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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p Aug 09. 2018

전문가? 전문가!

 졸업하고 나서 자격증을 따고 어줍잖게 아는 것도 없으면서 사회적으로 받는 대우에 취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에는 사회적인 대우에 비해 내 자신의 어줍지 않음에 갈등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찾는 사람들의 태도도 약간은 모순적이었다. 그들은 내가 할 수 없는 수준의 과도한 기대를 하거나 아니면 한편으로는 '그럼 그렇지~'하는 식으로 무시했다. 

 아마도 그들은 전문가에 대한 환상을 가진 것 같았다. 하지만 한구석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현실감각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린 난 그들의 환상을 충족시켜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아니, 내가 당연히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업계의 관행을 그 환상을 방치하고 확대재생산하고 있었다. 그래야 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업계는 그 믿음이 또 하나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과학적인 사실에 기반해 사실을 기술하는 자격을 가진 사람보다 물건을 매개로 환상을 만들고 파는데 능한 보조자들이 오히려 신뢰받고 사랑받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현실을 비루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허풍을 치거나. 사람들은 후자를 선호했다. 나는 이 사이에서 방황했다. 전자를 이야기하면 희망을 꺽는 것 같았고 후자를 이야기하면 사기꾼이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사기꾼이 되지 않기 위해 이를 뒷받침할 뭔가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하면 지식을 내가 편한대로 요리하는 것에 불과할 뿐 뭔가 쓸만한 것을 찾기는 힘들었다. (물론 개중에 한두개는 건진 것도 있다. 단지 내 기대치가 너무 높았을 뿐인지도 모른다.)


 알쓸신잡에서 과학자가 현대의 제사장이라는 말을 누군가 언급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그런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과학자가 미디어를 통해 미래를 예지하는 제사장이라면 전문가들은 생활 속에서 그런 역할을 한다. 그리고,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을 통해 사람들은 분명히 그런 종류의 도움을 받는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 속에서 신분제의 잔재와 분리되지 않은 종교와과학의 모습을 본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걸 알지 못했다. 왜 사람들이 과학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일을 그만두고 여러가지 다른 일들을 접하고 내가 반대입장에도 서보았다. 그리고 미웠던 어느 노인의 말과 같이 속으로 '쥐뿔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면서 잘난척은 드럽게 하네.'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옛날에 읽었던 - 아마도 미국의 상담사례를 번역한 듯 한 - 글들이 떠올랐다. 그 안에서 그들의 대답은 간단명료했고 자기가 아는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이상할 정도로 해맑았다. 그리고 갑자기 깨달았다. 나는 자 자신을 너무 크게 위치시키면 안되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기대를 나 자신에게 투사해 나 자신을 너무 높게 몰아 붙였던 것이다. 


내가 아는 정보를 정확하게 할 수 있는 필요한 범위에서 기술한 다음 희망을 움직일 수 있는 힘과 여지를 상대에게 부여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들은 전근대적인 종교적 관념을 넘어 수동적인 대상을 넘어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능동적인 주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첨언: 살다보면 논리와 과학에는 들어맞지않는 은밀한 비밀에 부딪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재능있는  능동적인 여성이 마녀로서 자리매김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상황에 대해 잘 기술해 준다. 치유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 비밀은 잘 모르겠다.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걸 일반화하는 일은 위험한 일이다. 단지 인간 신경안정제같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이것은 우리가 아는 지식중에 종교에 가장 가깝기는 하다. 단지 그렇기 때문에 사기꾼도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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