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2026)
미지는 두렵다. 사람에게는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고, 이것은 생존본능과 직결되어 진화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 왔다. 하지만 이런 미지로의 모험을 강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용기 있다고 말한다.
흔히들 세상을 구하러 나서는 사람들은 영웅적인 면모를 가졌다고 본다. 이미 많은 히어로물이 존재하고, 추세가 바뀌었다고는 하나 여전하다. 인간의 연약한 모습과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이유(혹은 대의), 그리고 각성. 하지만 용감하지 않은 사람이 세상을 구해야 해서 강제로 나가게 된다면 어떨까. 그는 과연 영웅의 심장을 가질 수 있을까?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영웅적 면모란 없는 한 사람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망망대해보다 더 광활한 우주에 보내져 겪는 이야기이다. 모르는 세상을 조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다못해 그것이 '인류의 구원'이라는 너무 커다란 대의를 품고 있다면 더더욱. 하지만 그런 사명을 가진 채 나온 그는 외계의 다른 생명체와 함께 미지를 헤쳐나간다. 그리고 두 세상을 구하게 된다.
옳은 일이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희생하는 캐릭터도 나름의 멋이 있겠으나, 자신의 나약함에도 그것이 옳은 일이기에 해내는 인간상이 더 매력적이다. 그 모습은 현실 어딘가에 있을 법만하게, 가깝고 친근하다.
한 남자가 혼수 상태에서 눈을 뜬다. 덥수룩한 수염과 머리칼, 언제 움직여봤는지 모를 몸. 사방은 낯설고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일단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사방을 돌아다니며 뒤진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의 상태로 헤매던 그는 곧 여기가 우주선이며 자신의 이름이 '라일랜드 그레이스' 그리고 과학자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여전히 여기까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는 그와 함께 있던 두 명의 시신을 마주하고, 짐을 뒤지며 그들이 선장 야오와 엔지니어 일류키나인 것을 알아낸다. 그러면서 기억이 조금씩 돌아온다.
중학교 교사였던 자신. 수업 시간. 태양의 밝기를 갉아먹는 우주 미생물 '아스트로파지'. 이 미생물이 태양의 밝기를 갉아 먹으며 지구는 급속히 빠른 속도로 냉각될 전망이었다. 학계에서 잘리게 된 자신의 논문으로 자신을 찾아온 연합정부 총지시자 '스트라트'.
유일하게 아스트로파지의 침식을 버텨낸 항성 '타우세티'를 향한 자살 임무, "프로젝트 헤일메리". 헤일메리 패스란 이길 가망 없는 게임에 모든 걸 걸고 던지는 마지막 슛이다.
그레이스는 조금씩 기억을 되찾으며 이 모든 것이 인류 멸종을 막기 위한 마지막 도박과 같은 계획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다 그는 타우세티 궤도에서 예상치 못한 것을 만난다. 광점A. 분명한 지성이 있는 생명체의 우주선. 그리고 그는 그 안의 돌로 형성된 외계인을 만난다.
그레이스는 돌 모양 생명체를 '로키'라고 부른다. 행성 '에리드'에서 온 로키는 다섯 개의 다리를 가졌고, 눈이 없으며, 음파로 세계를 인식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그레이스는 번역 프로그램을 만들어 로키와 소통한다.
로키 또한 자신의 항성계를 구하러 온 엔지니어이자 마지막 생존자였다. 둘은 과학과 공학, 그리고 항성계를 구하러 온 사명감으로 공감하며 아스트로파지 해결책을 모색한다.
둘은 타우세티 근처의 행성 '에이드리언'에서 아스트로파지의 천적을 발견하고, 채집한다. 이 과정에서 위기에 처하지만, 로키의 용기와 희생으로 벗어난다.
채집한 천적은 원생동물이었다. 생명체가 답이라는 점에서 둘은 크게 환호하고 이 미생물을 '타우메바'로 이름 붙인다. 그리고 각자의 대기에 맞게끔 개량하고 번식시킨다.
이제 모든 기억이 떠오른 그레이스. 자신이 이 임무에 자원한 것이 아니며, 자신은 겁쟁이기까지 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기억에 괴로워하는 것도 잠시. 그는 지구와 에리드를 구하기 위한 임무를 끝까지 해낸다.
이별의 시간. 자신의 임무가 자살 임무라고 말하는 그레이스에게 또다시 동료를 잃기 싫은 로키는 지구까지 갈 연료를 제공한다.
그러나 귀환길에 타우메바의 중대한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레이스는 귀환을 포기한 채, 로키를 구하러 간다.
이때 나오는 노래의 가사는 'Going home'. 그레이스는 지구로 가는 길을 포기했으나 로키에게 가는 길은 집과도 같다. 어떤 이에겐 집은 장소가 아닌 상태이기에.
지구로 전송된 데이터. 이미 많은 시간이 흐른 지구에서 스트라트는 그레이스의 메시지를 보며 미소 짓는다. 한편 에리드인들이 만들어준 공간에서 지내게 된 그레이스. 지구에 남을 이유가 없던 사람은 반대로 지구로 돌아갈 이유도 없는 것 아닐까. 그레이스는 로키의 행성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로키의 지구로 떠날 수 있지만 '오래오래 생각'해 보라는 응원과 함께.
신세계 - 최지인
우리는 삶이 무엇인지 인간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요. 아무것도 모른 채 죽음에 이르는 거예요. 그러니 무지로 미지를 뚫고 나가야 합니다.
최지인 시인의 시 <신세계>처럼 우리는 '삶이 무엇인지 인간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각 계 학자들이 어떠한 정의를 내리지만 과연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마치 3차원 안에 있는 존재가 3차원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처럼. 그렇다면 알 수 없기에 이대로 헤매며 '아무것도 모른 채 죽음에 이를' 것인가.
그레이스의 기억상실로부터 시작한 영화는 이 시에서 말하는 '알 수 없음'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그는 그대로 우주에서 죽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자신이 처음 당도한 미지의 세계에서 손 놓고 있지 않는다. 그는 용감하거나 비범한 영웅이 아니지만,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한다.
이때의 뭉쳐지는 무지는 미지를 뚫고갈 단단한 돌이 되며, 이렇게 뭉쳐지게 해주는 것은 그저 극중 대사처럼 '용기를 내게 해줄 이'이다. 그레이스는 로키가 있어 죽지 않을 수 있었기에 그는 용기를 낸다. 다음의 미지를 향해서도 기꺼이 나아간다.
영웅적 서사나 인간이 최고라는 찬사를 메시지는 퇴색된 지 오래다. 그런 면에서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인간 찬가라기보다 생명 찬가에 가깝다. 용기는 인간만이 아니라, 생명체의 특성인지도 모른다. 우주 어디에서라도 '용기를 내게 해줄 누군가'가 있다면 가슴을 미지보다 더 큰 용기로 채울 수 있다.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는 비범하거나 멋지거나 용맹한 인물이 아니다. 그저 갈등을 회피하는 과학자이다. 하지만 그가 이런 인물인 것이 중요하다. 우주 너머 공간에 대한 무지, 타 항성계에 대한 무지, 죽음에 대한 무지, 우리가 모르는 모든 것들에 대한 무지. 여기에 용기를 내게 해주는 이가 있다면 우리는 이것을 똘똘 뭉쳐서 우리는 미지를 뚫고 갈 수 있다.
그래서 평범한 우리가 일상에서 영웅의 심장을 갖게 될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다고 답하고 싶다. 하지만 당장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생명체처럼 우연히 발생할지도 모를 일이니까. 미지를 뚫을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로키의 대사처럼 오래오래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