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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p Sep 05. 2018

썰전 281회를 보고

 박형준이 ' 한국사회가 동맥경화약이 필요한데 보약을 자꾸 들이붓고 있다' 고 말할 때 잠깐 '어~ 그럴듯한데?' 하고 생각했다. 현대인들의 신체상황이 그렇기 때문이다. 과거엔 비타민 한방으로 때깔이 돌아오던 시대였지만 지금은 혈액순환제가 대세다. 과잉된 영양분이 쌓인 혈관과 몸을 청소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경제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를 먼저 고민해야 하지 않나 싶다.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확하게 다시 풀어 쓴다면 '사회가 너무 편해져서 경쟁력을 잃고 안이하게 돌아가고 있다.'라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도 일견 옳은 진단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사회의 분위기를 돌아봤을 때 그 안이함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돌아보면, 분위기가 너무 이기적이고 보신적이고 자기안으로 파고들기를 강요한다. 젊은이들은 희망이 없다고 얘기한다. 나이든 이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배부른 소리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들은 가혹한 경쟁안에 밀어 넣고 체질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것이 솔직한 속내가 아닌가 한다. 닥치고 일이나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런 방식이 과연 젊은이들의 생산성을 향상 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이것이야말로 기존의 체제를 편하게 이어가려는 안이한 발상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나의 문제의식이다. 


 그러기 위해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소득주도성장이 왜 설득력이 없었느냐 하는 것은 언론의 호도도 있지만 가족문화에서 부터 시작하는 공기같아서 보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왜 투자처가 부동산밖에는 없는가? 왜 교육비를 그렇게 써대는가? 결론을 말하자면 이런 정신구조하에서는 그리 많은 소득은 필요가 없다. 가처분 소득이 부동산으로만 몰린다면 가처분 소득이 많아봤자 부동산 가격만 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충분히 부유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다이어트를 해야 할 정도로 충분히 부유한 삶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내가 원하는 평범한 삶이 어떤 것이었나 하는 것을 자문자답해 보았다. 그것은 한가지 이상의 운동과 한가지 이상의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여유를 즐기고 음악과 미술을 감상하며 가끔씩 이웃과 맛있는 음식을 즐기면서 철학과 문학과 예술에 대해서 대화하고 그 느낌을 나누는 삶이 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삶을 살 수가 있을까? 할 수가 없다. 일단 이 중 한가지라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우리의 평범한 이웃과 가족들은 이런 삶을 살도록 한 개인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동산과 교육이다.  나이든 계층은 이런 시도를 쓸데없이 바람이 들어가서 헛짓거리한다는 인식을 강하게 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옷도 사지말고 트레이닝센터에도 다니지 말고 악기도 배우지 말고 쓸데없이 허상을 쫒지도 말고 그 돈 아껴서 부동산을 사는 사람을 최고로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단 한군데 들여도 되는 돈이 있다면 그건 교육비다. 


이런 의식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에게는 악기와 운동과 선행학습을 위해 끝도 없이 돈을 쏟아 붓는다. 무엇을 위해서? 무엇에 쓰라고? 어차피 커서는 즐기지도 못할 것을 가장 괴로운 방식으로 습득한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두가지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앗아간다. 유년의 삶과 어른의 삶.  

 

 그래서 결국은 인생의 결들을 나누지 못하고 나중에 남는 것들은 사진과 부동산과 학벌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것이 이어진다. 


그럼 이와 관련해서 생각해보자. 이런 삶에 틀에서 어떤 산업이 발전할 수 있을까? 부동산과 교육과 삶의 외형을 반짝이게 해 줄 그 무엇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인간의 삶을 질적인 측면에서 풍부하게 해줄 수는 없다. 

그리고 다양한 경험들에 눈감은 사회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들은 사장되고 만다. 그래서 결론은 다시 부동산이 되는 것이다.  


 아버지들은 일상에서 조금 비싼 질이 좋은 술을 여유를 가지고 즐기는 것보다는 매일의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서 값싼 소주를 자주 마신다. 맛을 즐길 육체적인 여유도 정신적인 여유도 없다. 그리고 그렇게 일해서 교육비와 부동산과 노후를 준비한다. 이런 사회에서 좋은 술은 만들어지지 못한다. 팔리지 않으니까. 오직 부동산만 오를 뿐이다. 


그리고 좀 더 다양한 삶의 경험과 물건을 소비하기 위해선 외국에 나간다. (이게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상이 그렇다는 의미.)

  

교육에 대해서 말하자면 컴퓨터를 배우고 나왔더라도 주판만 굴리고 있는 은행에서는 컴퓨터활용능력이 소용이 없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컴퓨터 같은거 다 소용없다고. 본인도 그렇게 느끼게 된다. 이게 그들이 말하는 생산성의 본질이다.


즉 못보고 있는 것이지 소용없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이 통과되지 못했다. 웃기게도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동학농민운동의 시발점은 지주의 가혹한 수탈이었다. 동학농민운동이 성공했다면 역사는 뭔가 달라질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성장동력과 진취성으로 사회를 개혁할 동력을 잃은 지배층은 자신들의 지배구조를 유지하는데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욕된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학습된 본능에 몸을 맡기지 말자. 이 패러다임은 바뀌어야 우리는 새로운 삶의 차원에 눈을 뜰 수 있다. 이것은 동학의 실패로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일본의 식민화로 실패로 자존감을 잃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다시 구원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역사의 시험대에 다시 한번 올라선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 시험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 하는 본질적이고 도덕적인 시험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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