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구(1987)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랑에 대한 믿음이 죽음보다 강하다. 사랑과 믿음. 어떤 것들은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다. 그중에서 사랑에 대한 믿음은 가장 질기다. 그런 면에서 믿음에는 고집이 포함된다.
영화 <연지구>는 기녀와 부잣집 도련님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로맨스 영화지만, 사실 형식은 공포영화같이 보인다. 귀신이 등장해 살아있는 사람에게 부탁을 하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이야기 구조. 그러나 결말에 이르러서는 로맨스도 공포도 아닌 무언가 새로운 곳에 도달한 느낌을 준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에 대한 믿음. 그런데 이 믿음을 놓아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1930년대, 홍콩의 고급 기루(妓樓)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녀 '여화'. 그녀의 노랫소리와 매력에 부잣집 도련님 '진진방(십이소)'는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함께할 수가 없다. 아무리 아름다운들 그녀는 기녀이고, 진방에게는 사업을 위한 정략결혼이 예정되어 있다. 여화와 진방은 함께 할 수 없는 현실을 비관하여 아편으로 동반 자살을 결행한다.
황천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진방을 찾아 나선 여화. 세상은 그사이 53년이란 시간이 흘러있었다. 1987년의 홍콩. 신문사에 다니는 '원'과 그의 연인 '초'를 찾아가 십이소를 찾아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녀를 믿지 못하던 둘도 그녀가 귀신인 것을 알고 그녀의 연인을 찾아 홍콩을 뒤지게 된다.
수소문해 보니 진방은 죽지 않았고, 살아났다는 것을 낡은 신문으로 알게 된다. 또한 동반 자살보다는 여화가 아편과 수면제가 든 술을 건네 그를 죽게 한 것도. 원과 초는 왜 그랬냐며 여화에게 따지지만 여화는 슬픔이 가득한 낯빛으로 일전과 같은 대답을 한다. '죽어서 영원히 함께하려고요.'
그리고 여화는 묻는다. 정말로 사랑했다면 왜 다시 죽지 않았을까, 하고.
원과 초는 누구나 죽기 싫다며 여화에게 화를 내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을 돌아보며 무언갈 깨닫는다. 원과 초는 서로에게 묻는다. 과연 각자 상대를 위해 죽을 수 있을까 하고서. 그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사랑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여화가 부럽기도 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자신들은 평범한 사람이기에 이것으로 평범히 만족하면 되지 않을까 하며 그들의 사랑은 돈독해진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그들은 진방을 찾는다. 살아나 정략결혼을 하고, 가산을 모두 탕진하고는 초라한 노인이 되어 단역이라도 얻을 요량으로 영화 촬영 현장 주변을 맴도는 삶으로 연명하고 있다.
"감사했어요, 원 도련님과 초 아가씨. 이 은혜는 다음 생에서 꼭 갚을게요."
"더는 당신을 기다리지 않아요."
늙고 비루해진 진방. 여화는 마지막으로 진방에게 받은 선물이자, 내내 지니고 있던 연지구(胭脂扣)를 그에게 건네며 작별을 고한다. 그리고 마침내 빛 너머로 사라진다.
이 영화의 초반부터 앙애경 시인의 시 <교차로에서 잠깐 멈추다>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교차로에서 잠깐 멈추다 - 양애경
우리가 사랑하면
같은 길을 가는 거라고 믿었지
한 차에 타고 나란히
같은 전경을 바라보는 거라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봐
너는 네 길을 따라 흐르고
나는 내 길을 따라 흐르다
우연히 한 교차로에서 멈춰 서면
서로 차창을 내리고
- 안녕, 오랜만이네
보고 싶었어
라고 말하는 것도 사랑인가 봐
사랑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계속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렇게 쉽게 끊어지는 끈도 아니고
이걸 알게 되기까지
왜 그리 오래 걸렸을까
오래 고통스러웠지
아, 신호가 바뀌었군
다음 만날 지점이 이 생이 아닐지라도
잘 가, 내 사랑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
이 시는 여화가 진방에게 남기는 작별 인사이자 자신의 환생으로 넘어가기 위한 사랑의 반환으로 느껴진다.
'우리가 사랑하면/같은 길을 가는 거라고 믿었'던 시절도 지나가고, 비록 생과 사로 갈렸지만 여화와 진방의 길은 교차로처럼 갈라진다.
'사랑은 하나가 아니고 영원하지도 않지만 쉽게 끊어지지는 않고 그럼에도 이것을 알기까지 오래 걸렸다'는 부분은 여화가 황천에서 보낸 53년 후 도달한 결론 같다. 기다림은 사랑의 다른 말이다. 결국 그녀는 그 긴 시간 오래 사랑하며 오래 고통스러워하다, 신호가 바뀔 타이밍을 만난 것이다.
시구 끝처럼, "다음 만날 지점이 이 생이 아닐지라도/잘 가, 내 사랑"이란 인사를 건네기 위해.
사랑하는 연인과 동반 자살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여화가 진방과 피를 토하며 다음 생을 기약하는 내용 같았다. 그러나 살아남아 추레해진 진방의 모습과 자신이 기다렸던 세월의 무상함에 작별을 고하는 인사에 더 적합하게 느껴졌다.
<연지구>는 귀신도 연인도 아닌, 사랑과 기억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죽음으로도 소멸하지 않는 사랑은 다음으로 갈 수 없는 기다림으로 이어졌다.
진방을 찾던 여화는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찾던 것은 진방이란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사랑이 진짜였는지 말이다. 내가 그동안 기다리는 동안 사랑을 키운 것인지 고집을 키운 것인지에 관한 확인.
여화는 드디어 사랑에 대한 믿음을 놓아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생으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사랑하는 대상보다 사랑에 대한 자신의 믿음과 고집이 더 컸음을 알게 되었으니.
죽음은 사랑의 끝이 아니다. 대상이 부재할 때도 사랑은 계속된다. 고로 기다림은 사랑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대상이 아닌 자신이 품은 사랑 자체를 사랑하는 것은, 자신을 묶어두는 족쇄가 아닐까.
불변의 대상은 없는 고로 대상이 부재한 사랑, 그리고 그 사랑 자체에 대한 믿음과 고집을 놓아줄 수 있을 때, 우리는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다음으로 나아갈 준비가 됐을 때, 현재의 우리도 과거의 대상과 자신에 대해 '잘 가'라는 말과 '잘 지내'라는 인사를 건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