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1983)
어떤 이별은 영구하다. 떠난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없는 일은 인류의 시작부터 쭉 있었으며 아마도 인류의 마지막까지 이 이별은 계속되리라.
빅토르 에리세의 <남쪽>은 주인공이 아버지가 떠난 날을 떠올리는 회고로부터 시작한다. 아버지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그 회고를 따라가며 관객은 아버지를 주인공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어디로 떠났으며 왜 떠났는지. 미완의 영화이지만 주인공은 아버지의 고향인 남쪽으로 떠나며 끝을 맺는다. 관객 또한 그 남쪽을 주인공이 그러했듯 응시하게 된다.
영화는 1957년, 가을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느 새벽, 소녀 시절의 '에스트레야'가 개 짖는 소리와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에 잠에서 깬다. 서리 낀 창문으로 스며드는 차가운 아침 빛. 에스트레야는 베개 머리맡에서 아버지의 추를 발견하고, 아버지가 떠났음을 깨닫는다. 그것도 영원히.
어른이 된 에스트레야의 나레이션을 따라 회고되는 그녀의 어린 시절. 의사였던 아버지는 언제나 미스테리한 이미지로 비춰진다. 그녀가 태어나기 전 이미 딸인 것을 알았던 아버지. 손에 추를 잡고서 수맥을 찾을 줄 알고, 이사 온 북쪽 도시의 집 '갈매기'의 다락방에서 나오지 않는 아버지. 자신을 포함한 다른 사람에게 기적같아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이 일상이었음을 회고한다. 에스트레야에게 아버지는 자신을 분명히 사랑하지만 신비하고 별처럼 아스라이 먼 사람이다.
에스트레야는 상상력이 풍부하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 모습을 상상하고, 남쪽은 눈이 오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말에 그 모습을 생각해 보기도 한다. 아버지는 왜 고향인 남쪽으로 가지 않을까. 그러던 중 그녀의 첫영성체 날을 앞두고 두 노부인이 갈매기 집으로 찾아온다.
그녀들은 아빠의 어머니와 유모였다. 어린아이에겐 너무 어려울 얘기지만 아빠가 아버지와의 이념 차이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말을 들려준다. 하지만 에스트레야가 몰래 들어간 아버지의 서재에서 발견한 '이레네 리오스'라는 이름은 그게 유일한 이유가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아빠를 미행한 에스트레야는 아빠가 어떤 비밀을 품고 있고 고향에 가족뿐 아니라 다른 것들도 미뤄두고 왔음을 은연중 깨닫는다. 그리고 성장한 에스트레야는 자연스레 아버지와 보내는 시간이 줄어든다. 병약한 어머니와 자주 만나지 못하는 아버지, 그럼에도 어여쁘게 성장한 에스트레야는 '엘 칼리오코'라고 불리는 남자애에게 구애받으며 학교에 다니고 있다.
엘 칼리오코가 그녀의 집 담벼락에 사랑한다고 써둔 낙서를 아버지가 발견하고, 아버지는 그녀에게 '나도 온 세상에 내 속을 말하고 싶구나'라는 말을 한다. 어느 날, 아버지는 에스트레야를 데리고 호텔에서 점심식사를 하게 되고,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이 된다.
아버지의 유품에서 떠나기 전날 밤, 남쪽으로 장거리 전화를 건 영수증을 발견한 에스트레야는 그것을 숨긴다. 몸이 안 좋아진 그녀는 요양 차 아버지의 고향인 남쪽으로 떠나고자 한다.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모든 시도. 그것은 아버지의 고향이자 비밀이며 미지인 남쪽으로 떠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작품 외적 사정으로 인해 이 영화는 미완성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미완성이야말로 이 영화의 완성이기도 하지 않을까. 아버지에 대한 이해는, 어쩌면 영원히 미완성일 수밖에 없으므로.
불가사의, 여름, 기도 - 백은선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겠니
아무도 듣지 못하는 비명의 주머니가 사람마다 하나씩
마음 안에 감춰져 있다고
머리채를 붙든 손은 이리저리 오가고
질끈 눈을 감았나, 그 장면을 내 눈으로 봤다고
믿을 수 없다
아버지, 삶이 너무 길어요
인생은 형벌 같기만 하고
하루하루 불 속에서 불을 기다리는 기분
백은선 시인의 <불가사의, 여름, 기도>는 아직 물을 것이 많지만 답하지 않는 아버지에게 쓰는 편지같이 느껴진다. "아무도 듣지 못하는 비명의 주머니가 사람마다 하나씩 마음 안에 감춰져 있다"는 부분은 어느 날 에스트레야의 아버지가 남긴 말 같이도 보인다.
아버지의 내면 가장 깊은 곳 정치적 상황과 불화로 입은 상처, 고향이지만 끝내 제 발로 돌아가지 못한 남쪽, 이뤄지지 못한 사랑 등. 끝내 딸에게도 말해줄 수 없던 비명 주머니에 들어있던 것들이다.
나이가 든 에스트레야의 나레이션은 아버지를 이제야 이해하는 듯하다. "아버지, 삶이 너무 길어요 / 인생은 형벌 같기만 하고 / 하루하루 불 속에서 불을 기다리는 기분" 비로소 아버지즈음의 나이가 되어서야 에스트레야는 깨달은 것일까.
그녀가 10대 때가 아닌 나이가 들어 아버지를 회고하는 점, 화면에는 기억과 상상이 교차되고 회고하는 목소리는 성인 여성인 점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고 미지에 대한 이해도의 변화를 느끼게 해준다.
상상으로 공백을 메워야 했던 시절과 달리, 나이를 먹으며 우리는 이별이 삶의 어떤 부분인 것을 받아들인다. 그것은 영원한 상실이지만 달리 보면 내가 갈 미지의 세계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영영 미지의 세계로 갔듯, 그녀는 남쪽을 거쳐 아버지를 점점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 미지에 더욱 다가가며 말이다.
미완으로 끝난 부분이 아쉽다는 감독의 인터뷰를 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미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한 미완이야말로 미지의 궁극적 표현이 아닐까.
우리 또한 언젠가 에스트레야처럼 미지가 떠나간 방향을 보며 그쪽으로 나아가게 될지 모른다. 어떤 이별은 영구하다. 그 기분은 '불 속에서 불을 기다리는' 느낌일 수 있다. 결국 세월이 지나면 상대의 비명주머니를 짐작하며 자신 또한 그런 비명주머니를 가지게 되리라. 그때, 상상 대신 현실이 범람하게 될 때, 과연 우리도 남쪽을 향해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