만큼 크지 않았던 것 같다고
돌이켜보았다. 어쩌면 딱따구리는 도망간 게 아닐지도 몰라. 아예 내 안쪽으로 들어온 거야.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딱따구리가 느껴질 수는 없어. 이 느낌에 대해 나 여전히 말을 멈출 수 없어.
가장 깊숙한 곳에 너 잘 살아 있어. 집인 줄도 모르고 흔들렸던 집이 너를 온전하게 품고 있어. 구멍으로 볕과 공기가 들이닥쳐.
너 거기 있구나. 덕분에 나는 구석구석 파여가며 안쪽이 하는 말을 받아쓸 수 있게 됐다. 비로소 쓰는 사람이 됐다.


시의 첫 부분은 마치 베일리의 일기를 훔쳐보는 듯하다. 화자에게 나타난 딱따구리처럼 베일리에게 나타난 버드. '딱따구리가 구멍을 뚫어주었기에 비로소 듣는 사람이 됐다'고 한 말은 버드 덕에 한 시절을 통과한 베일리처럼 느껴진다.


'딱따구리는 사라진 게 아니라 나의 일부가 되었고, 그 구멍으로 볕과 공기가 들이닥쳐 쓰는 사람이 됐다'는 후반부. 이 부분은 베일리가 사춘기를 지나 버드와의 만남을 회고한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었다. 한 사람이 떠났을지라도 그 사람이 나에게 남기고 간 것은 나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그것이 때로는 삶을 지탱할 부분이 된다.



영화는 리얼한 성장통을 환상의 경험으로 치환한다. 갑자기 새로 변하는 버드가 현실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정말로 중요한 점일까. 주목해야 할 건 베일리가 자신의 삶을 인식하고 나아가게 되었다는 점이다. 버드가 선사한 환상 같은 양약은 베일리 안에 있을 것이다.


영화 <베일리와 버드>, 시 <새>처럼 성장의 시절은 우리를 흠내고, 홀연히 떠난다. 우리는 그 시절을 원망하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할 건, 그 시절은 이미 우리의 일부가 이미 되어있다는 것. 그것 아닐까.


다른 이름을 가진 수많은 베일리들, 그리고 베일리였던 어른들. 우리에게 마법 같은 일이 항상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양약을 처방할 수 있다. Don't you worry. 지나치게 걱정 하지 말기를. 그리고 걱정의 끝에 다른 시절의 시작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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